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 / 경제산업부 차장
깜짝 놀랄 신기술만이 저성장 고질병을 치유할 유일 백신인가. 조지프 슘페터가 혁신을 얘기했을
때 상당부분은 기술에 기댄 게 맞다. 인류 경제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성장시킨 산업혁명이 대표적인 예다. 증기기관부터 러다이트 운동의 주역인 방직기까지,
농경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대량생산으로 드디어 대중사회를 열었다. 20세기 들어 미국발(發) 백열등,
대중형 자동차 등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21세기 초에도 컴퓨터란 깜짝 기계에 의한 스마트 혁명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전문가 사이에선 정보기술(IT)의 혁신 효과가 산업혁명 당시 1차 기술 혁신만 못하다는 비관론도 있다.
기술의 혁신 파괴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기껏해야 기존 창조 기술의 개선 기술, 짝퉁 기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사실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를 깜짝 기술로 생각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선 개선 기술에 가깝다.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아이폰에 쓰인 터치스크린은 최초의 PDA 뉴턴에서 시도했다 호응을 못 받고 퇴장한 기술이었다. 음악듣기
아이튠즈 역시 직전 성공작 아이팟을 휴대전화에 심은 것일 뿐이다. 잡스는 중고 기술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새로운 효용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가장 중요한 신시장도 창조했다. 잡스는 음반회사와
게임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더 큰 시장을 제공할 테니 우리 동네(생태계)로
들어오라’고. 그러고는 세상을 바꾸었다. 바로 그렇다. 세상에 없던 기술이 아닌, 세상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명이 옆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기술주도형 혁신이 아니라, 시장파괴형 혁신이다. 알리바바의 모바일 간편결제 알리페이도 마찬가지다. 알리페이의 보안·결제 기술은 선도기업들이 이미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마윈(馬雲) 회장은 이걸 과감하게
도입하고 정부를 설득해 거대한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을 창출했다. 샤오미는 어떤가. 이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판매점이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홍보하고 온라인 판매만 한 뒤 택배로 집까지 배달해준다. 기존 휴대전화
유통시장의 파괴자이다.
우리를 돌아보자. 얼마 전 알리페이와 비슷한 한국의 카카오페이가 서비스 한 달을 맞았다. 알을 깨고 겨우
세상에 나왔지만 이 병아리를 다른 새들이 쪼아대고 있다. 크면 자기 모이를 빼앗아 먹을 거라며. 어린 병아리를 지켜줄 아빠 장닭(정부)은 따뜻한
양지에서 졸고 있다. 성장하면 병아리가 아니라 눈부신 백조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텐데 다 자라기도 전에 어찌 될까
두렵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는 기술 혁신도 좋지만 시장 혁신에 주목하라. 없던 시장을 만들려면 공무원의 머릿속과 법·제도, 사회의
거래 관행이나 문화가 말랑말랑하게 바뀌어야 한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서비스업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1·2·3차 산업
분류는 20세기 개념이다. 70∼80%의 노동인구가 서비스업에 종사 중인 선진국에선 모든 게 서비스가 돼 버렸다. 농업도, 제조업도 이젠
서비스다. 시장을 만들려는 정부와 민간의 서비스는 남들보다 빠르고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파괴형 혁신이 새 시장을 창조하고, 창조경제도
완성돼 가는 법이다.
출처 문화닷컴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