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군 안팎에서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군 기강(紀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가혹 행위로 윤 일병을 숨지게 만든 가해자들은 내무반을 '사설(私設) 고문실(拷問室)'로 만들었다. 상관들의 폭행, 가혹 행위 금지 지시는
안중에 없었다. '군인은 어떤 경우에도 구타·폭언, 가혹 행위 등 사적(私的) 제재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군인 복무규율'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군기(軍紀)는 군대의 기율이며 생명과 같다. 군기를 세우는 으뜸은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인 준수와 복종이다'는 '군인
복무강령'도 무색해졌다.
원인이 이렇다면 처방도 군 기강과 규율을 바로 세우는 데 우선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군
안팎에서 논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책 중엔 그게 아닌 엉뚱한 방향도 눈에 띄고 있다. 대표적인 게 병사에게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하는 문제다.
'사병들이 보복을 걱정해 군내에선 문제 제기를 못 하니 휴대전화로 부모에게 알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안통제시스템
개발에 많은 예산이 필요한 데다, 휴대전화 중독 문화가 군에까지 이어질 경우 군 기강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군 내부 상황을 시시콜콜
부모에게 일러바치는 일이 일상화하면 지휘관들에게 전투 임무는 뒷전이 된다. 과거 휴대전화 단속이 미비했을 때 병사들이 훈련 상황을 휴대폰으로
밖에 알린 일이 비일비재하기도 했다.
우리 군이 전투형 군대 육성을 위해 전투 훈련을 강화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미 일부 정치권이 군에 훈련 강도와 횟수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는 얘기도 돈다. 완전히 본말(本末)이 뒤바뀐 발상이고 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위험한 포퓰리즘이다. 군이 전투력을 잃으면 군내 폭력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적 참사를 겪게 될 것이다. 현직 군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군 출신 예비역들도 "각종 규칙을 엄수하고 훈련을 규정대로 실시하는 기강 있는 부대에선 군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경험을 통해 나온 얘기다.
'민·관·군 병영 문화 혁신위원회'가 지난 6일 출범해 군의 악습(惡習)을 없애고 군내 인권(人權)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위원회는 "복무 제도 혁신, 병영 생활·환경 개선, 리더십·윤리 증진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다. 그렇게 해서 병사들에게 군 복무에 대한 사명 의식을 심어주고, 초급 간부와 병사들 사이에 인격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대책이 무엇이든 군의 기강과 규율을 무너뜨리는 것일 수는 없다. 군 폭력을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인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군의 전투력을 갉아먹는 이적(利敵)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무반 내에 사적 가혹 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가능한 모든 지혜를
짜내되, 전쟁을 막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군이 존재한다는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