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통일전략학회 학회지『통일전략』제13권 제2호(2013. 4. 30), pp.41-74에

게재된 정천구 교수님의 글입니다.

지금과 같이 북한문제를 남북대화 위주로 진행된다면 북한의 조석변개(朝夕變改 )와 같은 정책에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 갈 수가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우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과 해를 실었습니다.

내용이 길어서 4회로 나누어 계재를 합니다.

 글쓴이 정천구 박사 / 전 영산대학교 총장

Ⅲ. 통일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필자는 우리 통일정책의 이상과 같은 기본 가정들이 헌법의 기본정신에도 어긋나며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본다.

새 정부의 통일정책은 이러한 잘못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통일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통일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분단관리보다 통일 우선 정책

통일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먼저 정부정책의 중심을 분단관리보다 통일에 두어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정과 동력을 살려내야 한다.

분단국가로서 출발한 대한민국에게 통일은 하나의 사명이며 레종데트르(raison d'être, 존재이유)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이를 가장 잘 표현한 노랫말이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사명과 존재이유를 망각하면 오래 존속을 보장할 수 없다.

분단국가의 국민이 통일에 무관심하면 통일의지가 강한 상대방에게 결국은 먹히기 쉽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북한을 압도하고 있으나

 목표를 상실한 살찐 돼지는 굶주린 늑대의 좋은 먹이 감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에너지는 선진화된 민주통일국가의 건설이라는 목표에 집중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목표를 상실하면 국민의 에너지는 내부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그 동안의 정부의 정책은 통일정책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분단관리에 초점을 둔 대북정책이었다. 박종철이 적절히 표현한 바와 같이 이제 “분단관리에 초점을 두었던 대북정책은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종합적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수단을 확보하는 통일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평화나 분단관리가 아니라 통일을 국가정책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 통일정책으로의 근본적 전환과 이러한 목표를 중심으로 국민의지와 에너지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2.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의 구분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통일정책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북한주민이며

북한정권은 분단관리를 위해 불가피한 대화상대라는 기본적인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 독재정권인 김정은 체제와 주민을 구분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를

김정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북한 동포는 우리의 통일 대상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북한 동포를 탄압하고 있는 존재다. 북한 정권과의 우호관계 유지를 위해 북한 동포의 탄압과 억압을 묵인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의 도치현상을 못 본체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우리가 통일을 추구하는 1차적 목적은 북한 동포도 우리처럼 자유와 고른 복지를 누리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통일하자는 이기적 논리가 아니다. 북한 주민이 우리 동포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통일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통일의 대상은 북한 주민이기 때문에 통일정책은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세워지고 실행되어야 하며 평화유지와 관계개선을 위한 분단관리는 북한 정권과의 당국 간 대화를 통해 추구한다는 것이다.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의 열망과 동력을 유지하면서 북한당국과는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분단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북한정권과의 대화는 분단관리라는 목표에 한정해야 하며 대북지원은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시키고 통일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북한정권을 강화해 주거나 북한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지원요구에는 절대로 응하지 말아야 한다.

서독은 아데나워 수상에서 콜 수상에 이르기까지 기민당 정권이나 사민당 정권이나 일관되게 이러한 원칙들을 끈질기게 고수했으며 그 결과 기회가 왔을 때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글로벌 코리아의 통일한국 비전

국민의 통일에너지를 다시 점화하는 것은 통일을 먼 훗날에 이루어질 일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 통일의 미래를 오늘의 과제로 삼아서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통일의 비전을 확실히 정립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국가의 중요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인과(因果)관계를 수동적으로 생각하면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흘러간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는 현재의 다음에 오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미래의 목표를 현재의 과제로 설정하여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다. 그래서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에게 시간은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간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교류협력으로 단순히 분단관리에만 집착하면서 언젠가 통일이 오겠지 하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수동적인 시간관에 붙잡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심리상태로 통일은 찾아오기 어렵다. 통일의 비전을 확실히 세우고 그런 미래를 현실에서 준비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갈 때만이 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에 관한 확실한 비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2011년 5월 종교인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통일의식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반도 통일비전의 제시라는 응답자가 56%로 가장 높았다. 통일국가의 비전에 관한 확실한 제시가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까지의 통일정책은 분단관리에만 치중하고 북한당국과의 합의통일을 추구했기 때문에 통일의 미래상이나 비전을 강조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국가가 북한당국과의 합의하에 설정될 것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명확히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의 헌법 자체에 통일이 최우선적 국가과제로 명시되어 있는 터에” 남북이 사이좋은 이웃으로만 살자고는 말할 수는 없다. “통일의 당위성은 ‘통일이 가져다줄 이익’이 아니라 통일이 가져다 줄 기회(가치)에 보다 민감해져야” 할 것이다. 분단보다는 통일이 우리민족에게 우선적 가치라고 하는 점이 보다 명백히 제시되어야 한다. 통일을 통해서 추구하는 비전은 민족의 역사적 발전방향과 민족구성원의 염원에 합치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염원과 합치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일국가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비전은 합의통일론에서 말하는 북한당국과의 합의나 절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글로벌 비전의 연장선상에서 구축해야 한다. 통일은 이제 과거로 되돌아가는 작업이거나 북한 당국과 합의해서 만들어야 하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이루어 나갈 글로벌 코리아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과제인 것이다.

글로벌 코리아의 비전은 현재의 평균적인 한국 국민이 모두 합의하는 꿈의 내용이며 이상우는 이를

 ① 더 번영한 잘 사는 한국(prosperous Korea),

  ② 더 성숙된 민주주의국가(democratic Korea),

  ③ 강하고 자주적인 국가(strong independent Korea),

  ④ 통일된 한국(unified Korea)의 4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글로벌 코리아의 비전은

첫째,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번영하는 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규모에서는 세계 10위권에 들어섰지만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복지수준을 높이고 모든 구성원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더 발전되고 건강한 나라로 만들어갈 과제를 안고 있다.

둘째, 더 성숙된 민주국가의 건설이다.

한국은 지속적인 민주화로 형식상의 민주주의의 기틀은 마련되었으나 정치의식이나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참여의 증대에 따른 의식과 제도화의 수준이 제대로 따라갈 때 안정되고 성숙한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다.

셋째는 강하고 자주적인 국가의 건설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튼튼한 국방력과 외교력을 갖추어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는 강한 국가,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넷째, 북한이라는 실패한 국가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도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한국을 건설하여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제 통일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성공을 배경으로 한 글로벌 코리아의 통일국가 비전을 국민들이 함께 공유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