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순수 세멘트(시멘트)로 만들었습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한 공동묘지에 이 같은 문구가 새겨진 묘비들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극심한 물자부족 현상이 우리민족 전통의 장례문화까지 파괴했다는 소식입니다.
어찌 된 사연인지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추석을 맞으며 부모님의 묘를 찾아 제를 지내고 왔다는 양강도의 소식통은 기막힌 사연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산소 주변에 새로 생긴 묘비들에 ‘순수 세멘트로 만들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라는데요.
소식통은 “묘비들에 새겨진 그러한 글들을 보니 우리 처지가 한심해 서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며 자신도 머지않아 “그런 글을 새긴 묘비를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공동묘지의 묘비들이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소위 ‘자연환경을 보존한다’는 구실아래 조상들의 묘를 모두 ‘평장묘’로 바꾸라고 지시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평장묘’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방식인 봉분과 달리 땅에서 30cm 미만으로 수평 묘를 만들고 비석도 모두 땅바닥에 수평이 되게 설치하는 방식이라고 소식통은 강조했습니다.
당시까지 ‘공동묘지’들엔 나무로 만들어 세운 비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북한당국이 ‘평장묘’를 강요하면서 나무로 만든 비석들도 모두 뽑아내도록 강요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함경북도의 소식통도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 대부분의 묘비들은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며 “하지만 나무로 만든 비석들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땔감이 없는 주민들이 나무로 만든 묘비들을 모두 빼내어 땔감으로 사용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양강도의 또 다른 소식통은 “나무로 만든 묘비들이 사라진 후 한동안 ‘인조대리석’으로 만든 묘비가 추세였다”며 “‘인조대리석’은 차돌을 섞은 시멘트에 철근을 넣어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조대리석’으로 만든 비석들은 철근이 들어있기 때문에 국경연선지역들에서 파고철(고철) 밀수가 기승을 부리면서 철근을 노린 절도범들에 의해 도난, 파손되었다고 그는 언급했습니다.
급기야 주민들은 조상들의 묘비에 철근을 넣지 않고 도난의 위험이 없는 시멘트만으로 만든 비석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묘비에 철근을 넣지 않다는 내용을 절도범들도 알 수 있게 문구로 새겨 넣고 있다는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