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송
初遍行觸等 次別境謂欲
초편행촉등 차별경위욕
勝解念定慧 所緣事不同
승해념정혜 소연사불동
처음은 변행의 촉등이 있고,
그 다음은 별경인데,
말하자면 욕(欲), 승해, 염(念), 정(定), 혜(慧)이고
먼저 제6의식인 3능변(三能變)과 상응하는 것은
변행심소(遍行心所)인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 등이요.
다음은 별경오심소(別境五心所)
즉 욕(欲)·승해(勝解)·념(念)·정(定)·혜(慧)니
이 다섯 심소(心所)는 반연하는 일(事)이 부동(不同)하다.
初遍行觸等 초변행촉등
먼저 제6식은 제8식과 제7식에 의지하여 작용하고
(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 등 오변행(五遍行)은 제6 의식에 의지하여 작용한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만남에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등 육식(六識)에 의지하여
촉(觸), 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의 작용이 전개된다.
이 다섯 가지 작용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제8식과 6식에 의지하여 작용하므로
오변행심소(五遍行心所)라 한다.
次別境謂欲 勝解念定慧
다음은 별경인데, 말하자면 욕(欲), 승해, 염(念), 정(定), 혜(慧)이다.
별경에는 욕(欲), 승해, 염(念), 정(定), 혜(慧) 다섯 가지가 있다.
이 다섯 가지 특별한 경계는 제6식에 의지해 일어난다고 하여
오별경심소(五別境心所)라 하는데
이는 위에서 설명한 오변행심소(五遍行心所)와 다르다.
오별경(五別境) :
욕(欲)·승해(勝解)·념(念)·정(定)·혜(慧)는 불교 수행단계를 의미한다.
욕(欲)은 하고자하는 마음, 구하는 마음, 탐욕 등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세속적 욕구가 아니라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원(願)이다.
승해(勝解)는 수승한 이해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성(佛性)을 바르게 이해하였음이다.
일체 중생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다.
불성이란 성불할 수 있는 성품이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대각을 얻는다는 말씀인데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씀일까?
첫째 :
반야심경의 반야바라밀, 청정무구하여
구함이 없어도 자족(自足)함이 항상 하는 반야바라밀이다.
이를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고 했다.
둘째 : 불성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음으로 역동적으로 일체 걸림을 파하고,
걸림이 없게 되면 이 찰나에 삼세가 함께하고,
이 자리에서 시방 법계와 함께하니 이 자리가 바로 법계이고,
이 시간이 바로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이다.
그러하니 바로 이 시간 이 자리에
부처님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계심을 알게 되
일체 괴로움이 소멸되고 부족함이 없는 고요함에서
유정 무정 일체중생과 함께 하게 된다.
셋째 :
일체중생을 괴로움이 없고 자족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기 위해
청정무구하고 원융하신 부처님이
우리 중생의 마음깊이 상주하고 계심을 가르치는 길로
갈 원을 세우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염(念)은 생각 생각을 이어가게 하는 수행이다.
염(念) 염(念)이 이어가게 하는 수행이란 염불, 독경, 사경 등이 있다.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자신의 몸의 움직임을 관하는
위빠사나 선이 염(念) 수행법이다.
염(念) 수행에서 유념(留念)할 바는 후념(後念)이 전념(前念)을 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관세음보살하며 염불을 하면,
관세음보살하는 나를 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세음보살하는 나는 전념(前念)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후념이다.
내가 걸어갈 때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을 바라볼 때,
걸어가는 발은 전념이고 그 발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자는 후념이다.
이 후념이 전념을 바라보는 식(識)이 발달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제7식)을
제6식이 알아차리는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이 후념이 발전되어 가는 과정이 잡념이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 됨으로,
이 후념의 능력이 발달할 때 무수한 잡념을 제거하는 수행이 되는 것이다.
후념이 전념을 바라보는 동안
근본번뇌와 수번뇌가 하나하나 소멸되기 시작하여
결국 잡념이 일어나는 일이 없게 되면
그 단계가 수행 중에 많은 새로운 현상을 체험하게 되는 단계이고
정(定)에 들어가는 입문이다.
육바라밀 수행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팔정도에 있는 염(念)이 명시되지 않은 것은
대승불교권 수행론과 남방불교권 수행론과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팔정도에서나
오별경심소(五別境心所)에서 말씀하는 염(念)은
정(定)의 선수(先修) 과정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육바라밀에서는 염(念)이 정(定)에 포섭되어 있다고 하여
이를 명시하지 않았다고 해석되나 수행초보자에게는 무리한 해석이고,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되어
오히려 염(念)을 세워 정(定)에 들게 하는
오별경 수행법과 팔정도가 순리적이라 생각한다.
정(定)은 정념(正念)이 이어지면 결과적으로 선정(禪定)에 들게 된다.
정(定)은 삼매(三昧)로도 알려진 단계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성취하여 무소유정(無所有定)에 드는 것을 뜻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삶에 들어가는 입문이다.
무소유정이란 내 개인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나와 인연을 맺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그들이 공급하여 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공급하고 있으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오히려 큰 부자가 되어 부족함이 없는
즐거운 세계를 느끼게 되는 선정이다.
혜(慧)는
정(定)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하고
제법무아(諸法無我)한 진리를 깨달아
자신과 법계를 바르게 바라 볼 수 있는 무소유정에 들어가
이 법계가 나와 하나 되어 무상(無常)하게 변화되어 감을 보고,
이를 알지 못해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해 법계에 충만한 법력으로
일체중생의 고(苦)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를 능히 제(除)하고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보살행이다.
所緣事不同 소연사부동
오별경마다 ‘인연되는 바가 다르다’고 한 것은
제7 말나식에 ‘나를 위해 하고자 하는 일’들이 수많이 있는데,
그 중 어느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종자의 세력과
제7 말나식에서 취하고자하는 탐진치의 정도,
그리고 제6의식이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意志)의 강도와 능력이
과거에 수행한 경험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그 의지와 능의 인(因)이 다르고,
또 수행하기 위해 만나는 연(緣)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연유로 소연사부동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