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與野)가 19일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했지만 또 다시 세월호 유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와 국정(國政)이 장기 표류할 위기를 맞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이날 오후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핵심 쟁점이던 특별검사 추천권에 대해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선에서 여야 단일안을 만들었다. 이에따라 국회는 이날 밤 본회의를 열어 부동산 규제 완화 법안을 비롯한 민생법안 90여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야 합의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각각 특별검사를 2명씩 추천하되 여당 몫 특검 후보 2명은 야당과 유족들의 동의를 받도록 한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유족들은 “유가족이 여당 몫 2명을 (직접) 추천한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저녁 의원총회에서 여야 합의안을 추인(追認)할 예정이었으나 유족들의 반대 소식이 전해지자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유족 동의 없이는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해선 안된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한밤중까지 이어진 의총에서 여야 합의안 추인을 일단 ‘유보’시켰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2주전에 여야 1차 합의안을 ‘유족의 반대’를 이유로 뒤집었었다.
세월호 유족들은 당초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질 진상규명위에 수사권을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가 수사를 하거나 처벌에 참여하는 것은 형사(刑事)법 체계의 기본에 위배된다. 여야가 유족들의 뜻을 일정 정도 반영하면서도 법 체계를 흔들지 않기 위해 진상조사위와 별도로 특별검사가 수사를 진행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자 이번에는 특검을 누가 추천하느냐를 문제삼았다.
유족들의 주장은 새누리당이 추천하는 특검은 아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 헌정사에서 특검 추천에서 특정 정파를 배제한 적이
없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특검이 출발부터 특정 정파·세력의 뜻을 대변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져 ‘반쪽짜리
특검’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야당이 1차 합의를 파기한 뒤 열흘 넘게 재협상을 벌인 끝에 새누리당이 추천하는 특검 2명은 야당과
유족의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형식상 새누리당이 추천권을 갖되 실제로는 야당과 유족이 임명하게 해 준 것이나 다를 게 없다. 앞으로 진상 조사와
특검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진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조사를 회피하려 나설 경우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세월호 유족들은
이 양보안조차 받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결국 이 나라 국회와 국정(國政)이 ‘세월호의 벽’ 앞에서 다시 한번 멈춰섰다.
사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이 나라 국정과 국회는 넉 달 넘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는 법안 처리 ‘제로(0)’란
불명예를 떠안았고, 정부가 세월호 재발 방지책으로 내놓은 각종 방안들 역시 겉돌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참담한 심정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있다. 그러나 번번이 여야 합의를 뒤집고 대한민국의 기본 법 체계도 아랑곳 않는 듯한 일부 유족의 태도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다시는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만큼은 유족들을 설득해 여야 합의를 지켜야 한다. 새누리당 역시 유족과의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 국회와 정당 정치의 자멸(自滅)이라는 엄중한 상황을 자초할 수도 있다. 세월호 유족들 역시 이런 사태가 진정 자신들이 원하는 일인지
스스로 자문(自問)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