由彼彼遍計 遍計種種物
유피피편계 편계종종물
此遍計所執 自性無所有
차편계소집 자성무소유
여러 가지로 두루 계산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갖가지 사물을 두루 계산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렇게 두루 계산하여 집착하는 대상의 자성(自性)은 없다.
유피피변계(由彼彼遍計)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
앞 19송에서 유제업습기(由諸業習氣) 이취습기구(二取習氣俱),
모든 업(業)의 습기(반복되어 얻어진 기운)가 있기 때문에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습기가 함께 있다고 했다.
습기에 분별하는 마음을 가하면 능취(能取)는 변계(遍計)가 되고 소취(所取)는 물(物)이 된다.
유피피변계(由彼彼遍計)는
능변(能變)을 설명하는 것으로 전오식이 어떤 사물을 접촉할 때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정보에 의지해서 스스로 자기 생각의 대상을 만들어
여러 가지로 그 이익을 두루 계탁(計度),
즉 계산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
전오식이 보고 들은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해 두루 계산하는 행위가 전개된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전개되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이 소취(所取)이다.
예를 들면,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두루 계산하여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머릿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익을 가정하고 상상해서 개념화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마음속에서 믿고 또 남에게도 권유하여 믿게 함으로서
자기가 천당에 간다는 이익을 챙기고,
자기 관념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그 존재성을 견고하게 함으로서
그 이익을 계속하여 보고자 하는 습기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의 믿음이 절대적임을 상대에게 말해 믿도록 권하고, 강요하고, 강요해도 안 되면
자기 이익을 위해 친(親)과 적(敵)으로 갈라 투쟁도 불사한다.
왜냐하면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관념을 만들어 이익을 보겠다는 믿음이기에
그 존재성이 항상 불안하여 강제로 믿게 만들고자 하는 심성이 발광적인 투쟁심으로 발전되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속에서 그려진 종교적인 혹은 사상적인 개념이나 관념 혹은 생각을 심상(心相)이라고 하는데,
이 심상은 제7 말나식이 현실과는 전혀 관계없이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과거의 경험에 의지해서
사량하여 만들어진다.
제6 의식은 이 심상에 근거하여 옳다고 생각 되는대로 집행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사춘기(思春期)에는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을 의지해 발육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만들어내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제7식이 제8식에서 발육되기 전에는 자기와 부모는 하나라고 여겨오던 것이
발육이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 계산을 하는 마음이 일어나 자기와 부모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고
부모와 차별화하고자 한다.
자기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자기와 부모와의 관계를 너와 나로 이원화(二元化) 시키면서
아상(我相), 아애(我愛), 아소(我所), 아만(我慢), 아집(我執) 등이 일어나면서
실생활에서는 전혀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는 자기에 대한 추상화를 그리면서
부모, 형제에 대한 혹은 사회와의 차별화, 적대감, 혹은 염오(厭惡)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 추상화를 향해 가기위해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현실과는 전혀 관계없이 자녀의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가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본인도 평소에 오별경(五別境)과 같은 수행을 하지 않고는
자기가 왜 그런지 알 수 없고 또 자기(제6식)가 그런 마음을 제어하고 싶어도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본인 스스로 현실과 전혀 관계없음을 인식할 때까지는 제어가 불가능하다.
이 때 제6 의식이 7식에 의해 그려진 심상(心相)이 진(眞)이라고 믿었던 마음이
진(眞)이 아니라고 깨닫게 될 때 고민하게 되고,
고민 끝에 오별경(五別境) 수행을 하게 되면
그러한 관념, 사상, 개념 등이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애욕(愛慾)에서
부모와 이원화(二元化)하려고 하였던 것임을 알게 되고,
6가지 근본번뇌가 모두 이로 인해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그들을 소멸하는 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제7 말나식에 의해 그려진 아상(我相)에 대한 그림을 지워버리려면,
제6 의식이 아상(我相)이나 아애(我愛)가 일어날 때 그들을 참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제7 말나식을 다스려야한다.
말나식을 다스리는 법은 제8식에 저장된 탐진치 종자를 제거하는데 있다.
이러한 심상(心相)은 어떤 종교가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유독(有毒)한 것일 수도 있고 환상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 잘 다스리면 유익한 점도 있을 수 있다.
이 제7식의 상상력은 자기 이익을 위해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니
무익(無益)한 식(識)으로 취급하기보다 수행을 통해 현실적으로 유익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유피피변계(由彼彼遍計)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
여러 가지로 두루 계산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사물을 두루 계산한다는 뜻이니,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은
제7 말나식에 예지력(叡智力)이 있기 때문이다.
제7식의 예지력에 의존한 상상력을 현실에 맞게 바르게 발달시켜 성공하는 예는 흔히 있다.
자기의 이익 추구를 근본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아애(我愛)를 근본으로 하는
제7 말나식을 유용하게 발전시켜가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제7식의 마음이 남에게 해(害)가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강력한 아집(我執)을 행사하는데 있다.
이 아집만 쉬게 하면 된다.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
불교에서는 이 제7 말나식을 완전히 제어하기 위해
아애(我愛)를 없앰으로서 너와 나를 하나로 원융(圓融)하게 하고,
오직 제8식의 지혜에만 의지할 것을 수행의 근본으로 한다.
이와 같이,
제7식이 실제 사물이 없이도 제8식에 의지하여 얻은 기억을 사량(思量)의 대상으로 하여
자기중심적인 새로운 사상, 개념, 관념 등을 형성하여
그 관념이 실제 있는 것으로 변계(遍計), 즉 두루 계산하는 마음이 피피변계(彼彼遍計)이고,
실재하는 어떤 물건이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오감각(五感覺)으로 들어온 여러 가지 대상물을
7식이 8식에 저장된 경험과 비교하고 사량해 본 결과 이것은 이러한 것이라고 심상(心相)을 그리고,
이 심상을 의지하여 제6 의식이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인식된 사물은 왜곡(歪曲)되고 착각되었으나
본인은 착각한 줄 모르고 사실대로 인식한 줄 알고
자기 소견에 집착하여 상대방과 시비하고 주장하는 가운데 왜곡(歪曲)이 더 깊게 증폭되어
처음에 본 그 사물과는 아무 관계없는 어떤 것들을 잡고 서로 계탁(計度),
즉 계산하고 시비하는 모습이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일 수 있다.
표상(表象)은 보고 들은 대상을 왜곡(歪曲)되게 인식하고
그 왜곡이 고리에서 고리로 물고 상속하여 일어나는 행위의 모습이다.
이렇게 상속되는 행위는 고민의 원인으로 발전되어가는 결과
우울증, 공포증, 불면증, 혐오증, 강도, 살인, 자살 등을 일으키는 성격으로 나타나고,
또 술, 담배, 마약, 노름 등의 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주변 사람들과 각(角)을 이루고 다투는 성격이 되기도 하며,
부부사이에 불화(不和)가 점점 악화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스님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이러한 왜곡된 생각을 이어가는 것을
머리를 굴려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하여 ‘머리를 굴린다.’고 표현하는데
고립적(孤立的)인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런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고립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머리 굴림’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자기가 항상 옳다고만 생각하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고립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머리를 굴리는 것’,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이 불화(不和)의 원인이 되고
남에게 해롭고 결국 자기에게도 해로운 성품이고 병(病)이 되는 성품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머리 굴림’을 멈추게 되고 고립성에서 벗어나 보편적이고 원만한 성품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변계소집(此遍計所執)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이렇게 두루 계산하여 집착하는 대상의 자성(自性)은 없다.”
집착하는 대상(所執)을 변계(遍計),
즉 두루 계산하는 것은 전오식이 보고 듣고 한 것을 제8 아뢰야식에 전달하고,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에 의지하여 이 정보를 받아 여러 가지로 계산하여 조작한 심상(心相)을
제6 의식이 이 심상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이에 대한 자기의 탐욕이나 원하는 바를 채우기 위해
혹은 자기의 존재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계산하고 행위를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서 집착하는 대상은 허상(虛相)이므로
집착하는 대상의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씀으로
차변계소집(此遍計所執)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이라고 했다.
사물을 실제로 보았거나 혹은 보지 않았거나
제7식이 제8식에 저장된 과거의 경험에 의지해 사량심을 일으켜
사상, 개념, 관념을 만들어낸 것을 심상(心相)이라 하는데
이 심상이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라고 믿고 남에게 믿음을 권하고, 강요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화를 내고 투쟁을 하는 것은 그 관념에 집착하는 것이고,
이 대상에 대해 계속해서 사량해 자기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차변계소집(此遍計所執)이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있는 사물을 오관을 통해 보았지만
제7식의 사량심에 의한 심상(心相)에서 왜곡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만을 관철하기 위해
계속해서 여러 가지 생각으로서 그 대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또한 변계소집(遍計所執)이라 한다.
이러한 변계소집(此遍計所執)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많은 생각의 대상을 만들어 수많은 종류의 우울증, 공포증, 불면증, 혐오증, 강도, 살인, 자살 등을 일으키는 성격 형성의 원인이 되고,
또 술, 담배, 마약, 노름 등의 중독증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고립적(孤立的)인 성격이 되기도 하며,
부부사이에 불화(不和)가 나선(螺線)형으로 얽혀 점점 악화되어
지옥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진 생각의 대상에 ‘이것이다.’하고
내놓을 수 있는 변계소집성이 없다.
심상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니
그 자체에 진실성(眞實性)이 없고,
또 그 심상에 집착해서 계속해서 계탁하는 것에도 진실성이 없음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라고 한 것은
‘나’나 ‘법’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자성(自性)은 없고,
또 ‘나’라고 할만한 자성이 없는데 변계소집(遍計所執)할 근거가 어디에 있으며,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할 것도 없고
피피변계(彼彼遍計)할 것도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이다.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를
신행(信行)하고
신행(身行)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오별경(五別境) 수행을 해야 한다.
오별경은 욕(欲)·승해(勝解)·념(念)·정(定)·혜(慧)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위에서 이미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