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의 검찰관련 발언은 정확!노무현의 국민장이 끝난 이틀 후인 20095월31일, 이회창 총재가 성명을 발표했다. 감찰수사, 대통령의 책무, 건강사회, 안보 이렇게 4개 분야에 대한 소신을 밝힌 것이다. 이 중 첫 항은 검찰수사의 적정성에 대한 진단이었다. 한 마디로 검찰이 노무현을 상대로 펼친 언론플레이는 고양이가 쥐를 갖고 노는 형국이었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등에 대한 수사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서 비밀을 유지하며 기민하게 수사를 한 후, 수사결과도 최종 수사결과 발표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박연차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정확한 단서나 확실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인망식 투망을 던져 하나씩 새로운 사실이 나올 때마다 전리품이나 되는 양, 그 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을 들끓게 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면서,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잔인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검찰의 수사태도는 마치 고양이가 쥐 다루듯 하는 모양 이었습니다.”필자 역시 검찰이 의혹에 대해 강도 높게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수행 행위이지만 얼굴을 들 수 없는
기사 내용의 요지 1. 노무현의 서거(?)를 둘러싼 좌·우파 논객들의 독설 공방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2. 감정적인 독설 자체가 이슈가 되면서 노무현의 ‘서거’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성찰이 막혀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 독설 공방은 우파 논객인 변희재가 촉발시켰다. 그는 5월25일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한 마디로 자신의 측근을 살리기 위해 장렬히 몸을 던지는 조폭의 보스나 다름없는 사고였다며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 전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세금은 단 돈 1원도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판단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4. 조갑제, 김동길 교수 등도 자살을 왜 서거라 지칭하며 추모하는가는 요지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5. 좌파 논객 진중권 교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내가 만나본 정치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다며 참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른다는 애도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는 2004년 정몽헌, 남상국의 자살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했던 것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다. 자살할 짓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그걸 민주열사인 양 정권의 책임인 양 얘기를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며 앞으
노무현 미스테리아무리 화려한 영결식도 추도사도 말짱 헛일, 최대의 서비스는 사실을 사실대로 규명해야 한다.다음은 지만원 박사의 글2009.05.23 토 20:53 역시 나의 분석은 틀리지 않았군!친필유서가 아니라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파일유서.그것도 서거 당일날 몇시간 전에 작성.내용은 급조한 것이 확연히 들어나도록 짧고,조잡한데 제목은 길기도 하지! 파일명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영혼에 베인 습관은 변할 수 없는 것!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인터넷을 좋아했어도 나이가 육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유서를 한글타자로 남겼다는건월드컵 경기를 본 날 야구 꿈을 꿨다는 얘기만큼 독특하군!내가 범죄심리학에는 일가견이 있거든죽기 바로 직전 유서를 남기는 자살자들은 99.9% 손목을 긋거나,목을 메지!음독자살을 하거나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유서를 당일날 작성하지 않아!왜냐하면 음독과 투신이란 방법에는 사전준비(약,장소)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이 아무데나 가서 뛰어내리는 것 같지?그건 나이아가라 폭포나 금문교 같이 물이 끌어당길 때의 얘기이고 사람은 점찍어 두었던 익숙한 장소로 걸어가게 되어 있어!결국 음독과 투신자살
전직 대통령 추모가 그들만의 추모인가?봉화마을 마을회관에 조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한다. 그 많은 조문객들 중에 이회창 총재, 한승수 국무총리, 정동영 의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불원천리 고인의 명복을 빌러 갔지만 노사모들이 계란과 물병을 던지는 등의 방법으로 모두 쫓아 버렸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이 보낸 화환도 발로 밟아 버렸다고 한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의 조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분향소를 오직 소수의 노짱들이 장악해놓고 코드 검열을 하는 것이다. 노사모들이 쫓아버린 사람들의 수는 몇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 몇 명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상징성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배척당하면 수백- 수천만의 국민이 다 같이 배척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터에 한 장군들이 수십 명의 공관 식솔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공광 식솔들이 남남들로만 구성돼 있을 때 모두는 다 장군의 충성스런 부하들이었다. 어느 날 장군의 친척인 하사관이 공관으로 들왔다. 그 하사관이 들어오자 그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형성됐다. 바로 이 순간부터 수십 명의 식솔들은 두 파로 쪼개졌다. 하사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래 장군은 너희들만의 장군이다
법행정 절차에 의해 윤리위원회가 열렸고, 윤리위원회는 오랜 동안의 토론 끝에 신대법관의 법행정 조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정도의 중대한 재판독립 침해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경고ㆍ주의 조치를 내리는 것이 적당하다”는 심의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대법원장은 “엄중한 경고”라는 말로 경고조치를 내렸고, 신대법관은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법원가족에게 누를 끼쳐 송구스럽다”는 취지의 사과를 했다. 균형있게 마무리 된 것이다. 신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으로서 취한 지휘조치는 매우 당연하고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하며, 모 부장판사 역시 신영철의 조치가 법행정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한다는 글을 올렸고, 헌변회장인 임광규 변호사는 오히려 그의 행정조치가 당연하고도 훌륭한 것이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5월12일부터 연일 젊은 단독판사들이 들고 일어나 집단행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과 중앙지법을 시작으로 수많은 법원 단위로 모여 대법원의 윤리위원회 및 대법원장의 행정조치에 불복하면서 신영철의 자진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는 뉴스들이 줄을 잇는다. 기자들은 연일 대법원에서 신대법관의 출퇴근길에 지켜서 신대법관은 때로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법
필자는 대선을 앞둔 2002년8월16, 동아일보 및 문화일보에“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제하에 4,500자에 해당하는 의견광고를 냈다. 그 광고문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었다.“쌀, 마늘 사건 등으로 농민을 분노케 해놓고, 거기에 노동세력, 홍위세력 등 좌익들이 불을 댕기면 광주사태의 확대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 소요사태를 일으켜놓고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거도 없고, 우익들이 잡혀가고, 김정일이 무혈로 서울을 장악하는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이 의견 광고문이 나가고 많은 국민들로부터 격려를 받았지만 호남인들로부터는 도끼로 머리를 두 쪽 내겠다는 등의 험한 전화폭력에 시달렸다. 민주당은 2회에 걸쳐 성명서를 내 정부에 강경대응을 주문했고, 오마이뉴스는 필자를 정신분열증환자로 매도했다. 5.18 단체 장이 이끌고 올라온 검은 유니폼의 어깨 11명그 다음 5.18단체가 나섰다.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씨가 2002년8월20일, 검은 유니폼을 갖춰 입은 11명의 어깨들을 이끌고 올라와 다수의 경찰이 보는
1. 5.18특별법은 공소시효를 무시하자는 초헌법적 위헌작품이었다. 이것이 1995년 당시의 법조계의 지배적인 여론이었지만 헌법재판소는 김영삼에 아부하고 굴종하는 자세로 5.18특별별법의 위헌성을 부결시켰다. 5.18특별법을 위헌이라고 생각하는 재판관들을 여러 차례씩 설득하고 비밀회의도 하면서 표결한 결과 9명의 심판관 중 5명이 5.18특별법은 위헌이라고 했고, 4명이 합헌이라고 했다. 미국 같았으면 이런 5:4라면 위헌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한국에서는 6:3에 의해 결정된다. 헌법재판소가 김영삼에 아부했던 모습들이 당시의 보도들에 잘 나타나 있다. 노무현에 아부했던 헌법재판소의 모습은 전효숙 사건에서도 극화된 바 있다. 헌법재판소 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5.18특별법은 정치적으로 밀어붙인 반헌법적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2. 1980년에 정승화는 내란방조죄로 형을 받았다. 그런데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는 재심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승화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전두환 등에게 반란죄와 내란목적 살인죄를 선고했다. 재심절차 없이 다시 재판한 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한 것으로 법 절차상 있을 수 없는 파행이다.
노무현의 죄: 이 이상의 간첩죄는 없을 것이다. 아래 자료는 많은 시간에 걸쳐 수집한 자료다. 대한민국 건국 부정 * 2003.2.25.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고 발언했다. * 2003년 3.1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고 발언했다. * 2004.9.5,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노무현은 애국가와 묵념을 생략했다. * 2005.07.01.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지난날 역사의 고비마다 통합을 주장한 사람들은 항상 좌절하고 분열 세력이 승리해왔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분열세력 승리’ 언급의 의미와 관련,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권 수립, 이후 지역주의 조장 세력의 장기집권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법 무시 * 1988년 12월26일 현대중공업파업현장: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발언 공산당 지지, 민족의 원수를 찬양* 2003. 6.13. 일본 발언: 나는 한국에서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2003. 7.10. 중국 발언: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
북한이 4월4-8일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가운데 미국은 25일 북한이 무수단리의 발사대에 미사일을 장착했으며 발사가 임박했다고 밝혔습니다. 인공위상이라 하지만 사실상 대포동 2호 미사일 것이라는 정도는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륙간 탄도탄이나 인공위성은 용도만 다르지 기술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미사일을 멀리 쏠 수 있는 것은 마찰이 없는 성층권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성층권에 들어서면 탄체가 한동안 미끄러져 갑니다. 단지 미사일 발사는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대기권으로 재진입해야 하기 때문에 인공위성 발사보다 기술적으로는 훨씬 어려운 기술을 요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인공위성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한미일 등 국제사회는 북한에 발사하면 국제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유엔결의안 1718호를 강력히 적용할 것이고 경고를 합니다. 유엔결의안 1718호가 무엇인지는 본문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유엔이 제재하면 6자회담을 보이고트 할 것이라고 위협해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과 핵무기 기술이 이란 등 중동 등지로 수출되는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6자회담을 붙들고
노무현의 형과 졸개들이 속속 붙잡혀 갑니다.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엄지손을 자른 이광재, 그는 노무현의 오른 팔이었습니다만 오늘 정치에서 떠난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노무현은 이제 부끄러워서 ‘밖으로 나올 때 쓰던 밀짚모자’를 팽개치고 아방궁에 칩거 중입니다. 그에게 속은 수많은 국민들이 지금의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노무현은 2004년 3월 TV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남상국 사장은 이 말에 상처를 받아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발생한지 3개월도 안된 2004년 5월 그 형님은 박연차씨에게 경남지사 보궐선거의 열린우리당 후보를 마음 크게 먹고 한번 도와주라고 해 8억원을, 2005년 4·30 재·보선 때는 열린우리당 김해갑 국회의원 후보를 도와주라고 해 5억원을 전달케 했습니다. 2004년 총선과 2005년 재선거를 앞두고는 김해갑 선거구의 한나라당 후보에게 한나라당 탈당을 권유했다고도 합니다. 노무현, 노건평, 노건평의 딸, 사위, 사돈, 박연차, 노무현의
민노총이 드디어 내홍을 앓고 무너질 기세다. 민노총 본부의 비리, 횡령, 도박, 강간미수, 선 접대, 조합비 유용 등으로 인해 하부 조합원들로부터도 불신을 받아 지도력을 잃고 있어 하부조직들이 잇따라 반기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민노총 탈퇴 움직임이 추세 화되고 조합비 납부를 거부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직장별 노조와 산별 노조 간의 불협화도 일고 있다. 원래 노조는 직장 단위로만 존재하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머리 나쁜 김영삼은 산별노조를 허용했다. 산별노조라는 것은 산업별 노조의 준말이다. 요사이 과결 극렬 파업으로 악명을 날리던 금속노조는 자동차 노조와 조선노조를 합한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2006년 75만명에서 2007년 66만명, 지난해 65만명으로 줄었다. 현재 금속노조에는 210개 노조 14만5,000명이 가입돼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 4만5,000명,기아차 2만7,500명 등 2개사 노조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힘 때문에 노동운동이 정치파업화로 달려온 것이다. 머리 나쁜 김영삼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이번 기아차 노조에서 민노총을 탈퇴하고 조합비를 중앙으로 납부하지 않겠다는 것은 금속노조가 기아차라는 기업별 노조를 지역별
북한 군부가 3월9일 키 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 기간(9~20일)에 남북간 군 통신선을 차단키로 했다 한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3월9일, 새벽 3시에 호전적인 성명을 냈다.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키 리졸브 독수리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기로 했다. 훈련기간(9~20일) 동.서해 지구 남북 관리구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보다 엄격한 군사적 통제를 실시하게 될 것이다 “남북간 군통신도 차단할 것이다. ”광명성 2호 발사에 대한 요격행위에는 가장 위력한 군사적 수단에 의해 즉각 대응타격하고 투입된 모든 요격수단들 뿐 아니라 미.일과 남한의 본거지에 대한 정의의 보복 타격전을 개시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평화적 위성에 대한 요격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 “자주권과 신성한 영토, 영해, 영공을 침범하는 적들의 사소한 적대행위에 대해서도 그 즉시 무자비한 군사적 행동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날(3.9) 오전에는 방북을 신청했던 726명의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북측의 불허로 방북하지 못했고, 오후 3~5시 경의선 육로를 통해 복귀할 예정이던 개성공단 관계자 242명이 북측이 입경 동의를 하지 않아 발이 묶였다 하며, 개성체류자 573명에 대한 신변 안
[평화]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악용하여 간첩 등의 내적들이 [평화공세]를 취합니다. [평화]는 공산화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좌익들의 위장 용어입니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 망한 사례가 많습니다. (사례1)2차대전을 일으키기 위해 히틀러는 세계를 속였습니다. 그는 앉으나 서나 평화를 외쳤습니다. 특히 영국 수상 쳄벌린은 그의 말을 100% 믿고 체코의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보한 후 “이제 우리는 확실한 평화를 얻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마치 김대중이 국민 몰래 비자금을 적장에게 바치고 돌아와(2000년 6월 15일) 국민을 향해 이제는 전쟁이 없다고 선포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계인들은 입만 열면 [평화]를 외치는 히틀러의 입만 쳐다보다가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사례2)서기 1125년, 중국 북방의 金나라 태종이 宋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송나라 결사대가 수도방위에 간신히 성공하자 금 태종이 송나라에 [평화]를 제안했습니다. 송나라 평화주의자들(pacifists)이 평화에 대한 여론몰이를 했습니다. 송나라는 금태종에게 황금 500만량, 백은5천만량, 비단 100만량, 우마 1만 마리를 바치고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금
사법부가 친북·간첩활동 등의 증거를 인정해 반국가 단체로 규정했던 사건들 중 민주화보상위가 사법부 판결을 뒤집을 만한 증거 확보도 없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사례들이 많지만 이에 대한 백서가 없다. 간헐적으로 보도된 내용들은 우선 이러하다. * 1979년 이른바 남민전사건은 자금 조달을 위해 고위 공직자나 재벌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치고, 예비군훈련장에서 소총과 실탄을 훔친 혐의가 인정돼 반국가 단체로 규정됐다. 하지만 민주화보상위는 항거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식으로 면죄부를 줬다.* 1992년 남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황인오는 87년 연루됐던 별도의 국보법 위반사건에 대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민주화보상위는 간첩 전력은 고려사항이 아니다고 했다. * 80년대 공안사건인 자민통 혁노맹 민학투련사건 관련자들도 대부분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했다. 사법부는 이들이 이념적으로 주체사상이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해 무장봉기 등을 기도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민주화보상위는 당시 완강한 군사 독재 상황에서 온건한 방식으론 변화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며 민주화 관련성을 인정했다. 권위주의 시절 고문 등에 의해 허위
빨치산 역사왜곡에 포문 연 전여옥 지난 2월24일, 전여옥 의원은 “불법 폭력을 휘두르며 국가의 근간을 부정했던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자로 둔갑하는 것은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이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증거”라며 부산 동의대 사건 등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된 사건들의 재심기간을 30일에서 10년으로 연장하여 재심의 길을 터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전의원이 사회에 던진 파장은 메가톤급이었고, 좌익들에 의해 일사천리로 왜곡돼 가는 역사뒤집기에 쐐기를 박는 신선한 충격이요 영웅적인 거보였다. 이는 우익인지 좌익인지 모르게 폼만 잡고 허송세월하는 이른바 거물정치인들과 현격한 대조를 보여주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국회의사당 내에까지 침투한 폭력 테러애국세력의 박수를 한 몸에 받은 전의원은 2월27일(금) 12:30분경 국회의사당 홀을 지나다가 갑자기 뛰어든 5-6명의 여성 깡패들에 백주 테러를 당했다. 이 여인들은 여성 국회의원의 머리채를 잡아챈 다음 가슴과 얼굴을 마구 때리고 손가락으로 눈까지 후벼 파 각막에 상당한 손상을 입고 국회 응급실을 거처 순천향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