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지인(婦女之仁)은, 냉엄하고 비정한 정치마당에서 대통령이 되던가 아니면 낙선하던가, 상대의 칼에 내가 죽게되는 계책을 꾸미는 자에게 나약하게 부녀같이 인정을 베플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부녀지인의 또 하나의 뜻은 양손에 재화(財貨)를 감추고 있는 부녀자가 엄동설한에 길에서 춥고 배고파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구원의 돈은 내주지 않고 입으로만 “집이 어디냐? 부모는 있어? 추위에 고생하는구나 쯧쯧”해대는 것이 부녀지인(婦女之仁)이라고도 한다. 또 주적(主敵같은 인간에게 쓸데없는 립서비스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적으면서 세상에 모든 부녀는 세상에 고통을 받는 사람을 보면 돈을 주어 구원하지 않고 쓸데없이 입으로만 립서비스의 동정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불우한 이웃을 행동으로 구제하는 부녀는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 글의 고사를 적는다. Ⅰ. 부녀지인 탓에 비참하게 죽은 초패왕 항우(項羽) 진(秦)나라 말기 거소(居鄛) 사람인 범증(范增)은 젊은 천하장사요 초패왕인 항우(項羽)를 위해 일한 늙은 모사(謀士)이다. 범증은 휼륭한 계책을 많이 제안해 항우로부터 아부(亞父)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존중되었다. 범증은 항우가 황제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21년 11월 23일 오전 8시 45분에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서거(逝去)했다. 사인은 90노령에 지병이 많은 전두환 대통령에 코로나 19의 화이자 백신을 맞게한 의료진에 의혹설이 나돌고 있다. 코로나 19의 치료제로 정부의 알약수입을 조금만 기다려도 되는 데 한국사회에 백신주사 탓으로 부지기수의 노소(老少)가 죽어가는 주사제를 처방한 것은 의문이다. 정해진 운명인지, 아니면 화이자 백신 탓인지 의혹의 설왕설래(說往說來) 가운데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반공장군인 전두환 잔 대통령은 붉게 붉게 물들어가는 한국사회를 걱정하면서 애석하게도 떠나갔다.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못잊을 추억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연희동 자택에 내가 찾아가면 전 대통령은 언제나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그는 집안 대대로 불교를 신앙해오는 철저한 불교신도여서 더욱 예를 갖추어 내게 잘해주었다. 전대통령이 군인이 되어 위난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 마음을 먹은 것은 작금의 대구 공고 2학년 때라고 토로하였다. 교교 시절 그는 복싱 선수이기도 했다. 강펀치로 당할 자가 없는 무적이었다고 내게 자랑한 후 우리는 폭소하였다. 북-중-러가 동패
이글은 2008년 2월 18일 대불총 사이트에 게재하였던 원고를 다시게재한다 당시 10만원 지폐에 김구선생 초상화 선택이 적합한가에 대한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 이였다 이 내용은 일본 월간지 "세계"에 게재되었던 김일성과의 대담중 김구 선생이야기와 김구선생이 북한 방문후 당시 중국(장개석 본토 장악시) 한국공사(유어만)가 김구를 방문하여 대담한 내용이다.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에는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시 게재한다. -편집자- 대한민국의 노무현 정부는 임기종료를 2개월 정도 남겨둔 2007년 12월에 신규로 발행하는 10만 원 권의 초상을 김구 선생으로 선정하고, 2009년에 발행할 것을 결정하였다. 물론 국민들의 여론조사에는 박정희 前 대통령과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1, 2위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과 달리 왜 김구 선생을 서둘러 선정하였을까? 과연 김구 선생이 적격자인가? 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실마리가 있기에 두 가지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일본 월간지 <世界> 8월호<김일성과 대담 내용 중 김구선생 관련 부분> 먼저 1985년 일본 월간지 <世界> 8월호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은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결정된 것에 축하와 지지를 보낸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염원하는 국민들은 시국의 상황이 앞으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을지, 없을지 하는 위기감 속에서 국민의 힘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지켜보았다. 윤석열 후보의 결정이 국민 개개인의 판단기준에 따라 만족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하는 대의를 이루고저 우리는 다시 한 번 뭉처야 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은 윤석열 후보가 승리하여 정권교체를 달성하고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되는 나라를 위하여 용맹정진 할 것을 천명한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후보는 헌법정신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국가의 정체성 확립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과제를 명확히 선언 할 것을 촉구한다. 2021년 11월 6일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상임대표 공동회장 박 희도
71회 인천상륙작전 기념식 2021년 9월15일 14시 부터 인천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앞에서 국가원로회의 / 자유민주총연맹 주최 인천상륙작전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대한민국통일건국회, 나라지킴이고교연합,인천범시민단체, 한민동맹강화운동본부, 대령연합회,해사구국동지회 등 애국시민들이 참석하였다 코로나 영향으로 주최측은 간소히 계획하였으나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였다. 행사는 인천상륙기념사업회 이병수 회장의 인사말과 국가원로회의 이상훈 회장 과 대불총 박희도 회장 등 8분의 축사가 있었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회장 축사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회장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입니다. 제71회 인천상륙작전의 기념일을 맞이하여 이날을 돌아보고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자 합니다. 우리 국민이면 모두가 잘아시는 인천상륙작전은 풍전등화 같았던 낙동강 전선의 전세를 일거에 반전시켜 3개월 만에 남한 땅에서 북괴군을 괴멸시키고 승승장구하여 압록강까지 회복시킨 작전으로 대한민국을 구한 작전이며, 노르만디 상륙작전 보다 더욱 성공한 작전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먼저 누구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 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사령관과 수많은 전사자 여러분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가(노래) 탄생 대불총 노래가 제작되었습니다. 작사 : 대불총 상임대표공동회장 박희도작곡 : 오해균 <2020 조계종, 제5회불교음악상 중 불교음악인 수상>편곡 : 박범훈 박사-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 역임 -중앙대 총장 역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역임-현재 불교음악원 원장작곡 하신분은 임선교 공동회장님의 인연으로 편곡 하신분은 이건호 상임부대표 공동회장 인연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대불총 노래제작과 제작을 위하여 노력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애창을 바람니다. 1. 노래 2. 악보
광복회장 김원웅은 2020년에 이에 2021년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의 우익정권을 친일 반민족 정권으로 매도하는 기념사를 하였다. 편향된 역사의 왜곡, 거짓과 일방적 저주는 도를 넘고 젊은이들을 충동하기까지 하였다. 이념이 다른 한 쪽의 공격성이 간교하고 집요함에 다시 한 번 경악한다. 이 자는, "독립 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나라, 어떤 나였을까요?"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면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이 반공정권들을 친일의 프레임으로 만 몰아가고 있다. 독립 운동가들은 2개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자는 사람들이었다. 김원웅! 그대는 어떤 독립 운동가들을 지칭하는가? 그대가 친일반민족 정부 지도자로 지칭하는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의 국가를 건국하고 자유민주주의 틀을 만들었다. 박정희는 반만년 절대빈곤에서 탈출하고 경제대국의 기초를 다졌다. 전두환은 혼란스런 정국을 안정시키고 고도경제성장을 일구어 냈다. 무엇이 반민족적인가? 거지 나라를 만든 북한의 3대 세습 정권이 과연 민족적 정통성인가?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핵과 40만 건 이상 정
구국의 영웅이신 고 백선엽 장군님의 약력 고 백선엽 대장님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는 오늘은 자유 대한민국이 영웅을 탄생시키는 초석을 쌓고 있는 순간입니다. 영웅을 갖게 되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존경하는 의미로 영웅의 발자취를 같이 걸어보겠습니다. 명예원수께서는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출생하셨습니다. ▸1940년 3월에 관서지역 최고의 수재들이 다녔던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신 후 당시 망국의 청년에게는 최고의 직장인 선생 직을 포기하고 장차 조국이 독립할 때 국가방위의 동량이 되기 위하여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입학 하셨습니다. ▸1941년 12월에 졸업하고 장교로서 기량 배양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1945년 해방과 동시 고향으로 귀국하여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서 조국봉사의 길을 찾았으나 북한은 소련군에 의해 공산화되어가는 상황을 인식하고 남한으로 탈출하셨습니다. ▸1946년 2월 26일, 남한에 도착 직후 오랫동안 꿈꿔왔던 신생조국 국군의 간성이 되기위해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국군 중위로 임관하셔서 창군의 성업에 동참하셨습니다. 부산에 5연대를 중대부터 대대를 거처 연대까지 조기에 진급 을 거듭하며 창설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