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보면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1958년 광주에서 출생하였고, 광주1고를 나왔는데 대학교는 어디인지 모르나 대학원은 고대대학원에서 형사법을 공부한 것으로 나왔고, 대학원을 다닌 날자는 없다. 92년 부산지검 검사, 94년 서울지검 검사, 2004년에 법무법인 서정에 근무하다가 최근 7년 동안 삼성에 취직해 총 102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으로 근무했다 한다. 그는 근무하는 동안 체계적으로 삼성비리에 대한 근거자료를 축적하여 정의구현사제단과 참여연대의 힘을 빌려 삼성을 고발했다. 그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필자가 만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일부 언론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는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였다는 평가도 있다. 4월4일 노희찬 의원은 거리에 나서서 이건희를 구속하여 수사하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경향을 살펴보면 보수 우익은 김용철을 나쁜 사람이라 하고, 좌익-진보들은 그를 영웅시 한다. 김용철의 폭로를 계기로 기업은 사람을 뽑는데 더욱 철저를 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기준이 김변호사의 고향이라는 것이라는 말도 많이 들린다.
경제의 제1 이슈는 일자리 창출이다. 박대통령이 집권하기 이전에 한국엔 일자리가 없었다. 공장이라고는 겨우 제분, 제 당, 제약 회사들뿐이었고, 기계공업이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손톱깍기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강도와 정밀를 규정하는 스펙이라는 것은 개념조차 없었다. 사회 전체가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청년들에겐 앞길이 막막했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그 시대에 어떻게 한글을 만들어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감탄한다. 이와 똑같은 감탄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붙을 만하다. 앞이 안보였던 그 시대에 어떻게 엉뚱하게도 기능공을 양성해서 일자리를 폭발적으로 만들어 낼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감탄사다. 첫째 그는 기능학교들을 만들어 기능공을 대량으로 길러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이들 기능공들의 친구가 됐다. 기능공들은 국제기능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게 소원이었다. 매년 금메달은 한국이 독차지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가 됐다. 공장장이 사장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았다. 대학가야 소용없다, 기술을 배워야 대접받는다라는 말이 사회적 유행어가 됐었다. 박대통령은 외국에 특사들을 내보내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들이 많으니
핵문제로 궁지에 몰리고, 식량난으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드디어 손쉬운 상대였던 남한에 협박을 가하고 있다. 3월27일에는 북한을 돕기 위해 개성공단에 파견됐던 남한 당국자 11명을 양몰이 하듯 내쫓고, 이어서 3월28일에는 서해로 미사일 3발을 발사하여 주먹을 과시했다. 3월30일에는 북한 군당국이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한은 불바다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로 될 것이라는 협박을 했다. 이는 3월26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태영 합참의장이 한 발언에 대한 언어보복이었다. 우리 식의 앞선 선제타격이 일단 개시되면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로 될 것이다. 김태영 신임 합참은 26일의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답변했었다. 북한의 연이은 이런 공격은 사실상 남한이 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9일, 유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 해결 없이는 개성공단의 확대가 어렵다”는 말을 했고, 3월26일에는 합참의장이 핵 장소를 발견해 타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3월27일 유명환 외통부장관은 워
5공시대는 그야말로 공안과 민주화 세력이 용호상박으로 충돌하는 전환기의 시대였다. 사회주도세력이 5공으로부터 소위 민주화세력으로 전환되기 위해 치르는 비정규전 시대였던 것이다. 1985년에는 김근태가 언론을 장식했다. 민청련의장으로 학내시위와 노사분규를 조종한 민추위(민주화추진위원회)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어 이근안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1986년에는 권인숙 성고문 사건이 불거졌다. 위장취업을 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했고, 인천 5.3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되어 고문을 당한 것이다. 1987년 2월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다니던 박종철군을 민주화 사건 관련 주요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알기 위해 취조하다가 사망시킨 불행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이련의 사건들은 민주화세력에게 5공을 공격하기 위한 절호의 빌미가 되었고, 이로 인해 5공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다. 이에 대해 5공은 마지막 정공법을 택했다. 그해 4월,‘4.13호헌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일체의 민주화요구를 거부할 것이고, 개헌논의를 중단할 것이며, 간선제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는‘6월항쟁’을 촉발시켰고, 5공화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계기
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민주화세력의 위세는 유신시대의 위세보다 더 강했다. 민주화세력이 일으킨 여론에 반하는 말을 하면 곧 이단자요 몰매를 맞아야 하는 마녀사냥의 시대였다. 판검사들도 예외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때 만일 판검사들이 민주화세력의 마녀사냥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반역으로 매도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바로세우기재판에서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12.12에도 관여했고, 5.18에도 관여했다는 죄로 1심에서 10년, 2심에서 7년형을 받았다. 죄목은 반란, 내란 중요임무 종사, 내란목적살인죄였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니다. 정호용은 12.12에도 관여한 바 없고, 5.18에도 관여한 바 없다. 12.12사건 당시 정호용은 대구에 소재한 50사단의 사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2심판결문도 이를 인정은 하고 있다.“피고인 정호용은 12.12 사건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피고인 전두환을 추수하였으므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참으로 어이가 없는 판결문인 것이다. 12.12에 직접은 가담하지 않았으나 그 후 전두환을 적극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출세의 가도를 달렸기 때문에 12.12
1980년, 한국의 법관들은 5. 18 광주사건을 김대중이 10. 26 이후의 국가체제 공백기를 악용하여 북한측 불순분자들과 연합하여 최규하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찬탈 목적으로 일으킨 내란음모 사건이라고 판결하였고, 김대중 들 6명에 사형을 언도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자 1996년의 법관들은 헌법이 명시한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하고 5.18 광주사건을 다시 재판했다. 이들에 의해 김대중은 민주화의 화신으로 등극했고, 전두환은 무력ㄷ으로 국권을 찬탈한 반란수괴요 광주시민을 학살한 내란수괴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1997. 4. 17(96도 3376)대법원은 이런 요지의 판결문을 냈다. 5.18은 전두환 일당이 12.12국사반란을 통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해 가지고 최규하 대통령을 위압하여 권력을 행사하면서 내란을 목적으로 광주학살을 자행하였다 한 개의 5.18사건을 놓고 1980년의 법관들과 1996년늬 법관들이 전반대의 판결을 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일사부재리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두 번 다시 재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6년의 법관들은 이 헌법을 무시하고 1980년의 판결문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이다. 19
경부운하, 대통령 직속인 `국가경쟁력강화 위원회 산하에 ‘한반도 대운하 추진단’을 설치하고 국토해양부 산하에 ‘운하지원팀’이 구성돼 있다.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면 일사천리로 `한반도 대운하 특별법 을 제정하여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이번 총선공약에서 대운하를 뺐다. 이는 기만이다. 한나라당은 명확히 해야 한다. 대운하 사업을 접겠다고 공표하던지 아니면 총선공약에 확실하게 넣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매년 발생하는 비용은 수조 단위인데 반해 수입은 잘 해야 1천억, 비용 대 효과 면에서 보면 미치지 않고서는 추진할 수 없는 세기의 코미디 사업이 바로 운하사업이다. 환경파괴, 홍수, 북한의 수몰작전에 대책 없이 노출되어 수천만이 쓰나미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이런 사업을 신뢰성 없는 사람들,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 편법으로 돈을 벌며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 그동안 애국심을 별로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통합민주당보다 더 위험하다고 본다. 통합민주당은 국민이 경계하지만 한나라당은 위장이 돼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정당이 곱게 물든 가을단풍 같다면 한반도 운하를 저지하는 방향으로 힘을 몰아주는 것이
12・12 사건은 8・15해방과 건국, 5・16혁명과 함께 한국현대사에서 우뚝서야 할 만큼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 각자에게 비쳐진 12・12의 영상은 난무하는 소문에 따라 달라지고, 기자들의 글쓰기에 따라 달라지며,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것이었다.세상은 각자의 머리 속에 있는 것만큼만 보인다. 역사적 인물, 역사적 사건을 놓고도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것이다. 그러하기에 같은 12・12사건에 대해 전두환 시대의 재판관들은 정승화를 죄인으로 재판했고, 세상이 바뀌어 민주화 세력이 사회여론을 지배할 때에는 헌법이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까지 위반해 가면서 전두환을 죄인으로 재판했다. 어제의 역적이 충신이 되고 어제의 충신이 역적이 된 것이다.1979년 12・12사건으로 체포된 정승화는 1980년 3월13일,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김재규 내란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10년을 선고 받고 같은 해 3월18일 관할관의 확인조치에 의해 징역7년으로 감형, 동년 3월25일에 항소를 취하함으로써 3월26일 형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1980
한나라당이 드디어 붉은 색으로 색갈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색맹이 되었습니다. 붉은 색을 파랑색으로 보는 것입니다. 김대중 때와 노무현 때까지만 해도 국민은 색맹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공천의 색깔은 이러합니다. 1. 당의 기존 보수의원들이 모두 탈락했다.2. 좌파들과 싸운 우파인물들이 일체 배제됐다. 3. 이명박계 386운동권들이 대거 약진했다.4. 이재오계의 민중당(일명 간첩당) 출신들이 약진해 있고, 이들의 발언권이 한나라당을 호령할 태세다.5. 이방호계 부산고 출신도 14명이나 된다.6. 앞으로 이명박-이재오-이방호-인명진-김진홍-김문수로 이어지는 사령탑이 한나라당을 끌고 갈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위장 세력으로 들어찰 것이다! 1년 이전부터 우리 회원들은 이미 예측했던 일이었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이를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그냥 올 것이 오고 만 것입니다. 민중당 출신 현역의원으로 이번 공천을 받은 사람은 1. 박형준(부산 수영), 2. 정태윤(부산 남乙), 3. 차명진(부천 소사),4. 이재오(은평 을)민중당 출신으로 신규 공천을 받은 사람은 1. 임해규(부천 원미甲), 1. 김
티베트 사태와 중국 올림픽 보이콧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대규모 시위가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이 매우 강경한 진압을 하는 모양이다. 현장을 취재하는 외국 기자들을 추방하여 진상도 자세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중국군의 발포로 티베트인 100명 이상이 숨졌다는 설도 있다. 망명 중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대학살이 벌어질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조기개입을 호소하고 있는 반면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달라이 라마가 유혈시위의 배후”라고 비난하는 모양이다.중국은 원나라 때부터 티베트가 중국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티베트족은 독자의 언어와 중국과는 다른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티베트의 역사, 전통, 그들의 종교인 불교까지 말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한족(漢族)을 티베트에 이주시키는 서남공정(西南工程)도 추진했다. 티베트인들은 1959년과 1989년 대규모 항쟁을 벌였지만 그때마다 큰 희생자를 내며 무력으로 진압당했다. 지금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1989년 유혈 진압의 현장 지휘자였다 한다.티베트는 한반도의 6배로 크다. 각종 광물자원 70여종이 묻혀 있어서 중국은 욕심 때문에 티베트를 포기할 수 없다고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1979년10월26일 밤 7시38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과 결탁하여 박대통령과 차지철을 살해하고, 경호원 7명을 살육하였다.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10년 전에 육군참모총장을 마친 사람이었다. 1979년 당시의 육군총장을 하고 있던 정승화는 그날 밤 방중에 열린 비상국무회에서 계엄사령관이 되었다. 계엄사령관은 박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입법, 사법, 행정 모두를 한 손에 거머쥐고, 손 볼 사람이 있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속결을 할 수 있는 공포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과 차지철이 없는 청와대는 김계원의 것이며, 김재규과 정승화가 결탁하면 중앙정보부와 군을 다 함께 장악할 수 있었다. 당시 군에는 김재규 및 정승화가 심어놓은 군벌이 수도권 요직을 다 차지했었다. 이 무시무시한 시기에 47세에 불과한 전두환은 40세에 불과한 후배 중령들을 데리고 김재규의 내란 기도에 동조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가는 정승화를 체포-연행-조사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12월12일에 감행했다. “나는 최규하 대통령에게 가서 연행에 대한 재가를 받을 테니 너희들은 7시가 되면 자동적으
아직도 가시지 않는 기우! 좌파정권의 종식이다!우파 진영에 훈풍이 붑니다. 지긋지긋한 좌파정권을 몰아내고 우파가 정권을 잡았다는 기쁨과 안도가 일색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수위의 발표 내용들 중에는 교육의 자율화, 규제혁파, 친 기업정서, 친미적 외교 등 국민이 갈망하던 것들이 들어 있어 많은 국민들이 이를 반기고 있습니다. 좌파정권의 종식! “인수위가 아주 잘하고 있다!” “이제부터 착실하게 건강도 챙기고 여행도 다니자!”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아직도 가셔지지 않는 기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기우이기를 바랍니다. 좌파와 우파에 대한 개념 정리사회적 균형을 이루려면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어야 한다고 말들 합니다. 리영희 교수는 ‘새는 좌우 양 날개로 난다’는 말로 이런 주장을 널리 확산시켰습니다. 김진홍 목사도 ‘우리 사회에서 좌파도 우파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요사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주장들이 수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릅니다. 김정일 정권이 적화통일을 획책하고 있으며, 한국의 좌파들은 김정일 정권과 사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