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9총선 결과를 보면서 미래를 전망해 본다 한승조 총선 다음날 4월 10일, 아침 일찍 조간신문을 찾았다. 어제 저녁 뉴스보도로 대강은 알았으나 최종적인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신문을 보면서,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단 말인가. 평소에 정치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으며 또 얼마나 속상했고 걱정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감정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마도 노인층의 반응일 뿐이며 바쁘게 살아가는 4-50대 연령층과는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무엇 때문에 선거의 결과가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던지 정리해 보겠다. 1. 좌파세력의 뼈아픈 패배와 비좌파(중도 및 보수우파)의 통쾌한 승리 과거의 좌파정권과 친북좌파의 패배가 의심의 여지없이 드러난 總選(총선)이었다. 정치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다수 국민들도 몇 개월 전, 大統領(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의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그런데 그런 기쁨을 다시 한번 맛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정부와 여당측의 그 뛰어난 재주꾼들 선동가들 그리고 政治工作(정치공작)의 명수들이 어쩌자고 이번에도 그렇게 힘없이 무너졌던가? 대기업하면 우선적으로 감시 억압하고 규제하며 노동조합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해온 좌경정권하에서 민생경제가 순조롭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과거의 권위주의정권은 유산자들의 편익만 보호하며 무산자나 근로자들을 억압하고 박탈해 왔다고 말해왔지만, 이것이 얼마나 거짓이었던가? 경제불황의 고통은 부유층들보다 빈곤층・不遇階層(불우계층)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세월이 거의 10년 동안 계속하다보니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또는 그 언저리의 官用(관용) 시민단체들이 하는 소리나 내놓는 처방마다 百藥(백약)이 무효한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부와 관용 언론 특히 아무리 奇想天外(기상천외)의 묘안을 가지고 한나라당과 그 후보자를 계속 사납게 몰아붙였지만 유권자들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으며 한나라당과 그 후보자들을 꾸준히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좌파들의 횡포와 난동이 우리 국민들을 겁주면서 놀라게 한 것은 10년이 넘었다는 말도 나옴직하다. 또 그들의 國政紊亂(국정문란)은 아직 끝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거의 두 달이 되어 가지만 정치권력이나 돈 그리고 언론에 대한 영향력은 아직도 그 좌파들 잔당의 수중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4월총선일 직전 MBC TV의 선거보도만 보아도 통합민주당의 정동영과 손학규 후보의 독무대처럼 되어 있었고, 그에 비하면 한나라당의 정몽준의원이나 박진의원의 활동상은 최소한의 보도분량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니 민주국가의 공영방송과 그들의 보도가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최소한의 양식도 양심도 갖지 못한 좌파집단의 오만과 비양심에 이제 넌덜이가 난다. 좌파세력의 정치적인 패배의 중요원인 중의 하나가 TV뉴스와 그들이 조작해 낸 특집방송의 위력을 너무 過信(과신)하며 또 의지하려는 경향 때문은 아니었던가? 이것은 우리 국민들의 지적 수준을 너무 낮게 본 것이 아닐까.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무섭게 응징하는 좌파정치 집단이 그만 없어져야 할 시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감을 준다. 하여튼 그 좌파성향의 언론인 식자들의 문제는 그만 생략해야겠다. 2. 한나라당의 분열과 박근혜 추종세력의 거취 및 運身(운신) 전망 지난 10년동안 나라를 지배해 왔던 386대표주자들의 탈락과 沈沒(침몰) 그리고 여당내 좌파계열 首長(수장)들의 敗退(패퇴)가 이번 4・9총선의 특징이었다. 왕년 좌파투쟁의 카리스마를 유지했던 올드 레프트 지도자이며 한때 노무현시대의 여당 총재를 지냈던 김근태의원이 40대 중반의 뉴라이트 대표인 신지호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1990년대부터 동유럽에서는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나라마다 큰 변화와 혼란을 겪고 있는 무렵 中國에서는 등소평이 중국공산당을 통솔하여 체계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北韓의 김정일정권은 핵무장의 방향으로 국제적인 긴장을 조장하는 한편 대남정치공작에 큰 성과를 거둬서 남한의 386세대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갔다. 과격좌파의 정치세력이 외국에서는 모두 중심을 잃고 해체되어 혼란속으로 빠져 들어가거나 소멸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오히려 더욱 붉어져서 南北에서 無所不爲(무소불위)의 위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의 공산주의운동의 중심이 한반도로 옮겨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펴는 좌파논객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도 남북한의 특이한 면처럼 보였다. 이것도 김일성의 主體思想(주체사상)탓인가? 하긴 한국의 國花(국화)인 무궁화도 다른 꽃들이 모두 피고지고 난 다음에야 피기 시작하는 특징을 보이긴 한다. 그러나 白雪(백설)이 滿乾坤(만건곤) 할제 獨也靑靑(독야청청) 하는 솔나무와는 다르게 세상이 모두 풀어졌을 때 獨也赤赤(독야적적)하려는 기백도 알아주어야 하는 것인지? 남한에서 좌파세력을 유지해 왔던 얼음덩이도 겨울이 지나니까 녹아내리는 것을 보니 세월의 변화를 이기는 수는 없어 보인다.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순수한 좌파가 아닌 준좌파세력의 귀취문제이다. 이번의 4・9총선에서 가장 놀라웠던 현상 중의 하나가 한나라당의 야전사령관격인 李在五와 그와 분담하여 당 공천을 주도했던 이방호 사무총장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자인 김형준 의원 등은 落馬(낙마)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떠한 波長(파장)을 가져온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재오와 이방호의 낙선에 대해서는 이번 한나라당의 공천에 不服(불복)한 박근혜의 측근들 또는 박사모의 中心部(중심부)가 집중적으로 공작한 결과일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그런 낭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李明博과 이재오 그리고 강재섭과 이방호의 합의로 이루어진 결과이며 그 중에서도 이재오와 이방호는 공천자 리스트 작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공천자 리스트를 공표하기에 앞서서 박근혜측의 양해와 지지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공천자를 선발했을 때 충분한 이유가 있었더라도 그 행동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박근혜측을 한나라당 지도부가 다수결로 처리할 그런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실상 한나라당의 원주인이며 또 적어도 출발시는 공동주인의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만큼 그 리스트를 박근혜측에게 먼저 보여주면서 양해를 구하며 최후적인 조정을 겪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재오와 이방호 그리고 강재섭은 박근혜측을 무시하여 일방적으로 평당원 취급하는 무례를 범하였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열을 받은 박근혜도 이명박과 그 일당을 모조리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겨우 과반수를 넘는 153석을 얻었으나 친박연대가 14석, 무소속이 25명의 당선자를 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분열만 없었더라면 한나라당은 200석 획득도 무난했을 것이다. 여기서 또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 박근혜 추종세력의 미래처신이다. 한나라당의 공천리스트가 불만스러웠다고 해도 그렇게 반당적인 분파행위를 한 것을 좋게만 볼 수가 없다. 필자의 소견은 過誤(과오)는 쌍방에게 있지만 그 비율은 7대3 내지 6대4의 비율로 강재섭 이재오 이방호로 구성되는 한나라당측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다. 문제는 박근혜측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나라당 主流(주류)측에 불복하고 분파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경우에 박근혜는 자신이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가 아닌데도 계속해서 통치권자에게 불복하고 저항하는 경우에는 차라리 분당한 다음에 야당의 입장에서 싸워야 할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그 의사를 존중하고 포용을 시도했음에도 박근혜측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따라나서지 않는 경우에 더 이상 박근혜측과의 연대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3. 자유선진당의 경우 2007년 노무현 정권을 대신하는 여야당의 대권후보자 경쟁이 한창일 때 이회창은 政界(정계)로의 북귀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한나라당 밖에서 보수성향의 정당을 창당하고자 힘써왔다. 우선은 한나라당에 안주하지 못하는 박근혜파나 기타인사들은 이회창의 자유선진당 쪽으로 흡수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 뜻을 얻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결과적으로 충청도와 호남지역에서 통합민주당으로 흡수되지 못한 비주류 몇 명의 연합체로 되어 있다. 지역구 14석에 비례대표 4명으로 18명이라 제 3당은 되었으나 그 현재로서는 보수우파인지 진보좌파인지 그 성격이 매우 애매하여 그 장래성이 잘 보이지 않은 상태라 하겠다. 4. 좌파정당의 동향과 통합민주당의 처신과 전망 좌파정당의 쇠퇴와 몰락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다. 지금까지 국회의석 과반수를 넘게 차지해 왔던 노무현정권하의 여당들, 열린우리당과 기타 군소정당이 결합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역구 66석과 비례대표 15석으로 총 81석을 얻었으니 국회의석은 半減(반감)된 것이다. 또 한번 놀라게 된 것은 민주노동당인데 이들도 과거 10석에서 5석으로 감소되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지난 5년 동안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권이 축적해 온 惡政(악정)과 정책적 過誤(과오)의 총결산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좌파세력이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축소되고 쇠퇴 약화되어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여권세력은 숫자가 200명 가까이 되므로, 모두 합해도 100명이 될까말까하는 야당세보다 두 배나 많다. 그러나 사상적 통일과 행동의 공동보조가 매우 어려우며 사사건건 대립하고 끊임없이 말썽이 일어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약50명에 가까운 여당 내지 무소속 의원들이 야당인 좌파와 합세하여 改憲(개헌)도 마음대로 저지하는 경우도 생겨날 수가 있다. 다수파를 차지하는 與黨勢(여당세)는 차기 정권을 대비하거나 또 개별적인 이익을 위하여 끊임없이 불화하며 또 싸우기를 삼가지 않지만, 소수 야당은 자신들의 약세를 의식하여 언행을 조심하며 항상 행동통일에 유념함으로써 약화되었다는 左傾(좌경)세력은 그 영향력을 쉽게 잃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권력의 단물에 젖어왔던 좌경세력은 전술상의 변화를 위해 과거처럼 김정일을 무조건 추종하던 386세대의 親北反韓的(친북반한적) 입장에서 벗어나 좀 더 어른스러워지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더 못난 짓을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오히려 반좌익 중도파나 보수우파들의 입장은 갈수록 약화되거나 무력해질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유의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온건 합리적인 좌파로서 자기들의 입지를 세우는 한편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인 利點(이점)을 이용하려고 들 것이나 낙관할 수만도 없는 입장이다. 한국의 젊은 지식인들, 언론인・대학교수・법조인・행정관료와 시민운동단체의 지도층의 대부분은 386세대의 역사경험과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아온 세대들이기 때문에 일그러진 역사인식이나 왜곡된 현실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갖는 역사의식이나 국가의식에서 어떠한 미래가 창조될 수 있겠는가? 조선일보의 류근일씨는 4월 15일자 칼럼에서, “4・9총선은 단순한 보수우익의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체제를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체제로 변혁시키려는 從北주의 세력과 그 동맹군을 쓰나미처럼 쓸어낸 사건’으로 보면서 앞으로의 중요과제는 지난 10년간의 赤弊(적폐)를 씻어내는 일인데 이것이 바로 대선과 총선의 결과를 사회 경제 문화 교육의 총체적인 변화로 이끄는 길”이라고 설파하였다. 본인도 이 이상 더 좋은 마무리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전적으로 찬동한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 이명박정부・한나라당, 박근혜・이회창 등은 피차 경쟁 속에서 아낌없이 협력할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