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 총연합은 중앙회와 대구시회, 대전시회, 경기도회, 부산시회, 울산시회, 경남도회, 경북도회가 참여하여 2022년 9월24~25일 경남 고성에서 연수회를 실시하였다. 1일차 입제식과 강연회는 부용사(주지 운성스님 / 경남도회 지도스님)에서 실시하고 숙영과 2일차 아침예불과 강연회 및 회향법회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님께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신 당항포 거북선 팬션에서 실시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살신구국의 정신이 서린 당항포의 그림 같은 전경이 너무 좋았다는 평가> 금년도 연수는 대불총이 지난 7월 4일 실시된 "보살도 실현을 위한 한국불교의 틀과 재가불자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재가불자들의 "숲과 나무"의 공부를 통하여 불교를 바로 이해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촛점을 맞추었다. 연수회에는 중앙회 상임대표 공동회장 박희도(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하여 상임지도 법사 법일스님/재원스님 그리고 임원및 회원 30여명이 참석하고 시,도회에서는 시도회장과 지도스님 및 회원들 등 총 90명이 참석하였다. 제일 먼저 봉행된 입제식은 국민의례와 불교의례, 대표회장님 인사말, 법문 순으로 진행되었다. 대표회장 박희도 회장의 인사말 요지 건강한
윤대통령이 바이든과 만난 후 외교부 장관과의 개인적 대담 내용에 저속한 언어를 사용했다 는 매스컴의 보도가 외교의 막말 참사로 커다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 진위가 어떠한지는 시간이 지나면 판가를 날것이다. 그러나 웃기는 것은 참모와 둘이서 한 말이 어째서 외교 참사인가? 속담에 임금에게도 없을때는 욕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찌됬던, 기사를 낸 기자와 보도를 하는 매체들은 한 껀을 올린 것이다. 가자는 대통령이 참모와 걸어가면서 둘이서 한 말까지 집요하게 취재하였고 그 보도는 세계를 놀라게 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자부할 것이다. 졸부 근성의 보도집단이라면 맘에 안드는 대통령을 험집 낸 것에 더욱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과연 한국의 기자들이 정의를 위하여 몸바치는 투사들이라고 평가를 해줄까? 그렇게 좋게 봐줄수도 있고, 반대로 자국의 대통령의 실수를 여과없이 보도한 국적없는 보도집단이라고 평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번의 사건을 통하여 기자들과 기사를 선별하고, 기자들을 세계적 엘리트 기자로 육성해야 할 매스콤 들, 그리고 매일 같이 기사를 접하는 국민들은 기사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기사를 써야 할지를 생각해볼 좋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국민의 지지표를 받은 전직 좌파 대통령들은 북-중-러가 원하는 정치를 미친듯이 실천해왔습니다. 이것이 한국정치의 불행입니다. 지난 좌파 대통령들은 한국의 민주화정치를 운위하면서 가장 타도의 타켓이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방첩기관의 방첩요원들을 족집개로 찍어내듯 하여 길거리로 내쫓았습니다. 주장의 근거로 좌파 대통령은 국정원 전문 정보수사요원 581명을 길거리로 내쫓았습니다. 대공경찰 2600여명과 기무사 대공수사 요원 600여명을 일시 해임하여 길거리로 내쫓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대한민국 건국을 도운 국가 유공자들입니다. 좌파 대통령과 좌파 언론인들이 북을 위해 대한민국의 수호자인 파수꾼들을 집단 도륙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는 반공의 대한민국이 북의 스파이천국이 되었다고 분석과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스파이 천국이 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최후를 예고하는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김씨 왕조의 스파이들만 공작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북-중-러의 스파이 천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작금에는 대한민국을 망치는 정치공작은 대부분 중공 정보부의 공작이 대부분 활동하고 있다고 나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반 대한민국 교과서와의 전쟁 지난 8월 20일 교육부가 공개한 “2002년 개정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제거하고, 6.25전쟁에서 “남침”을 제거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은 “정부수립”으로 격하 시키는 등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체성에 반하는 것으로 지적되어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이전부터 제기되었던 문제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어렵게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국가의 정체성에 입각한 역사 교과서 초안을 발간하였으나 탄핵으로 뒤를 이은 문재인 정부에서 채택하지 않음으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본적으로 교과서 문제는 “북한이 정통성이 있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좌파들이 이념전쟁에서 중요한 축으로 이용되어, 반대한민국 전사 양성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국어, 윤리, 사회 등 청소년들의 정서부터 역사인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세뇌 시키고 있다. 문제의 교과서들은 공산주의를 찬양하거나 공산주의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공산주의를 찬양 하도록 우회적 교육을 하고 있다. 좌파들은 이것을 “다양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차제이능변 시식명말라 依彼轉緣彼 思量爲性相 의피전연피 사량위성상 다음, 두 번째로 능변(能變)하는 이 식(識)을 말나식(末那識)이라 한다. [말나식은] 그것[제8식]을 의지하여 움직이고, 그것[8식]을 반연하여 사량(思量)하는 것으로 성상(性相)을 삼는다.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 차제이능변 시식명말나 아뢰야식이 제1 능변(能變)식이고, 그 다음으로 능히 변화를 일으키는 식(識)은 말나식(末那識)이라고 부른다. 말나(末那)는 인도말의 음역이고, 의(意)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육식(六識)인 의식(意識)과 혼돈을 피하기 위해 주로 말나식이라 부른다. 의(意)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지(意志)를 그 본성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제6송에서 의지적(意志的) 본성을 설명하고 있다. 依彼轉緣彼 思量爲性相 : 의피전연피 사량위성상 의피전(依彼轉)의 피(彼)와 연피(緣彼)의 피(彼)는 제8 아뢰야식의 대명사이고, 주어 제7 말나식은 생략되어 있다. 말을 붙여보면, 제7 말나식은 제8 아뢰야식에 의지하여 움직이고 아뢰야식에 의지[반연]하여 사량(思量)하는 것을 성(性)과 상(相)으로 한다. 제8 아뢰야식에는 수많은 겁 동안 쌓여져온 생멸하는 수많은
‘법철(李法徹)스님, 조계종 승적에서 말소되다, 지난 8월 23일, 오후 법철스님은 재적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여직원으로부터 전화로 조게종 승적부에서 말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법철스님의 조계종 승적 말소” 이유는, 첫째, 승려증 경신 신청 서류제출 때, 소유한 전제산을 조계종에 바친다는 유언장을 암감증명에 의해 공증하여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둘째, 대불총(大佛總(대한민국 지키기 연합회) 회원들이 조계종을 상대로 좌파 승려질타의 각종 운동의 배후에는 대불총 상임지도법사인 이법철스님이 선동하고 있다는 “괘씸죄”다. 조계종은 고 송월주 총무원장 떼부터 진보를 가장한 한국 종교계에서 가장 크게 승속의 주사파들이 대한민국 적화의 진지(陣地)를 파서 조계종 불교의 돈으로 대한민국 적화 혁명사업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공공연히 있어왔다. 조계종은 송월주 전 총무원장의 상좌인 원행스님이 자승 전 총무원장의 금전 지원으로 총무원장이 된 후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보수 승려인 법철스님을 탄압해왔다. 법철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을 장악한 불교계의 현실을 을 개탄하고 좌파승려의 음모에 굴복하지 않고 줄기차게 나라없는 민족에 대한민국
유식 30송의 개요(槪要) 유식 30송 중 제1송에서 24송까지는 유식의 상(相)을 밝혔고, 25송에서는 유식의 성(性)을 밝혔으며, 26송에서 30송까지는 유식의 수행과정을 밝혔다. 제1송에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아(我)와 법(法)은 사실(事實)을 바로 알지 못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변화는 식(識)을 의지해 일어나고, 그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에는 3가지 식(識)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우리들이 보고 듣고 맛보는 것이 사실대로 보고 듣고 맛보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식(識)에 의해 감지(感知)되는 느낌이다. 이러한 식(識)은 3가지뿐이라고 했다. 제1송에서 우리들의 마음에 3가지 식이 있음을 밝혔다. 제2송에서 이 3가지 식(識)은 이숙식(異熟識), 사량식(思量識) 그리고 요별경식(了別境識)이다. 이숙식은 종자와 결과가 다르다고 하여 이숙식이라고 하는데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기도 하고,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짓는 일체의 업이 종자로 아뢰야식에 저장된다는 의미로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제3송에서, 아뢰야식이 어떻게 일체 업의 종자를 받아서 지니는지, 어디에 저장하는지, 연(緣)을 만나면 어떻게 그 종자들을 요별해서 그
此卽無漏界 不思議善常 차즉무루계 부사의선상 安樂解脫身 大牟尼名法 안락해탈신 대모니명법 이것이 곧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의 경계이며 부사의(不思議)한 선(善)이며, 상(常)이고, 안락(安樂)한 해탈신(解脫身)이고, 대모니(大牟尼)이니, 이를 법신(法身)이라 한다. 차즉무루계(此卽無漏界) 부사의선상(不思議善常) 차즉무루계(此卽無漏界)의 차(此)는 29송의 사이조중고(捨二粗重故) 변증득전의(便證得轉依)를 받는 말이다. 사이조중고(捨二粗重故), 즉 번뇌장와 소지장을 여의였으므로 전의(轉依)를 증득해 미세한 번뇌마저 완전히 소멸하였으므로 이것을 곧 더 이상 번뇌가 없는 경계(境界)라고 하여 무루계(無漏界)라고 했다. 무루계(無漏界)의 상(相)은 부사의선상(不思議善常)하고 안락해탈신(安樂解脫身)하며 대모니(大牟尼)인데 이름하여 법신(名法)이라 한다고 했다. <대모니명법(大牟尼名法)이란 모니(牟尼)는 적묵(寂默)의 뜻으로 언설동작(言說動作)과 심연분별(心緣分別)을 여읜 것을 말하고 법(法)이란 법신(法身) 또는 법성신(法性身)을 말한 것으로 이를 안락해탈신(安樂解脫身) 또는 대모니신(大牟尼身)이라 한다> 부사의선상(不思議善常)은 선(善)의 부사의성과 상(常)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무득부사의 시출세간지 捨二粗重故 便證得轉依 사이조중고 변증득전의 얻을 것이 없는 곳에 부사의(不思議)한 일이 있으니, 이것이 곧 출세간지(出世間智)이다. 두 가지의 거칠고 무거운 것을 버렸기 때문에 곧 전의(轉依)를 증득했다. 제28송에서 離二取相故 智都無所得을 설명하면서, 자기 자신의 잘못된 성품[탐진치만의견(貪瞋癡慢疑見)]을 찾아 소멸하고, 자기가 보고 듣고 하는 바에 따른 잘못된 견해를 끊임없이 찾아 소멸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어느 듯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대상임을 알게 되었으니 너의 안녕이 나의 안녕이 되고 나의 불행이 너의 불행이 될 수 있는 이치를 알게 되었으니 너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하니 얼마나 네가 나를 알아주고 너에 의해 내가 득을 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얼마나 알아주고 너에게 득을 베풀 수 있느냐는 문제로 돌아서게 되니, 너로부터 득을 봄으로서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덕을 베풂으로서 우리의 행복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너와 나를 분별하여 경쟁 관계에 있
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 약시어소연 지도무소득 爾時住唯識 離二取相故 이시주유식 이이취상고 만약 소연경(所緣境)을 대할 때 조금도 소득심이 없는 지혜를 얻었다면, 이 때 유식성에 머물게 된다. 이것은 이취(二取)의 상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소연(所緣)은 능소(能所)의 소(所)이니 어떤 상대를 대할 때 조금도 득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능취와 소취, 능과 소의 상을 여의었기 때문이니, 이 때 유식성에 머무는 것이 된다. 능소의 상을 여의었다는 의미는 제7 말나식의 아상(我相), 아소(我所), 아애(我愛), 아만(我慢)을 여의었다는 뜻이고, 이는 곧 탐진치 삼독을 여의었다는 말이니 자기를 위한 소득심이 모두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금강경 제5송에서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하니 아상(我相)과 법상(法相)을 모두 여의고,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일체 소득심을 여의면 즉견여래(卽見如來) 곧 원성실성을 보리라. 이 송에서도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여의고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성취할 것을 말씀하신다. 도무소득(都無所得)은 반야심경에서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에서 시작하여 “고집멸도도 없고 지혜도 없으며 얻을 것도
現前立少物 謂是唯識性 현전입소물 위시유식성 以有所得故 非實住唯識 이유소득고 비실주유식 눈앞에 작은 물건을 하나 세워 이것이 유식성(唯識性)이라고 한다면 이는 소득심이 있는 것이므로 유식에 진실로 머무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어떤 작은 물건이 나타났다고 인식하고, 그 인식하는 마음을 유식성(唯識性), 즉 원성실성이라고 말한다면, 이 유식의 작용에는 소득(所得)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므로 실(實)다운 유식(唯識)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앞에 아무리 작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그를 구하는 마음 내지 의지하고자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이 곧 소득심(所得心)이다. 소득심이 있으면 사량심(思量心)이 작용하여 변계소집(遍計所執)이 일어나게 된다. 소득심에는 제7 말나식, 즉 사량심이 있고, 사량심에서 변계소집이 작용하게 된다. 변계소집이 작용하는 마음에서는 실다운 유식이 머물 수 없으니 변계소집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눈앞에 있는 작은 물건을 어떻게 보는 것이 유식성(唯識性)일까? 작은 물건이 있다고 보는 것은 본래 내 마음이 보는 대로 그 물건이 있는 것인데 탐심에 가리어 그 물건이 있는 대로 내가 본
乃至未起識 求住唯識性 내지미기식 구주유식성 於二取隨眠 猶未能伏滅 어이취수면 유미능복멸 또한 유식(唯識)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유식의 실성(實性)에 머물고자 한다면 2취(二取)가 수면(隨眠)에 들어가 오히려 능히 복멸(伏滅)할 수 없을 것이다. 내지미기식(乃至未起識) 구주유식성(求住唯識性) 내지미기식(乃至未起識) 중 ‘내지(乃至)’는 앞 25송 - 차제법승의(此諸法勝義) 역즉시진여(亦卽是眞如) 상여기성고(常如其性故) 즉유식실성(卽唯識實性)에 ‘이어서 그리고 또’ 라는 의미이고, ‘미기식(未起識)’은 식이 아직 일어나지 못했는데, 혹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니, 이 식은 곧 앞 구(句)에 나오는 유식(唯識)을 말함이니, 유식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유식성(唯識性)에 머물고자 하면, 어이취수면(於二取隨眠) 유미능복멸(猶未能伏滅) 이취(二取)인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종자가 제8 아뢰야식에서 수면(睡眠)에 들게 되어 오히려 이취(二取)를 복멸(伏滅)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제25송에서 유식실성이 곧 진여이고 항상 여여하게 존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제26송에서는 그렇다고 하여 수자(修者)가 유식실성에 곧바로 머물고자하면 제8 아뢰야식에 있
제 25 송 此諸法勝義 亦卽是眞如 차제법승의 역즉시진여 常如其性故 卽唯識實性 상여기성고 즉유식실성 이것이 모든 법의 승의(勝義세간의 이치보다 수승한 깊고 오묘한 의리(義理))이고 또한 진여(眞如)이다. 그것의 본성은 항상 여여(如如) 하기 때문에 유식(唯識)이 곧 실성(實性)이다. 乃至 “이것이 모든 법의 승의(勝義 세간의 이치보다 수승한 깊고 오묘한 의리(義理)를 승의라 한다)이다.” 중 ‘이것이’가 제24송의 “후유원이전(後由遠離前) 소집아법성(所執我法性), 최후는 앞에서 설한 아(我)와 법(法)에 집착하는 성질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를 받는 말이니, 말을 붙이면, 최후는 앞에서 설한 아(我)와 법(法)에 집착하는 성질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이것이 제법승의(此諸法勝義)이고 또 역시 이것이 곧 진여이다가 된다. 앞의 구절에서 ‘아(我)와 법(法)에 집착하는 성질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라는 말씀은 오별경 수행을 통해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성취하여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이미 여의었다는 말씀이니 전생에서부터 가지고온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하던 성질이 180도로 변하여 완전히 위타(爲他)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제법승의(諸法勝義)란
初卽相無性 次無自然性 초즉상무성 차무자연성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 후유원리전 소집아법성 처음은 곧 상(相)이 무성(無性)이요, 다음은 자연성(自然性)이 무성(無性)이다. 그리고 최후는 앞에서 설한 아(我)와 법(法)에 대한 집착하는 성질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다. 초즉상무성(初卽相無性) 처음, 상(相)이 무성(無性)이라고 한 것은 상(相)은 변계소집(遍計所執)하여 일어나는 모습인데, 이렇게 일어나는 모습이 무성(無性)이란 말이다. 이는 금강경 제5송에서 제상비상즉견여래(諸相非相卽見如來)에서 제상(諸相)이 변계소집된 상(相)이고 비상(非相)이 무성(無性)이다. 그리고 32송에서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고 한 말씀이 변계소집의 상(相)이다. 그리고 반야심경에서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고 한 말씀도 상무성(相無性)과 같은 뜻이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모두 변계소집성이 만연되어 왔기 때문에 누적된 문제이다. 이 변계소집은 개인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국제적, 국내적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가정의 불화와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심각하게 바라보고 이해해야할 성품이다. 위에서 이미 설
한국정치에 마오쩌둥의 문회혁명 때 선동구호인 (조반유리(造反有理)는 다시 시작되었나? (韓國政勢分析) 모택동이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과 학생들을 부추기기 위해서 내건 선동구호로 조반유리(造反有理)가 있다. 마오쩌둥이 권력투쟁 과정에서 政敵(정적)들을 묘하게 때려잡기 위해, 젊은이의 반항을 합리화시켜 주는 이 말을 써서 큰 효과를 보았다. 이 「造反有理」는 문혁 기간 중에 많이 유행되었으며, 196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던 학생운동의 슬로건으로 자주 들먹여졌다. 문혁의 불길이 타오르기 몇 달 전에 모택동은 이런 말을 해서 주목을 끌었다. 『중앙 기관이 좋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지방이 造反(조반)해서 중앙으로 進攻(진공)하도록 호소해야 한다. 각지에서는 많은 孫悟空(혁명가 홍위병=손오공)을 보내서 천궁(天宮)같은 중앙정부를 소란하게 해야 하고 인민의 낙원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 마오쩌둥이 지적한 천국은 유소기, 등소평 등이 실권파로 있던 당 중앙을 말한다. 여기서 모택동이 기대하는 「西遊記(서유기)」 속의 손오공은 전국의 중학, 대학 에서 튀어나와 전국을 휩쓸었던 홍위병일 것이다. 그런데 이 「造反有理」는 모택동의 성격과 개성, 그의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