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왕성한 국운으로 8월18일 오후1시 40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브란스 병원에서 운명(殞命)했다. 그의 운명을 두고 한국사회는 호불호(好不好)에 따라 논평이 비등하다. 그의 운명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호곡하며, 불세출의 민주화 투사였다고 찬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는 대한민국 덕에 대통령까지 지낸 행운을 누렸으면서 대하민국을 반역한 북한정권의 ‘스파이’였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왕성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깨닫지 못한 고해 중생계에는 견해가 다른 여론이 비등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고 김대중 대통령도 생전에 정치활동을 하면서 반대견해로 업(業)을 삼다사피 한 전력이 화려하다. 그는 필자의 다음의 견해 논술에 유리관속에서 격노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로 이해할 것이다. 대한민국 대다수 보수 우익들은 김대중을 반역자, ‘세기의 스파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왜냐면 그의 정치행로의 목적이 북한정권의 충성으로 결론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스파이사(史)를 다시 써야 할 지경이다. 스파이 세계사에 단연 1위를 점하는 자는 킴 필비(1912년 1월 1일 ~ 1988년 5월 11일
세연(世緣)이 다해 삼혼칠백(三魂七魄)이 곧 흩어지고 저승 차사(差使)를 영접할 수 밖에 없는 듯한 위기 병세속의 DJ를 YS가 찾아가 화해를 했다고 해서 항간(巷間)의 화제로 분분하다. 깜짝 쇼를 즐기는 YS이기 때문에 DJ와의 화해설에 경탄(驚歎)할 일은 아니다. 아쉬운것은 YS가 DJ가 심신이 멀쩡할 때 예방하여 정중히 화해를 하지 않고, 말못하고, 혼돈의 위기속에 신음하는 DJ를 찾아가 간신히 DJ의 부인과 DJ의 막료들과 만나 화해의 말을 꺼내고, 화해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YS는 DJ와 직접 교감이 없는 일방적인 화해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DJ와 YS는 화해가 있기 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였든가? YS는 8월10일 오전 투병 중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찾았다. 그는 보도진에게 “DJ는 나와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고 하며,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는 말만 하고 병실로 향했다. 그렇다. YS와 DJ는 ‘대통령 따먹기’로 지독한 경쟁관계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추구하는 정치로선은 무협의 천지쌍살(天地雙煞)처럼, 야합하듯 대체적으로 공동전선을 이루었다. 첫째, 무장출신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공동대처로 투쟁에 나
전국 도처에서 좌파 단체의 반정부 시위대, 농성장에서 시위, 농성자들은 법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경찰을 죽창, 쇠파이프, 등으로 복날 개패듯 하는 것이 상례화 되다시피 된지 오래이다. 평택의 쌍용 자동차 노조가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불법농성에 들어가자 유유상종(類類相從)같은 좌파 정당의 국회의원들, 좌파 시민단체들이 쌍용 자동차 농성장에 나타나 가열차 투쟁의 전고(戰鼓)를 쳐대고, 심지어는 경찰을 향해 폭언 폭행을 감행했다. 법을 지키는 대다수 국민들은 쌍용 자동차 불법농성과 폭력을 보면서 개탄을 금하지 못한다. 제밥그릇 깨는 농성자들의 심보는 어떤 심보일까? 벌어논 돈이 많아서인가?쌍용 자동차 불법농성장에도 어김없이 민주노총과 좌파 시민단체 회원들이 평택공장 정문에 나타났다. 민주와 인권을 외치면서 폭동의 불을 더욱 지피려는 음모이다. 그들이 경찰차를 파손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경찰들이 차를 버리고 빠져 나갔다. 좌파 시민단체 회원들이 그때 경찰 한 명을 넘어 뜨렸고, 넘어진 경찰에게 집단폭행을 가했다. 경찰은 현장 상가 주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피해 경찰은 안면을 무차별 구타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경이었다. 피해
작금의 한국에서 좌익의 창궐은 미국 정보부 즉 CIA에 책임이 크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CIA의 전신은 루즈벨트가 미국의 전시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윌리엄 J.도노번 장군을 책임자로 하는 전략사무국(OSS)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OSS를 기반으로 해서 CIA를 창설했다. 목적은 CIA가 전세계의 정보를 정리해서 1일단위로 보고하는 기능만을 바랐다. 그러나 CIA는 보고만의 차원이 아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다는 전제하에 전세계에 걸쳐 비밀공작을 쉬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국전 정전 이후,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라는 CIA가 소련과 중국을 대리하는 북한정권의 기만책에 놀아나, 동맹국인 한국을 좌경화 하는데 톡톡한 공로를 세웠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무력남침으로서는 한국을 점령할 수 없다는 한국전의 뼈저린 체험을 한 북한정권은 소련과 중공의 훈수하에 기만책을 썼다. 한국의 세작적인 정치인을 포섭, 양성하여 첫째, 민주화를 외치게 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정치에 내정간섭과, 급기야는 극단적인 공작을 하게 하고, 둘째, 민주화를 외치게 하여 미군철수를 하게 한 뒤 대남적화를 한다는 기만책이었다. 북한의 기만책은 긴급시 미국 대통령을 독대하여 보고 한다거나,
조선조 중종(中宗) 때, 문정황후(文定王后)가 있었다. 그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녀의 아들 명종(明宗)이 1545년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문정대비는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불교를 흥왕케 하려는 발원을 하고 팔도의 감사들에게 고승을 추천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그때 함경도 감사 정만종이 보우대사(普雨大師) (1509∼1565)를 추천하는 장계를 올렸다. 문정왕후 (文定王后 ; 1501~1565)의 본관은 파평, 성은 윤씨(尹氏)이다. 조선시대 중종의 제2계비(繼妃)이다. 영돈녕부사 윤지임의 딸로 1501년에 태어났다. 1517년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동생인 윤원형에게 정권을 쥐게 하고 인종의 외척 윤임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을 죽이고 윤원로를 귀양보내기도 했다. ▲태능에서 안식하고 있는 문정왕후@ 중앙불교)문정왕후는 키가 크고, 자색이 출중한 미인으로 전해온다. 천자총명(天資聰明)하여 유불선(儒佛仙) 삼교의 책을 통달하다시피 했는 바 특히 불경을 손에 놓지 않다가 중종의 제2 계비로 입궁했다. 그녀는 남편인 중종(中宗) 재위 때는 불교흥왕의 원력을 가슴에만 담고 표현을 하지 않고 은인
6, 25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중의 가장 큰 원인은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 한반도에 공산주의 간판을 단 김일성 왕조를 건설하려는 야욕을 가진 김일성과, 공산주의 맹주로서 혁명수출을 하여 한번도를 복속 시키려는 소련과 중공은 주한미군 철수를 보고, 오판을 하여 김일성의 남침전쟁을 도왔다. 수백만의 억울한 생명들이 전화(戰禍)에 의해 참혹히 죽어야 했다. 그런데 카터 대통령(미국 39대 대통령, 재임기간:1977-1981)의 주한미국 철군방침에 의해 한반도는 다시 전화의 시발점에 놓이게 되었었다. 그러나 카터의 철군론(撤軍論)을 백지화 한 분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김일성을 만나 기뻐하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중앙불교)카터는 동맹인 대한민국 보다는 북한의 김일성 공산 독재체제를 좋아하는 행보를 국제사회를 향해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어 미제(美帝) 좌빨 정치인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병적으로 증오했다. 김일성이 좋아서 반대 급부로 박정희를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정치성향인지는 모르나 그의 박정희에 대한 편견은 미군철수로 이어지고, 마침내 그의 재임기간 내에 미국 CIA를 상전처럼 모시는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
김일성이 공산주의 본산인 소련과 중공의 지지아래 북한에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을 건설하고부터 김일성은 대한민국을 말살하기 위해 무력전(武力戰)과 세작전(細作戰)을 쉬지 않고 전개해왔다. 김일성이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중공의 사주 및 지원하에 벌인 ‘6,25전쟁’이 실패하고부터는 더욱 더 세작전에 집착해왔다. 세작전은 대를 이어 김정일에 이어졌고, 김정일의 아들, 26세 김정운의 ‘애송이 장군’대에 이르기 까지 계승될 것같다. 그 세작전에 기가 막히는 작전은 김일성, 김정일이 줄기차게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외쳐온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철의 장막’, ‘동토(凍土)’라고 지목하여 무인권, 비민주의 대명사적인 나라라고 지탄해마지 않는데, 정작 세습독재자들은 왜 대한민국을 향해 민주화를 외치는 것일까?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가, 기막힌 음모가 있는 것인가? 노예근성의 제정신이 종북 좌파들은 김일성, 김정일이 지구촌에 제일 민주인사라고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세습독재자들이 민주화를 외쳐대니,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필자도 헷갈리는 때도 있다.한국전에 패전하여 중공군의 지원하에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한 김일성은 대남적화에 성공하려면, 첫째, 북핵을 가져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에 갔을 때, 그는 대한민국의 국정쇄신을 하겠다고 내외 기자단에게 언명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쇄신하겠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나, ‘쇄신’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희망적인 국정운영일 것이라고 일단 환영하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의 좌우 이념대립을 나무라며 중도강화를 천명했다. 그는 중도주의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밝힌 것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보수우파측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비난의 여론은 충천하고 있다.한국에 중도주의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한국정치에는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보수우파측이 있고, 반대로 북한정권을 지지하여 한반도를 북한정권에 바치려는 종북 좌파들이 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전에 “나는 중도”라는 정치신념을 천명했다면, 분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통령은 대통령직을 해먹기 위해서 ‘중도주의자’인 것을 국민들에게 기만해온 것인가? 대다수 국민들은 피땀흘려 경제성장을 이룩한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북한정권의 세습독재자 아가리에 바치고, 김일성왕조의 세습 노예가 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이대통령이 중도강화를 천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