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김정은을 제외하고는 최대 실세들로 알려진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 3명의 지난 4일 인천 방문은 남북관계사(史)에서 파격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서로의 대화와 교류를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방문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록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선전한 북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나아가 북한 선수단을 배려하고 응원해준 정부 및 인천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남북관계에 주는 메시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다음의 몇 가지를 유념(留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그 형식에 비해 ‘실질’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북한 선수 격려용이라면 굳이 실세 3인이 한꺼번에 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요란한 방문에 비해 북한이 내놓은 구체적 제안은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제2차 남북 고위급회담에 응하겠다는 것뿐이다.

 

둘째, 북한의 대남(對南) 전략·전술의 일관성이 의심된다는 사실이다.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도발이든, 협상 카드든,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런 현상이 약화되고 있다. 이번 방문 직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북한의 대남 조직들이 총동원돼 입에 담지도 못할 험담을 늘어놓았다. 대남 전술의 부재(不在)나 혼란인지, 고도의 전술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셋째, 김정은의 건강과 체제의 안정성에 관한 불확실성 문제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특히 ‘김정은 신격화’ 행태가 현저히 약화된 것으로 비치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3인의 방문은 중국, 미국, 일본은 물론 유엔총회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고립이 깊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고육책일 가능성을 키워준다.

 

2차 남북 고위급회담 시기가 다음달 10∼11일 베이징에서 개최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전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작은 통로’부터 열자고 한 데 대해, 황병서는 ‘대통로’를 꺼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근본적 화해는 불가능하다. 북한의 이벤트에 현혹되지 말고 정부는 중심을 잡고 냉철하게 남북관계를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