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등장하는 묘비명들은 "도서출판 백암"에서 1989년에 출간된 "하늘과 땅의 침묵"이라는 시집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시집에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묘비명들이 실려있다. 묘비명에 대한 해설도 이 책에서 옮겨온 것이다. 무심한 솔바람이여 너는 알고 있는가 내 슬픈 눈물 내 붉은 피는 누구를 위해 흘렸는가 오! 조국이여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 내 붉은 피는 역사의 불꽃이 되어 밤하늘에 찬란히 피어나리 * 장철부(육군중령)의 죽음을 추모한 육사 8기생들의 글로서 1971년 11월 3일 제헌되었다. 장철부는 1950년 8월 4일 경북 청송에서 전사하였다. 여명의 빛이 이 땅에 비추일 때 새벽을 안고 온 님이여 들리나이까 오늘 조국대군의 우렁찬 소리와 온 전우들의 애끓는 찬사가 구국의 깃대들고 잔비 섬멸하며 조국위해 투아순심한 그 기개를 다시금 흠모하오 아! 가신 그날이 없었던들 오늘 이 자리에 슬픔이랴 그러나 님은 가셨습니다 우리에게 영겁의 혼을 심고서 여기 안민하십니다 * 위대선(육군대령)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로서 1971년 7월 29일 창군 동우회 회원이 제헌하였다. 위대선은 1949년 3월 19일 공비토벌 중에 전사하였다. 여기 인내와 의지로 살아온 젊음이 남과 북에 철선의 한도 풀지 못한채 간 넋이 있다 포화속에 심어논 그 자유의 얼은 온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파동치리라 * 1969년 9월 12일 김홍국(육군상사)의 죽음에 바친 전영구(준장)의 헌시이다. 김홍국은 1968년 9월 25일 제7후송병원에서 순직하였다. 나는 적진에 돌격할 터이니 더 이상 나를 찾지말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쏟아지는 적탄속에서 산화해간 맹호가 이제 조국의 땅에 영원히 묻혔으니 전우여! 천국에 잠드소서 * 조채욱(육군대위)의 묘비명이다. 그는 1967년 1월 29일 월남전선에서 전사하였다. 이 글은 그의 동료들인 ROTC 제1기생들이 제헌한 것이다. 여기는 DMZ 연천의 어느 산협 푸른 제복의 건각은 한밤의 폭음과 함께 이슬처럼 산화했다 가라 춤을 추라 조국수호의 구국 영령들이 제석천 하늘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노라 지는 꽃잎에 우리는 슬퍼하나 그대의 죽음은 찬양되리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살았노라고 DMZ에 흘린 그대의 붉은 피는 잊혀지지 않는 상흔으로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적시어 꽃으로 피리라 지지않는 조국수호의 꽃으로 * 신명철(육군중위)의 죽음 앞에 바친 동기들의 우정과 연민의 노래이다. 신명철은 1981년 3월 27일 연천에서 순직하였다. 이 글은 1982년 6월 31일 보병 28사단 특공수색대대에 근무하는 이왕돈, 이강희, 양국용, 김강희(전원 육군중위) 등이 제헌한 것이다. 남국의 산하에 피빛 노을이 지던 날 쓸쓸히 숨져간 우리의 젊음이 누워 있노라 긴 세월 광운의 요람속에 미래를 설계하며 화안한 웃음을 기다리던 너 키다리 이젠 조국의 품안에 한줌 흙이 되어 우는가? 분노하는가? 여보게 종직이! 그대의 장한 얼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기억되리니 고이 잠들어라 * 이종직(육군대위)의 죽음을 "제4기 장학생 일동"이란 이름으로 추모한 글이다. 이종직은 1970년 7월 24일 월남에서 전사하였다. 전우여! 언젠가는 찾아올 너와 나의 이별을 미리부터 앞당겨 그대는 떠나갔나니 이별이란 연습을 미처부터 해주지 못했음을 아, 내 이렇게 살아있음에 더욱 슬픔이라 오늘은 바람이 불고 스산한 가을비가 내릴 듯 내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 너의 곁을 찾아 왔음에 조국이여! 한 용사는 그대 품에 영원히 잠들고 충정의 피눈물은 이 산하를 적시었으니 만만세세 억겁년을 그 뜻에 잔연하소서! 아아, 친구여! 너의 짧디짧은 청춘에 영생의 천명있으라 * 최광섭(육군이병)의 묘비명으로 "추모"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그는 1982년 5월 21일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순직하였다. "영원한 이 땅의 친구"라고 밝힌 병돈, 효성에 의해서 쓰여졌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에 꽃같이 숨었느뇨! * 최용진(육군중령)의 묘비명이다. 그는 1983년 5월 18일 수원에서 사망하였다. 이 글은 "그리움"이란 제목이 붙여진 것으로 딸과 사위, 그리고 가족이 함께 제헌하였다. 보고싶은 당신의 얼굴! 듣고 싶은 당신의 음성! 이 안타까운 마음 달랠 길 없어 이 글월을 당신의 영전에 바치나이다 꿈결같이 흘러간 십 년간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면서 굳건히 살아가렵니다 초로와 같은 인생 끝나는 날 당신 곁으로 가렵니다 님이여 고이 잠드소서 * 1967년 8월 5일 장앙지구에서 순직한 추기향(육군중령)의 묘비명이다. 이 글은 1967년 8월 7일 그의 가족(부인 차인순, 큰 아들 재영, 작은 아들 재현)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제헌한 것이다. 살아서 오고 싶다던 너에 말 한마디가 뼈에 사무치는구나 사슴과 같이 뛰놀던 고향의 산야 그렇게 그리워 하던 고향산천에 끝내 못오고 이 슬픔 안고 올 줄이야 뉘 알았겠느냐! 동작동 이 무덤에 고이 잠들어라 * 김상권(육군상병)의 죽음을 의 숙부가 애도한 글이다. 1970년 3월 1일 월남에서 전사한 후, 그 해 4월 22일 바쳐진 묘비명이다. 내 사랑 도범아! 다정히 속삭이던 너와의 대화는 나의 귓전에 아직도 남아 있는데 넌 가고 없구나 못다한 젊은 꿈은 어떻게 하고 외로운 엄마 두고 정녕 떠나지더냐 * 이도범(육군하사)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그는 1969년 10월 2일 철원에서 순직하였다. 이 글은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 앞에 바친 것이다. 흰국화 되어 떠나 가신 님 배웅 못해서 꽃가마 되어 떠나실 때 메지 못해서 님그리운 이 몸은 눈물 흘리나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날 때 그 길을 걸어보고 그 일을 생각해보나 님 안 계신 슬픔은 끝이 없나이다 기왕에 떠나시려거든 나 떠나오 말이나 했으면 붓안고 떠나지 말라 졸라나 보았으련만 님 가신 슬픔은 끝이 없나이다 흰국화 되어 떠나신 님 배웅 못해서 꽃가마 되어 떠나실 때 메지 못해서 님그리운 이 몸은 눈물 흘리나이다 * 고명수(육군중사)의 죽음에 바친 그의 아내("동심의 윤성"이라 밝히고 있다)의 헌시이다. 그는 1982년 6월 1일 성남에서 순직하였다. 빛이 아무리 밝은들 볼 수 없는 당신의 얼굴 바람이 아무리 센들 전할 수 없는 저의 목소리 몸부림쳐도 전할 길 없구료 일편단심 보고픈 그리움을 당신만은 알아 주시리 영전에 엎드려 명복을 비옵니다 * 전용조(육군대위)의 죽음에 그의 아내("정희"라고 밝히고 있다)가 사모의 정을 담아 올린 글이다. 정용조는 1971년 7월 16일 제 51 후송병원에서 순직하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싶어요 눈부신 햇살과 푸른 하늘을 속눈썹 창으로 가리운 채 나에게서 당신을 빼앗아간 그 모든것을 원망하면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싶어요 아빠! 그래도 우리 사랑의 의미인 종일이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면서 정성껏 키우겠어요 당신이 나를 뜨겁게 사랑해준 만큼 또한 종일이와 저는 열심히 살거예요 당신이 보고 당신의 영혼이 우리 모자에게 항상 함께 있어 삶의 용기를 주리라 믿어요 * 주재필(육군소령)의 묘비명으로 그의 아내("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정숙"이라고 밝히고 있다)에 의해 쓰여졌다. 그는 1982년 12월 2일 양구에서 순직하였다. 이 한몸 서있기에 너무 너른 세상 당신은 큰별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나 당신 그리워 오늘도 통곡합니다 이 목숨 다하도록 당신 이름 부릅니다 당신이 남기고간 숱한 사연들을 지나는 세월의 갈피속에다 나 이제 하나 남김없이 갈피속에다 나 이제 하나 남김없이 간직하렵니다 생전에 늠름하고 정직한 모습 대장이 아니어도 나는 좋았오 푸른 젊음 나라 위해 바친 생애 우리 여섯 아들 딸들이 자랑되고 기쁨되었던 생애 참 고마웠던 당신이여 먼 훗날 이 세상 다 하는날 천국의 뜰에서 당신과 나는 다시 원앙으로 만나리라 편히 쉬소서 나의 님이시여 * 1982년 12월 29일 대구에서 순직한 김용식(육군대위)의 묘비명이다. 1987년 8월 28일 그의 아내가 바친 글이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바친 당신이여! 천번만번 애타도록 불러봐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절을 잊으셨나요. 왜 말이 없습니까? 정말 당신은 고이 잠드신게로군요 천국에 명복을 비나이다 * 최영관(육군중사)의 묘비에 그의 아내 박순자가 제헌한 글이다. 그는 1971년 5월 9일 이국 월남에서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그의 아내는 이 글에서 그녀의 님을 향한 애끓는 정을 애써 절제하면서 토로하고 있다. 자고나면 만나려나 꿈을 꾸면 찾아올까 흘러간 강물처럼 가고안온 내자식아 못다핀 꽃봉오리 어디에다 심어두고 소식없고 말도없이 이 애비를 애태우나 강남바람 불어오면 그 봉오리 다시필까 봄비를 맞으며는 그 봉오리 활짝필까 넘쳐흐른 그 푸르름도 아랑곳없이 된서리를 맞았느냐 모진바람 못피했나 잊으려도 못잊겠는 상사에 내자식아 * 정영태 (공군소령)의 죽음을 애도하몀 1984년 6월 6일 그의 부친이 친히 바친 글이다. "그리운 내 자식아"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글은 육친의 비통함과 애닯음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1983년 5월 6일 경산에서 순직했다. 꿈에서나 속삭여 주렴 외롭다며는 엄마 누나 가슴속에 웃는 얼굴로 새근새근 잘자라 우리 광진이 * 김광진 (육군병장)의 묘비에 각인된 글이다. 그는 1965년 5월 4일 젊은 나이에 이국땅 월남전선에서 전사하였다. 이글은 그의 엄마와 누나가 직접 쓴 것으로 소박한 애정이 눈물겹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 잠든 젊은 영혼아 나의 아들 효병아! 내 어찌 너를 앞세워 보내고 뒤에 남아서 무슨 눈으로 빛을 보며 무슨 청으로 목놓아 우는지 모르겠구나 삶의 보람이던 나의 아들 내일의 희망이던 나의 아들, 일곱남매의 외아들로 두터운 효심마저 지녔던 나의 아들 목이 잠겨 울지 못하고 눈물이 메말라 흐르지 않는 애닯은 아비는 손모아 비노니 효병아! 저승에서나마 너의 큰 뜻과 갸륵한 마음씨를 아리땁게 꽃피워다오 사랑하는 나의 아들 효병아!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길이길이 명복을 누리어다오 * 박효병 (육군일병)의 묘비명이다. 그는 1966년 6월 25일 화천지구에서 순직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아타까움을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스물네살의 뜨거운 젊음을 이국전선 월남땅에서 조국위해 불살라 태운 너의 젊음이 애절하구나! 부모에게는 더 없이 효자였고 동생들에게는 언제나 진실하고 정다운 너였기에 씩씩하고 장한 너의 모습을 찾을 길 없어 다만 두손모아 길이 명복을 빈다 * 1972년 4월 20일 월남에서 전사한 안상진 (육군병장)의 묘비명이다. 이는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정성어린 사랑과 아픔의 표시이다. 여기 내 장한 아들이 잠들어 있다 고귀한 목숨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꺼이 버렸으니 이 어찌 충이 아니겠으며, 어버이로 하여금 자랑스런 아들을 두어 슬픔 가운데 자랑을 주었으니 이 또한 효가 아니리요! 오호라! 내 아들이여! 너는 죽지 않았다 언제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노니 고요히 그리고 길이 잠들어라 * 최규일 (육군병장)의 죽음앞에 바쳐진 글이다. 그는 1969년 11월 4일 월남에서 전사하였다. 이글은 1970년 10월 9일 아버지, 엄마, 누나, 동생 아마도 가족전체가 뜻을 모아 쓴 것인 듯하다. 역사에 실린 조국의 부름이 있었고 신 앞에선 젊음의 함성이 있었다. 여기에 얼룩철모 씩씩한 조국의 아들이 스물넷의 젊음으로 땀뿌리고 피흘린 장한 얘기를 남기고 영원히 잠들다. * 이성진 (해병대위)의 묘비명이다. 그는 1969년 7월 30일 이국 땅 월남전선에서 전사하였다. 이 글은 1969년 11월 6일 어머니가 아들의 장한 모습을 그리며 쓴것이다. 내 지금 슬퍼도 언젠가는 영광이 있으리라 열심히 쟝글을 기고 산을 기고 총을 잡으면... 대호가 무서우리 아니면 VC가 무서우리 오! 그 이름 슬기로운 왕자 백마용사여! 내 비록 쟝글속에 쓰러져도 영혼은 영영 그대 곁에 있으리라 내 개선하는 날 향토에 키스하리라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리라 기다려주오! 그날을! * 유동조(육군병장)의 묘비에 각인된 글로서, 그의 전선일기 중 1971년 2월 17일자의 기록이다. 그는 1971년 3월 14일 이국땅인 월남전선에서 전사하였다. "미래"란 제목이 붙여져 있는 이 글은 머나먼 이국의 전선에서 그가 느낀 갖가지의 상념들을 응축하여 토로하고 있다. 겨레여 이 나라의 길손들이여 여기 불멸의 수호신이 있다 충정의 영원한 활화산 하늘 바다 땅을 가슴에 안고 조국을 부르짖던 너 검은 베레여! 백두산 천지연을 그리도 보고싶어 한라산에 머물렀구나 내 조국 위해 땀모아 소금이 되고 피를 괴어 봉화 올리며 몸태워 기름 만들던 너 검은 베레여 안되면 되게하라 짧은 내 인생 영원한 조국에 네가 죽음으로서 우리가 살고 조국은 지켜지리니 검은 베레는 죽어서 영원히 산다 * 제주도에서 순직한 신길섭, 전태익, 이민호(육군상사) 외에 산화한 전우 상사에게 바친 박희도(육군중장)의 헌시이다. 1982년 2월 5일 순직하였다. 하늘에 살다 승화해간 외로운 넋은 말한다 나 27 세 짙은 젊음을 조국의 하늘에 바쳤노라 살아 비겁하지 않았고 살아 헤매이질 않았다 그리고 나 살아 울지 않았다 뜨거운 사랑도 하늘을 바꾸지 못했고 대지의 권세와 명예도 하늘의 꿈과 맞설 수 없었다 날로 높아가는 하늘 아래서 내 조국의 하늘 아래서 자라온 한떨기 꽃잎은 졌어도 넋은 영원히 하늘에 사노라 * 김봉율(공군소령)의 묘비명에 적힌 글로, 1983년 1월 20일 그의 동기생들이 제헌한 추도의 글이다. 그는 1983년 1월 18일 보성상공에서 순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