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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사상

'사상의 빈곤' 연재 3. -미국역사에서 보다

사상이 있는 지도자가
학식 있는 지식인보다
훨씬 더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역사에서 보다

 

저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에서

5년간 체류하는 동안 그러한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식민지 시대 영국과 독립전쟁을 했고 남북전쟁을 치렀으나

미국의 승리와 북군의 승리를 기념하고 비극을 상징하는 어떤 조형물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잊지 말자는 기념관 같은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미국 민주주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사당 Capital Hill,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는

크고 둥근 돔(dome)이 영원히 분열 없는 미합중국(union)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이 돔이

남북전쟁중인 1853년 링컨 대통령의 착상과 지시로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최대 기여자는

미국이었으나 해마다 기념하는 승전국들의 V-day 행사 역시

미국이 아닌 프랑스나 러시아에서 거행되고 있을 뿐

미국 내에서는 거행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날 미국과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이 되어 세계를 향하여, 인류를 향하여 함께 손짓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미국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들의 대답은 지극히 간명했습니다.


과거의 원한과 증오를 남기거나 후대에 물려주지 않고

언젠가는 인류가 보편적 가치라는 한 지붕 아래서 한 가족이 되어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질문에 답한 미국 친구들은 미국을 이끌어가는 지도층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헌법 정신 속에는 단순히 미합중국 국민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 일제 식민시대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고 매주 한번씩 그 앞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것을 두고 시비를 하게 되면 친일반민족주의자로 매도될까봐

어떤 정치지도자도, 지식인도, 종교지도자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주에는 4·3 평화공원이 있고

광주에는 5·18 국립묘지가 있어

해마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상기하게 하는 행사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난날의 원한과 증오를 되새기는 시설과 조형물이나 기념행사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록은 남기되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 발전과 민족의 앞날을 위한 값진 지혜입니다.

이것은 제가 미국 체류 5년을 통하여 깊이 체험한 경험에서 비롯된 견해입니다.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 역사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나라는 하늘 아래서 함께 할 수 없는 오랜 숙적 관계에 있으면서

역사상 두 번에 걸친 보불전쟁,

두 번 에 걸친 세계 대전이라는 가장 처참한 전쟁을 치렀으나

지금은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지키고

유럽의 안전과 평화와 번영을 위해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사상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상이 있는 지도자와 사상이 빈곤한 지도자의 차이는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사상이 있는 지도자는 성공했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데 비해

사상이 없는 지도자는 실패했거나 오명을 남겼습니다.


사상이 지도자로 하여금 얼마나 위대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가까운 역사적 예를 든다면

미국의 19세기 링컨 대통령과 20세기 레이건 대통령입니다.


두 지도자는 단순한 정치적 투사(fighter)가 아니라

국가와 세계의 운명을 바꿔놓은 위대한 자유주의 전사(warrior)였습니다.

링컨은 미국의 운명을 바꿨고 레이건은 세계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링컨 대통령(A. Lincoln, 1809~1865)

통나무집에서 자라나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노예해방을 선언한 훌륭한 지도자이고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연설은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로 알려진 게티즈버그 연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유명한 연설은 그의 재선 취임 연설입니다.

미 국회의사당에서 곧바로 건너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링컨 기념관은

그 겉모양이 고대 희랍의 신전 모습과 흡사하여

링컨을 신격화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미 의회 의사당과 링컨 기념관 사이의 넓은 직사각형 공간은

미 의회 승인 없이는 어떤 건축물도, 조형물도 세울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링컨은 보잘 것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 정상적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정치인으로서는 연방 하원의원 2년 경험 밖에 없는, 그야말로 변두리 정치인이었음에도

미국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정치지도자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연유를

그의 정치적 삶과 그가 남긴 연설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건국 사상과 헌법 정신을 체험적 삶을 통하여 터득했고

그것이 그의 깊은 영혼과 결합됨으로써 자신의 사상이 되었으며,

그러한 사상이 그로 하여금 예민한 역사의식과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짊어진 역사적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이 희생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기로 다짐하였으며, 결국은 그 예감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는 미 상원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1858616일 일리노이주 상대후보 더글러스(Stephen A. Douglas)와 겨루면서

노예문제를 두고 격돌했을 때,

예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독립선언을 위반하는 것이며

우리는 철저히 원칙 위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벌였던 논쟁은 전설이 되어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링컨 연구가인 굿윈(Doris Kearns Goodwin)

200510년 준비 끝에 내놓은 Team of Rivals에 실린 내용을 보면 지금도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We have to fight this battle upon principle, and upon principle alone.”

 

그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떠날 때

역전에 모인 군중을 향하여 내가 지금 떠나지만 언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내 앞에 놓인 책무(task)

조지 워싱턴에게 지워진 것보다 더 크기 때문에기도해주기 바란다

(I now leave, not knowing when, or whether ever, I may return, with a task before me greater than that which rested upon WashingtonI hope in your prayers you will commend me, I bid you an affectionate farewell)”

감상적이면서도 비장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도 상례가 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그가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비극적 최후를 예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맞추어 열차편으로 워싱턴D.C.로 향하던 중 뉴욕시에 기착했을 때

아스터 호텔(Aster Hotel)에 모인 인사들을 향하여

미합중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 결코 원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원칙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암살을 당하겠다

(But if it “cannot be saved without giving up that principle,” he maintained, he “would rather be assassinated on this spot than to surrender it”)고 결연히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원칙이란 모든 국민이 동등한 기회를 갖는 미합중국을 뜻합니다.

우리가 그의 재선 취임 연설의 위대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가 치러야 했던 남북전쟁(Civil War, 1861~1865)을 알아야만 합니다.


4년간 치러진 남북전쟁 중 발생한 총 전사자는 623,000명으로

미국이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 월남전에서 전사한 614,000명 보다 더 많은 숫자입니다.


 당시 미국 인구와 오늘의 인구를 비교하면 그 당시 희생자 규모는 훨씬 더 커집니다.

당시 미국 인구는 약 3100만 명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50년 미국 인구는 약 15천만 명인데

이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300만 명 이상이 전사한 것이 됩니다.


징집대상자 11명 중 1명이 전사하였고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모든 공공건물이 야전병원이 되었고

의회 의사당 복도가 2000개의 야전병원용 침대로 가득한 병원으로 사용된 것을 감안하면

부상자 숫자는 전사자 숫자보다 더 많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남북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비극적인 내전이었던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는 남북전쟁 승리 직후 재선 취임의 영광을 누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살당했습니다.

취임식에서 행한 연설은 703자로 된 짧은 내용이었고

그 속에는 남군의 반란에 대한 비난이나 북군의 승리에 대한 찬사는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에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북군병사들과 반노예투쟁에 참여했던 많은 인사들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에 영원히 남는 명연설이 되었습니다.

그는 앞날에 있을 남북간 갈등을 우려하고

미합중국이 영원히 하나 되어 번영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는 형제임을 강조하면서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베풀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기고 갔습니다.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링컨 기념관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그 유명한 재선 취임연설 전문이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상의 힘으로

미 헌법 정신과 미합중국을 지켜낸 위대한 수호자였습니다.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어떤 투쟁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하겠다고 하는 확신을 국민들 마음속에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그가 예감했던 대로 죽어서야 스프링필드로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식민지 36, 분단 71, 헌정사 66년 동안 있었던

압제와 핍박, 전쟁, 수많은 사건 사태로 인해 생겨났던

민족적 원한과 증오, 국민적 원한과 증오가 잊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되살아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현상은 인위적으로 조장되고 있는 측면이 많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긴 안목에서 보면 오히려 자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링컨이

내전(Civil War)을 감수하면서까지 미합중국의 분열을 막고

미국 운명을 바꾼 19세기 위대한 자유주의 전사였다면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악의 제국(Evil Empire)이었던

공산주의 소련제국과의 냉전을 승리로 이끌고 세계 운명을 바꾼

20세기 위대한 자유주의 전사였습니다.


둘 다

신앙에 가까운 자유주의 사상의 힘으로 미국과 세계의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원래 민주당을 지지하던 진보적 성향의 할리우드(Hollywood) 배우였으나

1930년대 큰 정부 자유주의 노선에 따르는 뉴딜(New Deal) 시대에 날로 비대해져 가는 정부가

개인의 호주머니를 쥐어짜고

민주당의 복지정책이 복지수혜자들을 공짜중독자로 만들면서 부도덕한 삶에 몰입토록 하는 것에

적대감을 갖게 되면서 공화당으로 옮겨 작은 정부 자유주의자로 변신하여

할리우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면서 투철한 반공주의자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레이건 이전의 미국과 서방의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이 체제가 지닌 사악성과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유화·공존정책 노선에 충실하였고

심지어 공화당 내 대표적 반공인사였던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대통령까지도

소련과의 데탕트(Detent) 시대를 열면서 대소 유화정책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은 달랐습니다.

그는 193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과 소련 체제의 사악성에 충격을 받았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의 잔인한 본성을

히틀러의 나치스 보다 더 사악하다고 인식하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소련제국과의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새로운 전체주의와의 진정한 투쟁은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대항해서 싸웠던 것처럼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몫이다라고

주장했던 그가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을

하느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믿음 위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정치무대에 등장하기까지는 공

화당 내 보수적 자유주의 맹장은 아리조나주 상원의원인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1998)였습니다.


레이건은

19641027LA에 위치한 앰베서더 호텔에 모인 800여 명의 공화당원 앞에서

대통령 후보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운명적인 연설을 하였습니다.

보수적 자유주의(conservative liberalism)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금과 큰 정부,

 개인의 자유와 전체주의에 초점을 맞춘

그의 연설은 종전에 들어보기 어려웠던 보수적 자유주의 사상을 명쾌하게 설명한 내용이었습니다.

 

역사상 어떤 국가도 국가수입의 1/3에 달하는 세금을 부담하고 생존한 예는 없다.


오늘 이 나라에서는 우리가 벌어들이는 매 달러 당 37센트가 세금 징수자의 몫이며

정부는 매일 세입보다 17백만 달러 이상을 더 지출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의존하는 이 이념은

가장 오랜 인간 역사에서 여전히 가장 새롭고 가장 독특한 이념이다.

금번 선거의 이슈는

미국 혁명 정신을 버리고 워싱턴에 있는 한 줌의 지적 엘리트들이

우리 자신들이 우리의 삶을 계획하는 것보다 더 잘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지의 여부다.


 여러분과 나는 점점 더 우리가 좌(left)와 우(right)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으나

거기에는 오직 상승(up)과 추락(down)이 있을 뿐이다.


상승이란 인류의 연륜 만큼이나 오래된 꿈으로의 상승인 바,

법과 질서가 함께하는

개인의 자유라는 궁극적인 것에의 지속적인 상승을 말하고,


추락이란

전체주의 골동품 더미로의 추락을 말한다.

미국 정책은 승리가 없는 평화라는 유토피아의 안내를 받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화해라고 하면서

만약 우리가 직접 대결을 피할 수 있다면 적은 우리에게서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평화에 대한 위협은 공산주의 체제 자체 성격에서 비롯된다.

소련 블록 내에서 자유를 동반하는 평화는 불가능하다.

화해이것은 평화와 전쟁 중의 선택이 아니라 오직 투쟁과 굴복 중의 선택만을 허용한다.

만약 우리가 화해를 계속한다면 할수록 밀려나서 결국은 우리가 최후통첩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연설 내용은

지금 우리에게 적용해도 가감할 것이 없습니다.


레이건은 공산주의 소련제국과의 대결을

악의 제국과의 대결로 규정짓고 이를 지구상에서 소멸시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업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198338,

플로리다주 올란드에서 개최된 전국복음주의자연합 연례대회에서 군비감축을 주제로 연설하면서

공산주의 소련제국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미국 내 진보진영과 나토 동맹국들로부터

소련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反共 강골한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 내 비판적 언론들과 인사들은

레이건이 (evil)’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처럼 떠들었으나

사실은 그 이전 대통령들도 사용한 단어였습니다.


루즈벨트는 스탈린과의 연합전선을 펴면서

악마(evil)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고 했고


트루먼은 소련공산주의 체제를 (evil)”이라고 했으며

케네디는 악의 체제(system of evil)”로 표현하였습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상대를 이라고 규정하게 되면

이것은 타협과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와 소멸의 대상임을 뜻합니다.


레이건은 말하였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반드시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원칙과 기준을 타협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결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항구적인 평화 추구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악의 제국이 지닌 공격적인 충동

현대 세계에서 악이 존재하는 곳

강하고 자유로운 미국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성원해 달라.”


이것은 마치 우리 자신들을 보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는 자신 있게 역설했습니다.

공산주의는 한때의 일탈로서 인간 본성에 반하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는 그가 다짐했던 바대로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소련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그가 떠난 지 3년 후 불침항모 같이 보였던 악의 제국은 붕괴하였습니다.


그가 재임시 상대했던 소련 지도자는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 )였는데

3번 만나서 담판을 벌였습니다.


두 번째 회동은 198712월 워싱턴D.C.에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워싱턴D.C.에 체류하고 있을 때였고

고르바초프가 주미소련대사관에서 백악관으로 향하던 도중 차에서 내려 길거리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는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당시 두 정상 회동에서

레이건이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들 편이다라고 하면서

소련체제의 모순과 사악성을 지적했을 때

고르바초프는

당신은 선생이 아니고 나는 학생이 아니다라고 응수하였습니다.


훗날 영국 수상인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습니다.


우리 반공주의자들이 승리를 얻어냈고 그 누구보다 레이건의 공이 컸다.

냉전은 자유, 정의, 진실을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레이건 재임시

미국 내 대표적 대소 화해론자였던 진보적 지식인들(liberal intellectuals) 중 역사학자였던

아더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 Jr., 1917~2007)1982년 쓴 글에서

나는 소련 상점에는 더 많은 상품, 시장에는 더 많은 음식, 거리에는 더 많은 자동차가 있음을 보았다.

모든 것이 풍족하였다라고 했고


유명한 경제학자였던 존 갈브레이스(John Galbraith, 1908~2006)

1984소련 체제가 최근 물질적인 면에서 커다란 진보를 이룩했다는 사실은

통계와 전반적인 도시 풍경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러시아 체제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서구의 산업경제와는 대조적으로 인력을 완전히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세계가 위험에 직면할 때일수록

사상이 있는 지도자가

학식 있는 지식인보다

훨씬 더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글은 마치 서울에서

북한을 선전하며 소동을 벌이고 미국으로 간 신은미의 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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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빈곤' 연재 1. 개요-사상이란

http://nabuco.org/news/article.html?no=11826 


사상의 빈곤 2 - 문화와 문명의 근본은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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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빈곤' 연재4- 우리의 모습 / 결론

http://nabuco.org/news/article.html?no=11845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