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평화통일의 목표와 정책과제
-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즈음하여 -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 대불총 상임고문)
임진각에서 거행된 한라산 백두산의 合水土행사
2012년 10월 11일 오전 11시. 임진각 광장에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강남구협의회가 주관하는 한라산 백두산의 흙과 물을 합치는 合水土祭(합수토제)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 만일 무당들이 오고 소리와 춤을 추면서 기도했더라면 이것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祭祀(제사)가 되었을 터인데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의식한 탓인지 무당들의 춤과 노래는 없었다. 그 대신 가야금 병창이 짤막하게나마 있었고 북한에서 온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췄는데 글쎄 이다. 내 소견으로는 이것도 없는 것 보다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출신 젊은이들이 한 것이라서 의의가 있었다고 할까?
한라 백두의 合水土행사가 시작되자 모두 일어나서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을 합창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나도 남들을 따라서 부르기는 했지만 남북한의 통일이 이런 노래만으로 올 수가 있겠는가? 맑고 아름다운 늦가을 임진각 광장에서 거행된 이렇게 평화스럽고 즐거운 合水土행사나 민주평통 위원들 모임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임이 自明하다.
필자는 80대 노인이긴 하지만 나에게 물었다면 내 나름의 방식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어느 일이건 나에게 묻는 일이 없으니 나로서는 편안해 좋은 면도 있었지만 이번 합수토제 문제도 물었다면 내 나름의 대답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에게 이런 문제를 의논한 바가 없었다하여 불만이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차제에 남북한의 통일이 사람들의 희망과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나름의 所見을 말해 보겠다.
온 겨레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남북갈등과 국토분단이 지속되어온 원인
1945년 8・15해방후 남조선 일대의 반란과 게릴라 활동으로도,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20만 북한군과 괴상한 피리와 음산한 북을 치며 밀려왔던 100만의 중공군의 침공으로도, 한국군을 포함했던 UN군의 북진공격으로도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가 남북통일이었다. 한마디로 남북통일의 문제는 남북한의 외교노력이나 북한의 끈질긴 대남공작과 시도 때도 없는 무력침공으로도 이루지 못했던 20세기 이래의 최대 難題(난제)였던 것이다.
한국의 국토분단은 누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늘이 한민족에게 내려준 세계적 문명적인 문제이며 시대의 과제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세계의 문제이며 역사의 문제는 한민족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민족분열과 국토분단의 고통과 재앙을 겪고 있는 한민족이 앞장서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당면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한민족이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역사적인 과제이며 민족적 사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민족의 민족분열과 국토분단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정치현상이 아니었다. 이런 시대적이며 세계적인 정치현상이 해결되거나 수습되려면 단순히 정치적 또는 군사적인 힘만 가지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치현상은 동양사상 및 정신도덕문화와 서양사상이나 과학문화의 대결에 밑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북분단은 그러한 철학사상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인하여 단순히 정치외교나 군사적인 노력만으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갈등과 국토분단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그에 앞서서 한국사회에서 좌우대립이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대립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또 국제관계에서 大陸세력이나 海洋세력에 휘말려 들어가는 경우에 한반도의 통일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고방법이긴 하지만 가시가 꽃이 된다는 말이 있다. 가시는 사람들에게 괴로움이며 고통이지만 그것을 잘 보듬어야 꽃이 핀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옛말에 하늘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면 미리 큰 재앙과 고통을 줌으로써 그 사람을 시험해 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두 정치학자의 주목할 만한 신문 칼럼
2012년 10월 11일자 동아일보에는 ‘중국의 浮上(부상)과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이라는 제목으로 중앙대학교 김태현 교수의 칼럼이 게재되어 있었다. 어느 나라나 국력이 강해지면 이웃 나라에 대한 생각도 행동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 나라에 대하여 억압적으로 대하려고 드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스러운 태도가 아니다. 이웃 나라들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려고 들거나 특히 미국에 대해서도 힘겨루기를 하려는 듯 공손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저자는 염려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한 나라가 지배적인 힘을 과시하게 되면 그 주변국가들은 서로 연합하여 그 지배적인 권력을 중화하려고 드는 것이 세력균형의 이론이다. 중국의 외교력은 그 나라의 군사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이웃 나라가 미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하며 그것을 막으려고 나선다. 중국은 북한을 그 휘하에 놓고 보호하고 있는데다 한국도 그 영향권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며 공작하려고 들 것이다. 한국은 중국의 보호하에 있는 북한과 통일할 것을 바라려면 한미중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선후보들도 고도의 전략적 식견과 외교능력을 발휘해야할 것이라는 말만 남길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10월 11일자 조선일보에는 ‘美·中 새 지도자들의 경쟁 무대 동아시아’라는 글을 서울대 전재성 교수가 기고하였다. 현재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진행중이며 중국에서도 새 통치권자가 곧 부상하게 될 것이 예상되고 있다. 中美 양국은 모두 국제경쟁력 저하와 국내 불안정 등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게 위세부릴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美國 밀어내기’와 미국의 ‘中國 묶어두기’간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동아시아인들은 일방주의를 행사하는 미국이나 패권적인 중국 모두를 원하지 않는다. 21세기 동아시아인들은 수평적 네트워크가 강화된 다차원적이고 민주적인 동아시아를 원한다. 이것이 한국의 中堅國(중견국) 외교가 지향해야 할 목표일 것이다.”
한국이 강대국 외교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해서 덜 야심적인 것을 아니다. 대다수 동아시아인이 원하는 새로운 지역을 꿈꾼다는 점에서 오히려 美中보다 더욱 야심적일 수가 있다. 한국의 새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를 위한 전략적 외교문화에 젖어갈 때 美中간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 교수의 논조는 전자에 비하여 훨씬 희망적이며 적극성을 보인다.
한국 통일외교의 설자리는 세계평화의 철학이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나 패권싸움은 세계평화를 어지럽히는 요인이다. 한국은 中堅(중견)국가(middle power)의 입장에서 두 초강대국의 경쟁과 不和를 완화 내지 견제하는 외교를 펼쳐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있는 한국외교의 힘의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가 있겠는가?
중국과 미국의 경쟁과 대결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갈등이다. 동시에 이것은 바로 南北韓의 대립과 갈등이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하는 원리가 바로 平和의 哲學원리이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수습하고 완화하는 행위는 한 쪽의 참회와 반성이며 또 한편에서는 和解와 용서인 것이다.
오늘의 보수와 진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모두 이러한 정신상태와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지? 이런 정신상태와 태도를 갖게 되면 평화가 이루어지는데 어느 곳에서나 평화가 이루어지면 통일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평화는 경제력이나 무력경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평화는 정신도덕이며 추상명사일 뿐 實體(실체)가 아니므로 그 자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平和는 또 한 나라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므로 크던 적던 지역공동체를 형성해야만 평화가 지켜진다. 남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가 여기에 포함되어야 하나 그 외의 지역국가는 희망에 의하여 이 지역공동체에 가입할 수가 있어야 한다. 이 지역공동체는 바로 평화공동체이므로 평화는 이 지역공동체에 의하여 그 힘을 받게 된다.
2012년 한국의 대통령선거 大選주자들의 정책과 비전
현재 한국에서는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진행 중이다. 세 사람의 대통령 후보가 경합중인데 아마도 세 사람의 대통령후보 중 야권후보는 단일화됨으로써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또는 민주통합당 대표가 경쟁을 하게 될 것 같다. 선거경쟁과 유세 初期(초기)라 그런지 여야간의 선거쟁점이 서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 등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물론 어떤 선거를 막론하고 다수 유권자들의 票心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나 사회복지정책에 있어서 與黨과 野黨의 정책은 大同小異(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여당과 야당이 차별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 대통령선거의 주요쟁점은 平和統一과 대북정책 그리고 아시아태평양공동체와 같은 외교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경쟁을 통하여 승부하는 것이 좋을 성 싶다.
북한과의 평화통일정책을 논하려면 아무래도 연방제통일방안을 가지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는 야당의 안철수 후보가 어떠한 통일방안을 갖고 나올 지 알 수가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역시 아직도 평화통일의 청사진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가 없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문제는 반드시 관철해야 할 대한민국정부의 통일정책이어야 한다. 민주화와 개방화 그리고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 평화가 존속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통일한국도 평화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화의 국가공동체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추가해서 말할 것은 박근혜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는 새 정부를 구성할 때 21세기 문명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개혁의 청사진을 만들어 낼 것을 공약해 주기를 바란다. 정신적 평화이든 국가사회나 지역의 평화이든 자생하는 것이 아니며 꾸준한 연구, 학습과 노력을 통해서 습득되는 자질이며 문화이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이사장)
출처 : (사)아태공동체 www.apr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