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이 대한통운 전 사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고, 검찰이 그를 12월 11일에 나와 달라고 소환했지만 그는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적반하장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이번 기회에 모든 인생을 걸고 수사 기관의 불법행위와 공작정치에 맞서 싸우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검찰이 피의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표했다며 검찰과 언론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 대부분의 국민은 검찰 소환을 받으면 검찰에 나가 결백을 주장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돈을 받지 않았다면 검찰에 나가 떳떳하게 방어해야 하고, 떳떳하다면 검찰 소환에 불응할 이유가 없다. 불응하는 것 자체로 사람들은 한명숙을 의심하게 된다. 검찰과 언론이 잘못한 게 있으면 그것은 별도로 따지면 된다. 한명숙은 79년 크리스챤아카데미사건에서 반공법 위반죄로 2년 6개월의 형을 살고 나왔다. 한명숙은 국보법 폐지 주창론자다. 보도에 따르면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은 1968년 8월 24일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박성준은 “1967년 6월 골수 간첩 신영복(성공회대교수)에게 포섭됐다. 신영복은 소주 ‘처음처럼’이라는 빨갱이 로고를 친필로 만들어 소주회사와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씨 ‘처음처럼’은 열우당의 로고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처음처럼을 마시지 않는다. 참고로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은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를 당강령으로 삼은 통혁당이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정부전복을 기도, 무력통일을 이루려다 1968년 정부에 의해 일망타진 된 최대의 간첩사건이었다. 박성준씨는 최근에도 스스로를 ‘마르크시스트 크리스챤’으로 칭하면서 ‘평화의 물결’이라는 조직의 공동대표를 맡아오면서 평택범대위에서 미군철수투쟁을 벌여왔고, 한명숙은 빨갱이 남편이 주도하는 평택범대위에 총리의 자격으로 17억원을 지원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평택범대위는 2단옆차기와 죽봉 찌르기로 상징된 빨갱이들의 폭력사건이었다. 이처럼 한명숙은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이단자의 남편이고, 그 스스로도 반국가활동을 하여 옥살이를 했다. 국보법을 철폐하자 주창했고, 좌파정권의 핵심으로 일하면서 평택범대위 등 계속되는 남편의 이적행위를 뒷바라지 해왔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순순히 검찰 조사에 응한다면 이는 그녀가 공산주의를 배신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녀가 대한민국의 법을 집행하는 검찰을 존중할 리도 없고 대한민국 법을 존중할 리도 없다. 전공노 등 좌익들이 국기게양과 애국가 봉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명숙도 대한민국의 법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9.12.12.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추천 :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