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壬辰年의 國運과 한국정치 한승조 / (사)아태공동체 이사장 금년 들어서 立春도 지났지만 거의 매일 영하 8-10도를 밑도는 예사롭지 않은 추위 속에서 겪고 보니 금년의 나라 형편도 좋아지기보다도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었다. 이것이 60여년만의 추위라고 하는데 이 역시 예사롭지 않지만 나라의 형편이 밝지 못하다보니 추위를 견디는데도 힘이 더 들었던 모양이다. 차제에 염려가 되는 나라의 새 형편을 정리해보고 이런 형국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2012년 대한민국의 國運을 낙관할 수가 없는 이유 (1) 금년 壬辰年은 黑龍의 해다. 흑룡은 龍 중에서도 성깔이 있는 어린 龍이라고 한다. 반역 난동을 서슴지 않는 新進勢力의 浮上이라는 상서롭지 못한 예감을 받게 된다. 이들은 기존질서를 흔들고 새 판을 자야겠다는 야심찬 세력들이다. 그러니 앞으로 큰 변화가 올 것을 예상하며 조심스럽게 지켜보아야 하는 형국이 아닐까? (2) 금년 2012년은 4월 26일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고, 12월17일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이다. 여러 곳 여론조사는 거의 통합야당의 우세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요즘 李明博정부의 人氣나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최하위로 내려가 있는데다가 시중 物價는 터무니없게 앙등하고 있으니 현재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친북좌경세력의 승리는 거의 확정적인 듯하다. 그래서 친북좌파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 경우 이 나라의 안전보장과 경제전망은 또 얼마나 더 악화될 것인지? (3) 그동안 의석의 압도적인 다수파를 유지 해왔던 한나라당은 이미 소멸되었으며 과거의 집권여당의 자리를 차지한 새누리당은 또 얼마나 민심을 장악하여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것인지? 새누리당의 지도자로 올라앉은 박근혜는 과연 과거의 보수여당과 새 정국의 민심을 얼마나 확고하게 결집시킬 수가 있겠는가? 과거 집권여당이었던 보수우파인사들 중에는 새 리더십에 매우 불안한 눈초리를 보내는 현실로 보아서 보수우파세력의 전부를 그의 지지세력으로 규합하는 일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우파와 중도세력의 지지를 결집시키려면 보수지도층간의 경선의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구 여권의 과반수 세력의 지지를 업은 친박세력들이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할 것인지. 야당세력은 통합이 잘되는데 구 여권세력이 심각한 분열로 수습되지 못할 때 구 여권의 권력유지는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이 나라의 국가안보와 경제안정이 보장만 된다면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일이나 남북화해와 서민복지를 강조하는 김대중 노무현의 잔존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서민들과 젊은 세대는 좋아할는지 모르나 나라 형편은 더 어려워질 것이 예상된다. 2. 21세기 초기 한국의 난국을 풀어갈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어떻게 오늘의 難局을 대처해 나갈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에 그 해답을 찾기에 앞서서 한국의 반미친북세력이나 현재의 민주통합당이 집권해서 한국정치에 난국이 조성되고 국가안전보장이나 경제전망이 위태로워진다는 관점이 올바른 견해가 아니기를 기원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울증을 면할 수가 있겠으니 말이다. (1) 민주통합당이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승리함으로써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 그동안 유권자들에게 공약했던 수많은 복지포퓰리즘의 정책들을 입법화하며 실시하려고 들 것이다. 그들은 초・중・고등학교에 대한 점심급식뿐만 아니라 대학등록금인하, 실업자수당증액, 비정규직의 고용증대, 빈민복지 등 선심정책을 현실화하자면 정부의 재정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돈 있는 사람들은 돈을 안쓰려고 들 것이나 돈 없는 사람들은 빚까지 얻어서 마구 쓰려고 들 것이다. 돈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빚을 국가에게 떠넘길 속셈을 가지므로 겁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구멍난 국가재정은 고수입자나 부동산 소유자들에 대한 增稅(증세)로 메우려고 들 것이며 이렇게 되면 나라재정이 거덜나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국방비의 예산을 축소하려고 들 것이다. 조만간 나라가 빚으로 거덜날 것이라며 그런 나라는 지켜서 무엇 하겠느냐? (2) 좌파정권은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합의했던 6・15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의했던 10・4선언을 표방하여 남북한의 연방제통일을 실시하려도 들 것이다. 종북좌파세력이나 민주통합당의 당원 중에서 그런 움직임을 반대하거나 저지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보수세력과 일부 야당이 적극 반대하려고 들겠지만 정부의 官權이나 좌경시민단체들, 전교조 교육을 받아온 어린 학생들의 압력을 이겨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통일은 앞당겨지겠지만 이것은 용공통일이고 적화통일이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은 아니다. (3) 그렇다고 종북좌파들이나 민주통합당이 정권을 잡으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할 것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 이유는 한국국민의 의지와 능력 여하로 어려운 상황도 지혜롭게 극복되는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궁리가 살아있는 한 희망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나라가 다시 소생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 근거를 말해보겠다. 첫째, 북한정권 내부의 분열과 갈등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북한은 현재 金正恩체제에 의하여 통치되고는 있으나 그 지배권력의 기반이 김일성・김정일체제처럼 확고부동할 수가 없다. 20대의 정권지도자의 미숙한 지도능력으로 인하여 체제의 분열대립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남한정권 안에서도 정치권력 내부에 과격파와 온건파간의 분열과 대립이 일어날 것이 아닌지. 이런 경우에 남한의 보수세력은 좌파세력의 온건파와 연합함으로써 과격좌파를 고립시켜야한다. 또 보수세력안의 과격파도 잘 달래어서 대한민국의 법통에 기초한 정치안정 쪽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법통이 유지되며 국제적인 지지만 받을 수 있다면 일시적인 좌경화도 좋은 경험이며 너무 극단적으로 적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중도 및 보수정치세력은 2012년의 선거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종북좌파세력에게 정치권력을 빼앗긴데 대하여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 현재의 민주통합당 안에는 전통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아닌 사람들, 북한의 실정을 잘 모르면서 민족애 내지 동포애를 가지고 도와주려는 善意의 추종주의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 20-40의 젊은 세대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종북좌파의 核心은 아무라도 김일성-김정일의 추종세력 자들일 것 같다. 이들은 북한 내부의 분열이나 危機가 아니면 절대로 자신들이 잡은 정치권력을 내놓을 위인들이 아니다. 물론 보수우파세력도 정치권력을 좌파에게 넘겨주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민층 그리고 20-40의 젊은 세대가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으니 우리들은 속수무책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참회하고 사죄해야 한다. 우리들은 서민층과 젊은 세대를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어야했다. 그런 노력을 구차스럽다하여 외면했던 것이 오늘의 弱勢(약세)를 초래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국가・사회현실을 위하여 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현실개선을 위해 기여함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오늘 같은 위기상황을 초래했던 것이 아닌가? 3. 보수적인 국민정치교육과 좌경의식화교육의 대립, 어떻게 마무리할까? 국가공동체는 하나의 생명유기체와 같아서 성장 발전도 하지만 쇠퇴 사멸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나라도 의도적인 노력 없이 방치된 가운데 저절로 잘 크고 계속 번창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1948년부터 1960년까지는 미국의 보호와 원조로 겨우 존립을 계속하였지만 리승만정권 나름으로 잘 살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리승만정권은 문맹퇴치와 민족주의교육 그리고 반공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박정희정권하에서는 민족주의교육, 반공(정치)교육에다 새마을교육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국민의 정신력 강화에 주력하였다. 전두환정권에 와서는 정신도덕교육과 정치교육을 종합한 국민정신교육을 체계화하였으며 그 내용이 국민윤리교육 속에 담겨져서 대학교육에서 필수과목이 되었다. 이러한 국가안보와 나라의 산업화와 선진화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던 것이 군부정권이 끌고 들어온 군사문화이며 또 그들에 의하여 정력적으로 추진해왔던 국민정신교육이었다. 생각해 보면 1950년부터 6・25전쟁을 겪었던 리승만정권부터 1980년대의 전두환정권에 이르기까지 군부의 영향력에 의한 정신교육이 크게 강조되었는데 이것이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선진화를 추진하는 힘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후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를 표방하였던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힘을 얻게 되면서 종전의 군사문화의 잔재로 취급을 받게 되어 폐기처분을 당하고 말았다. 그 대신 들어선 것이 80년대 학원가를 휩쓸었던 운동권학생들의 地下써클을 통한 좌경의식화교육이었다. 이런 좌경의식화교육의 내용이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모든 학교의 공교육의 내용으로 올라와서 모든 학생들에게 전파되기에 이른 것이다. 90년대부터 용공적인 洗腦교육 곧 좌경의식화교육이 90년대 이후에 와서는 한국사회 전체의 사상과 감정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물론 대학교수들 중에는 이러한 세태를 무릅쓰고 인문사회과학의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수들 중에는 목소리가 큰 운동권학생들에게 영합함으로써 교수의 인기를 유지하려던 사람들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친북좌파세력이 대한민국의 학교교육과 학원가를 장악하여 정치사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박정희・전두환대통령이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국민정신교육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권에 와서 학생운동권과 좌파에 영합적인 언론기관의 압력으로 학교교육에서 밀려나서 이른바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좌경의식화교육으로 교체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외견상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나 그 내용이 차츰 북한화 하는 경향이 생겨났으니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체제내부로부터 변질하여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남북대립에다 영호남의 지역갈등이 극심하였는데 이제 세대간의 갈등마저 불거지고 있다는 현실은 매우 염려스러운 현실이라 하겠다. 이런 차이와 異化感은 대한민국 성장발전기에 실시되었던 국민정신교육을 받으며 자란 노인세대와 민주화(성장침체기)의 용공적인 의식화교육을 받았으며 또 투쟁해왔던 젊은 세대간의 갈등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이러한 이질성에 밑받침된 좌우세력의 대립이나 노사간의 대화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가 있을까? 그것은 물론 가능한 일이며 또 쌍방의 원만한 화해와 협력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서로가 사랑과 관용으로 감싸 안을 수도 있는 일이나 이미 객관화된 국민정신교육과 좌경적인 의식화교육의 내용을 비교하며 냉정하게 비교 분석하며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부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극복하려고 들 것이 아니라 해원상생 공영조화하는 포용정신을 발휘하여 협력하는 美德을 키워보는 시민운동을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元曉大師의 和諍(화쟁)사상이며 한마음(一心)운동이 아니겠는가? 이런 원리를 요즘 말로 바꿔본다면 ‘나남하나되기운동’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도 결코 남이 아니다. 노인세대도 왕년에 젊은 세대였고 젊은 세대도 얼마 있으면 노인세대가 된다. 그러니 젊음도 나요 늙음도 나다. 이것이 좌우의 화해와 협조를 가능케 하는 원리이며 남북통일도 ‘나남하나되기’의 원리를 따른다면 지겹도록 오래 싸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4. 가능성 당위성은 어떤 조건하에서 현실화될 수가 있을까? 희망은 간절한데 현실과의 거리가 노력에 의하여 좁혀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돈은 벌어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돈이 벌어지지 않는다. 남녀가 가까워지기를 열망하는데 노력할수록 더 멀어짐을 느낀다. 이런 경우는 우리 사회현실에 너무 흔한 현상이다. 이래서 인생은 고통에 충만한 苦海라고 말한다. 남북관계는 좋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멀어져만 간다. 이 나라가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라꼴은 우리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계속 더 엉망이 되어간다. 이런 사회현실을 어떻게 설명하며 또 극복할 수가 있는가? 이러한 우리의 인생이야기나 사회현실을 설명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진다. 그래서 짧게 말하기 위하여 나는 불교의 인과응보설 공연기론을 가지고 설명하고자 한다. 모든 사회현상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 세상에는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다. 좌우가 가까워지고 싶고 남북이 하나가 되고 싶은데 그것이 안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가 불신하여 결합의 결과를 겁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신감정과 적대의식이 障碍(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좌우는 왜 서로 불신하고 적대하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 한 때 가까이 해보았다가 큰 피해를 당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서로가 자신을 해치려는 상대방의 의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타인과 가까워지려면 지켜야하는 법칙 곧 四攝法(사섭법)을 말한다. 첫째가 布施(주는 것), 愛語(좋은 말), 利行(이로운 행동), 同事(같은 일을 하는 것). 매우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이런 행위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의 年老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대화는 어떠할까? 국민정신교육을 교육받으며 자랐던 年老세대와 90년대 이후 좌경의식화교육을 받았던 386세대 간의 대화가 가능하며 또 상호이해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두 세대간에 자비정신과 忍辱의 정신 곧 도덕성에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기대할 수가 없다. 이것은 연로하던 연소하던 한국국민의 도덕수준이 높아지지 않고서는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다. 여기에 추가해서 앞에서 언급한 障碍(장애) 또는 業障(업장)이라는 말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장애란 인과관계로 보아서도 마땅히 되어야 할 것이 안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연습에서는 늘 일등했던 사람, 실력이 출중하여 늘 일등했기에 시합 또는 시험에서도 당연히 일등할 것이 예상되었던 사람이 막상 본 시합 또는 시험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일로 실력 발휘를 못하여 탈락하는 경우를 본다. 이런 현상을 사람들은 흔히 運이 나빴다는 말로써 체념한다. 그러나 연기법에서는 이런 실수나 惡運도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며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고 풀이한다. 그럼 어떤 원인이 있어서 그런 실수 또는 不運을 당한 것일까? 그는 평소에 박정하고 후덕하지 못하여(惡因) 功德을 지은 바가 적어서 그런 큰 福이나 영예를 받을 만한 공덕이 부족했기에 중요한 순간에 실수(惡果)를 맞이했다고 풀이한다. 대한민국이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볼 때 필자는 장애 또는 업장이라는 말이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1948년에 건국된 이래로 한국전쟁이라는 불행을 겪었지만 그 후는 너무 잘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그래서 88서울올림픽을 치룬 다음에는 한국은 세계의 떠오르는 龍(용)으로 전세계의 注目(주목)을 집중 받았다. 그런데 그 후부터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하고 발전을 폄하하는 친북좌경세력이 집권하여 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결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감옥에 갇혔으며 그 밑에서 행세했던 군부세력도 작살나고 말았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국토방위와 성장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던 군부세력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 응징이었다. 그러고부터 대한민국의 성장 발전은 멎었으며 늘 상식적으로 용납이 안되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어둠의 세계, 요괴의 나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나꼼수 따위가 위력을 발휘하며 거짓과 모함이 판을 치는 어둠의 나라로 변질 타락하였으니 이런 나라에 정치안정이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분명 업장과 장애에 의하여 일어나는 일상현상이라고 하겠다. 5. 비정상과 꼼수가 판을 치는 어둠의 나라가 어떻게 光明과 정상을 恢復(회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우리 한민족이 끔찍한 업장이나 장애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가? 또 전세계에 善業을 계속 쌓아야만 보다 더 큰 福德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현재 좌우대립과 남북갈등, 정치불안과 사회분열, 국가안보의 위협과 같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善業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악업을 상쇄할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국민과 이웃 나라 그리고 세계에 대한 功德을 쌓아야만 악업이 탕감 소멸될 수가 있다. 옛말에 하늘이 어느 사람에게 大任을 맡기려 할 때 반드시 먼저 災殃(재앙)을 내려 줌으로써 그 능력과 덕성을 시험한다는 말이 있다. 한민족의 역사는 바로 苦難의 역사였다. 삼국통일의 고난, 고려조의 북방민족들과의 대결과 시련, 조선조의 양반계급독재와 당파싸움 그리고 외침, 일제의 식민통치, 6・25전쟁과 휴전, 국토분단과 남북쟁패, 북한공산주의의 대남공작과 친북좌경세력의 횡포 등 어느 것 하나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역사적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평화를 주도할 수 있는 민족의 역량이 생겨났다. 현재 한국은 후진국의 개발을 돕는 OECD의 회원국가면서 연간 8000억의 자금을 지출하여 각 나라에 여러 가지 원조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어느 종교단체는 여러 후진국에다 많은 도움의 손을 뻗치고 있다. 식량이 없는 나라에는 식량이나 곡식을, 食水가 부족한 나라에는 우물을 파주거나 수도시설을 놓아주며 어느 나라에는 학교를 지어주거나 학용품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후진국 원조사업은 훌륭한 일이며 국제사회에 많은 善行을 하고 다님도 칭찬할 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기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 버는 방법, 농사짓는 방법과 기술, 공업생산 기술이나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업수단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개발원조활동이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하여 필자는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창설을 주장하여 왔다. 이 지역공동체는 세 가지 차원에서 창설될 수가 있다. 첫째는 국가간의 協約으로 만들어지는 경우이다. 둘째는 민간단체 곧 NGO단체간에 맺어지는 협력으로 추진하는 경우이다. 셋째는 官民協同으로 민간교류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경우이다(regional governance). 그동안 국가간의 지역공동체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논의해 온 과제이나 아직도 그런 기구가 언제쯤 설립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일본 首相의 제안에 따라 동아시아공동체를 위한 한중일 3국의 준비위원회가 한국의 외교통상부에 설치되었다는 신문보도는 읽었으나 실제로 어떠한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우선 NGO차원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하는가? 현재 전세계에 한인교포들이 700-800만 명 살고 있다. 최근 이들의 상당 부분이 한국 외무부 소속의 재외동포재단의 휘하에 있다. 외무부 산하로 통솔되기 전에는 각국의 교포단체와 재외상공인연합회 회원으로 조직화되어 있었다. 그 한국의 diaspora(이산민교포들) 중 1%만 조직화되어도 7-8만의 인원이 한민족의 이념인 홍익인간의 전위조직으로 활동할 수가 있는 소중한 人的 資源이 된다. 이들의 强點(강점)은 각 나라의 현지 사정을 잘 알며 또 어느 정도의 言語구사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가 독불장군이다. 그들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대신 기분만 맞으면 어느 누구의 지시 없이도 혼자서 무한정 뛰는 의지와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에게 한민족의 조상을 이야기하며 또 한민족이 세계의 지도국가가 된다고 말해보라. 그러면 그들은 아무런 財政支援 없이도 그들의 돈을 써가며 무한정 뛰고 활동할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느 누구의 지시 없이도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제조직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들을 모아서 아시아태평양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런 말을 한다면 움직여 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으므로 한번 힘차게 움직여 보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런 활동에 대하여 정부가 그동안 지출해 온 개발원조 자금을 사용한다면 국제적 협력사업이 더욱 쉬워질 것이며 한국이 세계평화를 위해,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해 크게 공헌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한민족을 괴롭혀 왔던 업장과 장애는 이러한 善業과 功德行으로 지워질 것이니 말이다. 이른바 뽕도 따고 임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뜻이다. (2012.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