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바로세우기 판검사들은 심판받아야 2009.12.9. 워싱턴 연합뉴스가 12.12사건 8일 만에 작성된 CIA 보고서를 인용하여 12.12 사태 직후 2-3개월내에 북한의 대규모 도발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놨다. 미 CAI 보고서 보고서는 “1975년 김 주석은 ‘북한은 남한 내에 `혁명적인 상황"이 전개된다면 가만히 앉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이후 북한은 이를 선전해 왔다.” “김일성 주석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발생한 남한 군부파벌간 다툼과 광범위한 사회 무질서가 자신이 권좌에 있을 때 한반도를 재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는 사실들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이 남한에서 대규모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확률을 50%정도로 잡았으며 미국은 북한의 군사적 역량과 미국 및 중소의 입장을 각기 조명했다. 전쟁에 대비하는 미국의 자세가 역력히 나타나 있는 보고서로 보인다. 이는 아래 ‘김일성비밀교시’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10·26사태는 결정적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대남사업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민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 “12·12사태는 미제의 조종 하에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입니다. 계엄사령관 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남조선 정세가 그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군 수뇌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연락부와 인민무력부에서는 언제든지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4시간 무휴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1979년 12월 20일 중앙당 확대간부회의) 10.26 이후의 권력 공백기에 최규하 정부의 정보 판단은 아래와 같았다. 북한은 10.26 다음 날인 10월 27일, 전군에 ‘전투태세강화“(폭풍5호)를 지시했고, 10월 29일에는 동구를 방문 중인 오극렬 총참모장 일행이 급거 귀환하여 군사 회의를 소집했고, 12월 18일에는 군-당 전원확대회의를 개최하면서 전군에 ’통일에 대비한 무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해 12월, “1980년 초에 남침을 감행할 것”이라는 첩보가 미국으로부터 입수됐고, 같은 시기에 일본 외무성으로부터도 “1980년 1월에 남침할 가능성이 높다”는 첩보를 입수했다(1979.12.25자.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작성한 “북괴대남도발 위협판단”). 10.26 직후의 북한 동향에 대한 탈북자들의 진술은 더욱 실감이 난다.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명령 제 ㅇㅇ 호 최근 남조선에 조성되는 긴장한 정세는 조국통일의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남조선의 혁명적인 인민들과 애국적인 청년들에 의해서 탄광과 광산 및 그 밖의 대도시들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반정부투쟁은 우리의 공화국인민들과 더불어 그들의 통일 열기가 얼마나 뜨겁고 최고의 시기에 도달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위대한 통일국면은 우리의 눈앞에 현실적으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조만간 남조선 전역에서 들고 일어날 영웅적인 남조선인민들의 대규모의 혁명적 항쟁을 지원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사회주의조국을 사수하는 전초선의 보루이며 조국통일의 가장 위력한 전위부대이고 일당백의 강력한 무장력인 조선인민군장병들에게 다음과 같은 전투명령을 하달한다. 그런데 역사바로세우기에 동원된 판검사들은 그들이 최고의 안보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했다. “당시에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위협이 없었는데 전두환이 정권을 탈취할 목적으로 위협을 과도하게 부풀렸다” 역사보로세우기에 동원된 판검사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