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부정 * 2003.2.25.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고 발언했다. * 2003년 3.1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고 발언했다. * 2004.9.5,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노무현은 애국가와 묵념을 생략했다. * 2005.07.01.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지난날 역사의 고비마다 통합을 주장한 사람들은 항상 좌절하고 분열 세력이 승리해왔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분열세력 승리’ 언급의 의미와 관련,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권 수립, 이후 지역주의 조장 세력의 장기집권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법 무시 * 1988년 12월26일 현대중공업파업현장: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발언 공산당 지지, 민족의 원수를 찬양 * 2003. 6.13. 일본 발언: "나는 한국에서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 2003. 7.10. 중국 발언: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모택동 주석이다” 반 대한민국-반 연합국 * LA발언: 2004.11.12. “북한이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억제수단’이라고 한 것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WAC)에서) * 몽골발언: 2006.5.9일,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려한다.”(몽골 울란바토르,) * 청와대 망언: 2006.8.18일,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에 반대한다. UN안보리를 통한 제재에도 반대한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보다 더 해주고, 체제안전 약속해야 한다” * 헬싱키 발언: 2006.9.7일, “대포동 실험발사는 그 미사일이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한국으로 향하기에는 너무 크다. 그래서 저는 무력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은 무력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정치적 목적에 의한 정치적 행동으로 보지 않고 실제 무력적 위협으로 보는 언론이 더 많은 것이 문제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 한국으로서는 핵실험을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언제 할 것인지에 관해 아무런 징후나, 아무런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 근거 없이 계속 가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 사람을 불안하게 할뿐이다.”(핀란드 헬싱키,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은 2006.10.9에 핵실험을 강행하여 전쟁 말고는 가장 강력한 UN결의안 1718을 자초했다. * 10월1일 노무현이 서울(밀레니엄 힐튼)에 올라와 10.4공동성명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 1) 실용주의의 반대말은 ‘친북 좌파주의’다. 2) 국가보안법을 건건이 들고 나오는 것은 실용주의가 아니다. 3) 한미동맹, 한미일 삼각공조 체제는 실용주의가 아니다. 4) 연방제 말만 나오면 시비를 거는 것도 실용주의가 아니다. 5) 6·25전쟁은 남침인가, 통일전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악의적인 이념공세다. 6) 국보법은 이념적 대결주의를 강력히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어 남북 대화의 걸림돌이 된다. 7)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큰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 8) ‘작전계획 5029’를 북한 중국과의 신뢰를 훼손할 수도 있는 부담이 있어 강행하면 안 된다. 9)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아야 한다.(송두율 학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을 북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주한미군의 주둔과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북한이라면 어떤 느낌을 갖겠느냐 4.3사건 역사 뒤집기 * 2003.3.21(금) 고건총리와 박원순 주도로 4.3사태에 대한 역사를 뒤집었다. 같은 해 10월 31일 노무현은 제주도민에게 4.3 사건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서 공식 사과했다. 그는 4.3사태의 기점을 1948년 4월3 일로 하지 않고 1947년3월1일로 잡았다. "제주도에서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해서 1948년 4월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그리고 1954년 9월21일까지 있었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1947년3월1일에는 전국적으로 찬탁시위가 일어났고, 그것은 곧 폭동으로 변했다. 제주도에서도 각 면소재지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동원됐다. 이들은 3.1절 행사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모스크바 3상회의 절대 지지’를 외치는가 하면 ‘양과자를 먹지말자’ “사대주의를 척결하자”는 등의 반미구호를 외치면서 ‘3.1절 경축대회’를 찬탁시위 군중대회로 돌변시켰다. 바로 이 때 시위를 진압하던 기마경찰이 어린이 1명을 치어 상처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을 본 좌익분자들은 기마경찰이 어린이를 치어 죽였다고 군중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순식간에 시위군중으로 퍼져나갔고, 평소부터 경찰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던 군중들은 경찰관에게 돌을 던지고 기마경찰관 1명의 발을 잡아 강제로 끌어내리는 등 과격한 소요사태를 이끌어 냈다. 노무현과 좌익들이 3.1사건을 4.3사건의 기점으로 보는 것은 4.3시건이 기마경찰의 반인륜적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지 5.10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호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념 부적격자 국정원 수뇌부에 임명 * 2003년4월, 국회가 친북성향 및 이념편향자라고 규정하고, 임명에 반대한 고영구와 서동만을 각 국정원 원장과 기조실장에 임명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 * 2004.2.24. “통일수도는 개성이 좋다. 남북지방정부를 전제로 한 국가연합이 바람직하다”고 발언했다. 이는 헌법위반이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국가로 승인하겠다는 말은 헌법을 고친 후에나 해야 한다. 이는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헌법3조의 영토조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보법은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을 탄압하는 법으로 많이 쓰여왔다.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고 하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국보법을 없애야 대한민국이 드디어 문명의 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다.(2004년 9월 5일 MBC 발언) 사회계급의 전복(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만들고 재벌해체하자) * 88년 7월 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무현은 이런 발언을 했다. "만일 그들(노동자.농민.도시 서민)의 고통이 돈과 힘을 한 손에 모아 쥔 소수 특권 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기인된 것이라면 그들은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돼야 합니다…지금 우리 경제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경제 민주화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으십니까.…재벌은 해체돼야 합니다. 재벌 총수와 그 일족이 독점하고 있는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 노동자에게 분배합시다. 매수와 분배 모두 2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 정도면 노동자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집 없는 서민들, 중소 상공인, 농민들을 위해 부채 탕감과 아울러 토지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분배합시다…지금 제가 하는 주장은 공연히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88년 7월 8일 국회 대정부 질문) * 1990년5월4일 현대중공업의 총파업사태 때에 노무현은 국회의원 자격으로 분규를 해결한다며 내려가 다음과 같은 말로 노동자들을 선동했다. "노동자가 하루 놀면 온 세상이 멈춥니다.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노동자가 모두 염병을 해서 자빠져 버리면 우리 사회는 그 날로 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경제. 사회관계 등 모든 것을 만들 때 여러분이 만듭니까.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대표가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우리 다 함께 노력합시다". * 1990년10월 5일, 보안사 윤석양 이병이 폭로한 파일에는 노무현씨에 대해 이렇게 평가돼 있다. "노무현은 장기간 노동 및 인권 변호사 활동을 한 후, 국회에 진출, 재야의 지원금으로 노동자 권익을 빙자하여, 각종 노사분규 개입 및 활동했으며,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반정부적인 과격한 언동으로 노동자를 선동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동향 관찰이 요망되며 순화대상 A급인 자임". 이적단체 한총련 합법화 지시 * 2003년 3월18일 노무현은 법무부에 이적단체인 한총련 합법화 방안 지시. "한총련이 어떤 사상에 경도되어 철없는 공격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나는 안도감을 확인했다. 느낌이 좋았다"고 말함으로써 한총련 수배자에 대한 선처를 암시하고 합법화시키려 했다. 재외 빨치산 대거 입국 2003.9.5. 해외 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범추위)와 법무부 고위 관계자 발표: "정부는 범추위에서 신청한 귀국 대상 인사 50명 가운데 36명의 조건 없는 귀국을 허가했다." 70-80년대 일본 유럽 미주지역에서 친북 활동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귀국하지 못했던 인사 36명의 귀국이 한꺼번에 허용된 것은 국정원과 대통령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사안이다. 유럽에서 4명, 일본 한국민족통일운동연합(한통련) 회원 33명이 9월19일 대거 입국했다. 반국가단체인 한통련 의장 곽동의는 심장질환으로 포기했다. 빨치산의 상징 강정구 보호 * 2005.12.23.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강정구를 불구속기소했다. 강정구는 2001년 만경대 방명록(“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 사건 이외에 계간지와 인터넷매체 등에 ‘6·25전쟁은 통일전쟁’ ‘우리나라는 미국의 신식민지’ ‘맥아더는 전쟁광’ 등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조하는 글을 기고한 혐의였다. 2002년 9월 계간지인 ‘진보평론’ 가을호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서해교전과 관련해 ‘북방한계선은 북한의 영해에 불법적으로 설정된 것이며, 서해교전은 한국측에서 밀어붙이기 식 선제공격을 가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2달 전인 10월, 구속의견을 올렸지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 지휘권을 사상 처음 발동해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항명 성 사퇴를 했다. 그 이전 청와대는 검찰에 불구속 수사 의견을 전달했다. * 2005.10.16. 노무현은 열우당 국회 법사위 소속 및 법조인 출신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하면서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정당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당하다는 근거는 한승조와 지만원의 발언을 비교 사례로 들었다. 한 교수는 과거 “일본 식민지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고, 지만원은 “일본군 위안부 80%가 가짜”라고 주장한 바 있었는데 강정구를 구속하려면 이런 사람들도 구속해야 하는것 아니냐고 했다. 강정구는 실정법을 어겼지만 위 두 사람은 실정법을 어긴 바 없다. 강정구와 같은 노선: 6.25는 내전이다 * 2006.11.20, 노무현은 APEC 참석차 베트남에 갔다가 캄보디아에 들려 동포 간담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우리가 옛날엔 식민 지배를 받고 내전도 치르고 시끄럽게 살아 왔는데 지금은 여러 나라를 돕고 있다.” 6·25전쟁을 ‘내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강정구의 주장과 100% 일치하고 것이다. 이 표현에는 노무현이 빨갱이라는 것이 증명돼 있다. 6.25에 대한 노무현의 역사관이 빨갱이들의 역사관과 100% 일치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다. 6.25전쟁은 북한이 소련과 중공이라는 두 공산주의 국가의 사주를 받아 김일성이 일으킨 침략전쟁이지 내전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 후 유엔총회 승인을 거쳐 탄생했지만, 북한은 반국가단체에 불과했다. 유엔이 탄생시킨 국가를 반국가 단체가 공격해서 발생한 전쟁을 놓고 어찌 동등한 집단 간에 발생한 내전이라 규정할 수 있겠는가? 공산권 붕괴 이후 소련에서 쏟아져 나온 자료들은 6·25가 김일성의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을 한 점 의문도 없이 보여준다. 소련이 남침 작전계획을 직접 작성하고 대규모 전쟁 지원을 했다는 소련문서가 공개되면서 냉전 시대에 소련이 유포했던 ‘내전론’은 허구였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좌익들은 6.25를 민족끼리 일으킨 내부 전쟁, 즉 부부싸움과 같은 전쟁이었는데 미국과 유엔이 참전하여 억울하게 많은 피해가 발생했으며, 미국과 유엔이 원수이기 때문에 맥아더 동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강정구의 구속을 앞장서서 막아 준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소규모 내전으로 끝날 전쟁이 미국의 개입과 함께 중공군의 참전을 불러와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피해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 노무현이 말하는 내전론인 것이다. 이래서 노무현은 좌익인 것이다. 내전론을 만들어 유포시킨 존재는 소련이다. 6.25 전쟁 발발 직후 소련이 자신의 전쟁 개입을 은폐하기 위해 6·25전쟁을 공식적으로 ‘내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전쟁 발발 직후 당시 안드레이 그로미코 소련 부외상은 앨런 커크 소련주재 미국대사에게 남한이 38선상에서 먼저 국경분쟁을 유발하여 북한이 반격을 가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되었다고 주장했다. 내전론은 소련이 유엔과 미국의 참전을 막기 위해 지어낸 ‘선전용어’였던 것이다. 남한의 빨갱이들이 학자의 이름을 내세워 이를 받아 널리 전패한 것이 노무현에까지 전파된 것이다. 6·25전쟁은 처음부터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국제전’이었다. 내전론적 역사관은 미국을 반대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집고 싶은 자들(수정주의 사관 추종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김대중도 이와 똑같은 말을 했고, 노무현도 똑같은 말을 했다. 애국단체의 인공기 소각에 대해 북에 사과 * 2003년8월20일, 노무현은 우익단체가 인공기를 소각한 것에 대해 북한에 공식 사과했다. 인공기를 소각한 사람은 경범죄로 5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대통령 따로 법 따로인 것이다. 한총련이 성조기 태운 것에 대해 미국에 사과 안해 * 2003.7.27, 한총련이 을지로 5가 주한미군 공병단 기지에 침입해 게양된 성조기를 내려 라이터로 불을 붙인 행위, * 2003.08.7, 한총련이 포천 영평사격장에서 창설 후 첫 해외군사훈련을 하고 있던 미국 신속기동여단 `스트라이커"(Stryker)부대 탱크 위에 올라가 성조기를 불태운 행위에 대해서는 침입행위와 성조기 방화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이들은 구속 입건됐다. 그런데도 미국에 사과하지 않았다. 반미감정 노출 * 2004.3.1용산기지를 가리켜 “간섭과 침략의 상징”이라고 발언. 이는 미군을 침략군으로 간주한 것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위반행위이며 국가안보에 핵심 능력인 주한미군을 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 2004년11월-2006년4월 기간, 일일 40억원씩 쓰면서 유럽, 남미, 북미로 다니며 반미감정 표출하여 미국의 분노와 염한 정서를 자아냈다. 4월에 하루 40억원씩을 쓰는 호화여행을 즐기면서 미국, 남미, 유럽을 다니면서 미국을 비난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미국 예비역 사회에서는 “노무현이 미국의 눈을 막대기로 찌르고 있다”며 격노했고, 네오콘의 선도주자 마이클 호로위츠는 “다른 나라 대통령은 친구를 얻으려고 해외순방을 하는데 노무현은 가장 좋은 친구를 떼어버리려 돈을 쓰고 다닌다”며 직설적인 비난을 가했다. * 2005.1.17. 동아일보의 보도는 이렇다. 노무현의 로스앤젤레스 연설(2004.11.13일)과 유럽 순방(12월 1∼7일) 기간 중노무현의 발언은 미 행정부 당국자들의 한국 불신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그들 사이에서는 북한보다 한국과 대화하는 것이 더 까다롭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프랑스에까지 가서 미국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온건파들까지 불쾌감을 드러내고 격앙했다. 유럽에 가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막대기로 우리 눈을 쿡쿡 찌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청와대에 인공분위기 만들기 * 노무현 집무실에 김정일 화(花)(2004년1월호 월간조선) * 2004.5.29일 노무현이 열우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해준 환영 만찬회장에서 붉은 운동가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 1급 간첩 송두율 지지 비호 * 2003.9.24,부산 울산 경남지역 언론인과의 합동인터뷰에서: "국민들이보는 정서가 있으니까 송씨를 청와대에 초청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게 참모들의 결정이었다. 제가 지금도 생각하는 원론은 "잘못은 잘못이고, 또 다른 일로 대화할 일이 있고, 또 우리가 치하할 일이 있으면 초청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초청하고는 싶지만 국민정서 때문에 못한다는 뜻이다.“ * 2003.10.13. 국회 시정연설에서: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와 포용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 교수 처벌과 수사문제는 분단시대 극단적인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법과 상황에서 지금 거론되고 있으나 세상은 많이 바뀌고 있다. "엄격한 법집행을 마다하자는 것은 아니나 이제는 대결과 불신과 증오의 시대가 아니라 민족과 화합 포용할 수 있는 시대다. 어느 한쪽의 극단적 견해가 일방적으로 여론을 지배하는 대해서는 상당히 우려스럽다. 처벌해도 이 양면에 대한 성찰과 함께 진행돼야 하고 우리사회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고 보다 폭넓은 화해와 포용이 이뤄지는, 한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그와 같은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법에 앞서 정치적으로 송두율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 * 2004년6월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처장,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된 ‘2004년 무궁화회의’ 초청강연에서 각군 장성 70∼80명을 상대로 안보 관련 현안을 설명하면서 “병사들이 적개심을 갖고 철책선 근무에 임하는 것보다는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 높은 시민의식을 갖고 근무에 임하는 것이 보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하여 장성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 2005년 2월 발간된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삭제했다. 한국군 비하 * 2006.12.21 “젊은이들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낳을 것 아니냐. 장가 빨리 보내는 정책, 지금 그 계획을 세우고 있다”(복무연한 대폭감축) * “‘국방개혁 2020’ 하는데 돈이 특별히 더 드는 것 없다. 50만 명으로 줄인다. 인력을 줄이고 더 줄여야 된다. 왜 인력을 줄이고 무기를 늘리느냐. 북한하고만 싸우려면 지상전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 (군인이) 배가 많아야 한다. 떼거리가 많은 게 제일 좋은 거다. 그러나 우리 안보를 전방위 안보로 생각한다면 떼로 안 된다. 사람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막사 짓고, 사람한테 들어가는 것 다 아끼고 아주 성능 좋은 무기를 개발해야 된다. 국방 개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낳을 것 아닌가.” 안보의 제1지주인 한민연합사 해체 * 2006.12.21일,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발언 “한국군 방위력이 얼마만큼 큰가. 정직하게 말하자. 근 20년간 북한보다 수십 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래도 한국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1970년대를 어떻게 견뎌 왔겠느냐.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다 떡 사 먹었느냐.” “옛날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드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그 많은 돈을 쓰고도 북한보다 약하다면 직무유기한 거다.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주한미군) 2사단 뒤로 나와도 괜찮다.”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행사)할만한 실력이 없느냐.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나. 나도 군대 갔다 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받았는데….심심하면 사람들한테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의 사람들은 뭐 했나. 자기 나라, 자기 군대의 작전 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그런 것이냐. 그래서 (전시작전권을)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자기들이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전시작전권 돌려받으면 우리 한국군들 잘한다. 경제도 잘하고, 문화도 잘하고, 영화도 잘하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 나가 보니까 못하는 게 없는데 왜 전시작전권만 못한다는 건가. “노무현 하는것 반대하면 정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을 때 북한과 우리가 대화하거나, 중국과 우리가 대화하거나 그래도 한국이 말(힘이) 좀 있지 않겠냐. 전시작전권도 없는 사람이 민간 시설에 폭격할 것인지 아닌지, 그것도 마음대로 결정 못하는 나라가 그 판에 중국한테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북한한테 무슨 할 말이 있나. 이것은 외교상의 실리에 매우 중요한 문제 아니겠는가. 유사시가 없을 거니까 그런 걱정 할 것 뭐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럴 바에야 전시작전권이 왜 있어야 되나. 나는 그분들이 외교안보의 기본원칙조차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명색이 국방부 장관을 지낸 사람들이….그런데 또 알았다면 왜 전시작전권 환수를 지금까지도 할 엄두도 안 내고 가만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모든 것이 노무현이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흔들어라 이거지. 흔들어라. 난데없이 굴러 들어온 놈. 예, 그렇게 됐다.” “미국에만 매달려,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껌딩이, 미국 껌딩이 뒤에 숨어서 형님, 형님,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자주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미국이 한국에서) 난 나가요 하면 다 까무러치는 판인데 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미국하고 대등한 대결을 할 수 있겠나” “(미2사단 빠지면) 다 죽는다고 국민들이 와들와들 사시나무처럼 떠는 나라에서 무슨 대통령이…” “왜 하필이면 그 좋은 금싸라기 땅에 미군이 딱 버티고 앉아 지하철도 못 내고 도로도 못 내고…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때 합의해놓았는데 돈이 없어서 못한 것을 하는 것이다" “외국군대가 우리나라에 와서 전쟁놀이 못하게 할 정도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 “우리 안보를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 조용하게 안보 하면 되는데, 정부가 ‘안보’ ‘안보’ 하고 나발을 계속 불어야 안심이 되는 국민의식, 이것 정말 힘들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강원도 북쪽 어디에서, 저 함경북도 앞바다 어느 쪽으로 미사일을 쏘았는데, 한국으로 그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 않느냐. 다 알고 있는 일이지 않느냐. 정치 정세, 안보 정세가 장기적으로 총체적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는 것이지 그날 (당장)큰일 나는 것 아니다. 그날 전쟁 나는 것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 가지고 “국민 여러분, (북한이) 미사일을 쐈습니다, 라면 사십시오, 방독면 챙기십시오” 이렇게 해야 하느냐.“ “(2006.7.4. 북한의 미사일 무더기 발사에 대해) 새벽에 비상을 걸어야 하느냐. 아침에 보고받았다. 긴급히 안보상임회의를 소집하자고 했는데…, 국민들을 놀라게 할 이유가 뭐가 있나. 그래서 11시에 한번 모이자고 했고 관계장관 간담회로 했다. 간담회로 하나 상임위원회로 하나 새벽 5시에 모이나 11시에 모이나 일 처리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왜 북치고 장구 치고 국민한테 겁주지 않았느냐며 나를 얼마나 구박을 주는지. “줄줄이 전작권 반대성명…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노무현의 심부름꾼 윤광웅의 발언 * 2006.10.20(금), 워싱턴에서 열린 제38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전작권 전환(2009.10.15∼2012. 3.15) 합의. 전시작통권 이전과 함께 한미연합사는 해체된다. * 2006.12.31. 윤광웅의 말 1) "연합체제는 주권 침해다." 2) “연합사는 북한과의 평화협정이나 군축을 위해 해체할 필요가 있다” 3) “연합체제는 자주국방이 아니다.” 정권 전체가 붉은 색 * 송두율이 입국하여 법적 문제가 야기되자 노무현은 “송두율을 청와대에 초청하고 싶었다” 말했고, KBS가 송두율을 민주화인사요 세계적인 학자로 미화-영웅시하는 방송을 했고, 이어서 각료들과 여당인 열우당 의원들이 이어서 송두율 지지발언을 했다. 2003.9.24. 강금실 법무장관은 “설사 김철수라고 해도 처벌할 수 있겠어요. 그보다 더한 정치국원 이상의 인사들도 왔다갔다하는 판에"라며 송두율을 비호했고, 이어서 2003.10.10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 송두율 사건에 대해 "왜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송두율 문제를 희석시키려 했다. 열우당 이종걸의원은 “송두률은 하버마스에 버금가는 저명한 철학자다"라 했고, 신기남 의원은 암흑의 시대에 외국에서 고민하던 학자의 행적을 갖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군사독재에 협력한 사람들, 과거의 잣대로 봐선 안 되고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자기 발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하고 사과했는데 따뜻하게 맞아주지 못한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느냐", 이강래 의원은 ”민주화 운동기념 사업회가 나름대로의 선정 기준에 따라 송 교수를 초청한 것 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감쌌고, 송석찬 의원은 “송교수 초청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며 감쌌다. 의원직을 가진 열우당 45명중 20명이 드러내놓고 송두율을 비호했으며 의중을 언론에 드러내 놓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 2002.2월, 중앙일보가 이념성향을 조사했다. 0점이 극좌이고, 10점이 극우인 눈금에서 노무현은 1.5점, 극좌를 기록했다. 민주당 평균이 3.7점, 2003. 11월, 뉴스위크 한국판이 국회의원 2백 8명을 상대로 한 실명 설문조사를 했다. 열우당은 외교안보, 국가보안법, 대북문제 등의 정치 분야에 있어서 강한 친북 색채를 띠고 있었다. 65.8%의 열우당 의원들이 노조의 경영참여를 지지했다. 76.3%는 반미-친북 성향을 나타냈다. 송석찬 의원은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악의 화신"이라고 발언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당의 공식입장으로 채택했다. 임종석 의원은 파병을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했다.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 서명의원의 57%가 열우당 소속, 송석찬 의원은 "국가 보안법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악법이므로 부분개정이 아닌 전면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발언했다. * 열우당의 81%(47명중38명)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 “국보법과 같은 전근대적인 악법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 “미국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세운 나라다”, “송두율은 위대한 학자다”, “영해침범이 아니라 영해통과다”, “제주해협은 북한에도 통항할 권리가 있다”, “한총련이 합법화돼야 한다”, “북한인권개선에 반대한다”, 북한 퍼주기 * 2007.2.15. 로마에서: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퍼주어도 남는 장사다.” * 노무현 정부가 북에 퍼준 돈은 5조6,777억 원이다. 참고로 김대중 정부는 2조7,028억 원을 보냈고 김대중은 여기에 더해 김정일 비자금으로 현대를 통해 9천억 원을 더 보냈다.(2008.9.30. 동아) * 퇴임이 몇 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인 2007년10월2일 방북하여 부랴부랴 정상회담을 열어 국민과 국회의 동의 없이 10.4공동성명을 통해 14조3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국가정보 통째로 무단 방출 * 2007년말 노무현정부가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의 저장디스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원본데이터 디스크가 사라졌으며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측의 의도적 유출일 가능성이 있다.(한나라당 이진목의원) “참여정부 5년간의 대통령 통치기록을 담은 72테라바이트(TB) 분량의 238개 원본디스크가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검찰에서 수사중인 28개의 하드디스크는 원본디스크의 약 25%에 불과해 나머지 자료의 행방에 대한 추가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사라진 노무현 기록은 A4용지 236억장 분량이다. 한나라당 안경률 사무총장은 10월7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검찰은 국가기록물이 외부로 유출됐는지 또 2, 3차로 복제돼 유출됐을 가능성은 없는지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등 정권 요부에 좌익심기 * 386주사파 출신 강길모(프르존뉴스사장)씨는 386주사파를 이렇게 열거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이다. 그 사람이 최근 대통령의 대북밀사로 북측과 접촉했다. 안희정 말고도 노무현 주변에는 주사파 출신들이 득실득실하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제1부속실장과 제2부속실장, 청와대 대변인, 부대변인, 주요 정책부서 행정관들이 과거 주사파 출신들이다. 청와대에는 내가 직접 가르친 사람들도 여럿 있다. 반미청년회에 속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들이 바로 노무현 권력의 코어(핵심)집단이다. 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코드’라고 하는 것은 바로 주사파 코드라고 보면 된다 노무현 권력은 당초 386 운동권 권력이었다. 대한민국의 통치권력은 주사파 권력이며, 대한민국은 적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은 아니라 본다. 방송의 좌익심기 * 정연주: 2003년 4월, KBS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낙하산 논란과 두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둘러싼 말 바꾸기, 좌로 편향된 방송, 적자경영 등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노무현이 후보시절에 언론고문을 지낸 바 있던 서동구 전 사장이 추임한지 9일 만에 낙하산 논란으로 물러나자 제2의 낙하산으로 임명된 노무현 사람이다. 그는 취임 그는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물현대사’ ‘미디어 포커스’ 등을 통해 좌편향의 이념방송을 주도했고, 2004년6월 노무현 탄핵소추 당시 무려 10여 시간의 탄핵 생방송을 내보내 노무현을 감쌌다 참 고 1.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은 1948년 막걸리에 메틸알코올을 잘못 타 먹어 권양숙이 두 살 때 실명했다 한다. 1948년에 남로당에 가입, 6.25 때 권오석은 마을 위원장이 되어 11명의 양민을 학살했다 한다.(대법원 기록에는 9명) 2. 구글에서 노무현의 아버지 노판석을 검색하면 5,850개(2008.10.7. 현재)의 글이 뜬다. 거기에는 청와대 게시판에서 퍼왔다는 이런 취지의 글들이 수북하다. “기록에 의하면 노무현의 조부는 일제 앞잡이였다 한다. 해방이 되자 마을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한다. 아버지 노판석은 자기 잡안이 당한 이러한 멸시에 한을 품고 인민군이 들어오자 빨치산이 되었다 한다. 6.25가 끝나자 노판석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또 다시 손가락질을 받고 고립되었다 한다. 그래서 전라도 강진에서 밤중에 몰래 목포로 도주하여 배를 타고 부산에 가서 가호적을 만들었다 한다.” 3. 일본 [정론] 2003년8월호(저자 니시오카 쓰모두, “좌경화한 한국에서 번지는 반한 자학사관과 친북교육”)에서 아래 문장을 발췌한다. 1) “대한민국의 체제는 통일 이후에도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노는 “현단계에서 그에 대한 대답을 삼가겠다”고 대답했다. 2)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3) 부인의 부친은 경북 창원군 군당 부위원장이 되었다. 인민재판을 열어 9명의 주민을 학살한 죄로 국가보안법을 적용받아 무기징역을 받아 옥중에서 병사했다. 4) “국가보안법을 폐지합시다. 죄인으로 탄압받으면서 신음하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듭시다.” 5) 당선 직후 그는 장인의 묘소를 참배하면서도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홉 명의 가족들에게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4. 아래 글은 "미국은 북한을 핵 폭격한다."(히다카요시키 저)에 있는 글이다. "노무현은 김정일 이상으로 미국에 적대하고 있다. 미국의 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는 노무현과 만나면서 한 번도 노무현의 얼굴을 바로 쳐다 본 적이 없다. 지극히 싫어해서다" “노무현이 미국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3가지 이유에서다.” (1) 그는 원래 반미정치가이다. 반미세력을 이용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스스로 반미세력을 결집-확장시키는 사람이다. (2) 노무현의 장인이 북한의 게릴라였으며 한국전 당시 많은 미군을 학살했다고 믿고 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자 미군병사들을 다수 살해한 게릴라의 묘에 찾아가 참배를 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상처다. (3) 그가 이끄는 청년들은 핵무기를 민족의 무기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젊은 학생들에 전파하고 있다. 5. 중앙일보 2003.8.21 시론 (김승환 명지대 교수.美CSIS 선임연구위원)에는 이런 글이 있다. 요즘 워싱턴의 일부 관리들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 특히 청와대를 가르켜 "탈레반"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현 정부가 예측 불허하고 위태롭고 위험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말이다. 최근 만난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 동맹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미국.일본과의 공조보다 북한을 포용하고 중국과의 관계증진을 위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9.4.9. http://systemclu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