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징카 작전: 김포공항 출발 넉 대의 미국 여객기 등 12대에 폭탄장치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 성공했다면 4000명 사망. *한국판 9.11 테러 계획: 미국의 9.11 테러와 동시에 아시아에서 미국 여객기 납치, 駐韓(주한)미군 기지와 駐日 미국 대사관에 突進(돌진)! *보징카 계획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제1차 테러범 유세프가 주도, 駐韓(주한)미군기지 공격은 9.11 테러 배후 지휘자 모하메드가 구상하고 빈 라덴이 결심. *보징카 작전은 아지트에서 불이 나 음모 발각, 한국판 9.11 계획은 납치의 타이밍을 맞출 수 없어, 뉴욕 작전에 전념하기로 하고 포기. 趙甲濟(월간조선 편집위원 겸 조갑제닷컴 대표) 김포 공항 출발 넉 대 등 12대의 미국 여객기 폭파 계획 1995년 1월21일과 22일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네 편의 美국적 여객기를 포함한 12대의 東아시아 출발 미국행 비행기를 태평양 상공에서 동시에 폭파시키려는 알 카에다의 테러계획이 실행 직전에 발각되어 저지된 사건을 아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다. 作戰(작전) 개시일을 보름 앞둔 1995년 1월6일 마닐라의 공작원 아파트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음모가 드러나고 주모자들은 달아났다. 이 계획은 보징카 작전(Operation Bojinka)으로 불린다. 보징카는 아랍 俗語(속어)로 ‘폭발’이란 뜻이다. 보징카 공작의 주모자 중 한 사람이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앞으로 KSM이라고 略稱(약칭)한다]였다. 그는 이 실패한 계획의 불씨를 살려 2001년의 9.11 테러를 發想(발상)한다. KSM은 보징카 공작을 위하여 1994년에 마닐라에서 김포공항으로 일종의 탐색여행을 했던 이다. 그는 김포공항에서 입국하지 않고 10시간 대기하다가 마닐라로 돌아갔다. 아파트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김포공항을 출발한 미국항공사 여객기 넉 대 등 12대가 공중폭파되어 4000명 이상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9.11 테러뿐 아니라 알 카에다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테러 작전에서 빈 라덴의 작전참모 역할을 한 KSM은 2000년엔 9.11 테러계획을 총괄적으로 지휘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테러계획도 꾸몄다는 사실이 최근 미국 당국의 訊問(신문)에 의하여 밝혀졌다. 그는 빈 라덴의 지시에 따라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여객기 납치 계획을 추진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미국 여객기를 납치, 9.11 테러와 같은 시간에 한국의 미군기지와 일본의 미국대사관 건물을 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KSM은 2003년 파키스탄에서 검거되어 쿠바에 있는 美軍(미군)기지 관타나모에 수용된 상태에서 訊問(신문)과 재판을 받고 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폭파범이 主謀(주모) 마닐라를 중심으로 전개된 보징카 공작에 동원된 人力(인력)과 조직과 發想(발상)이 9.11 테러로 進化(진화)된 것은 두 주모자 때문이다. 보징카 공작의 제1 주모자는 람지 유세프였다. 그는 KSM의 조카였는데 세 살 아래였다. 유세프와 KSM은 쿠웨이트에서 자랐으나 뿌리는 이란-파키스탄 국경에 사는 부족이었다. 유세프는 1993년 2월26일에 있었던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제1차 폭파사건의 주모자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 여섯. 알 카에다의 훈련소에서 폭탄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북쪽 타워의 지하 주차장에 세운 트럭에서 폭탄이 터졌다. 7층 높이의 구멍이 생기고 6명이 사망, 약 천명이 부상하였다. 문제의 폭탄은 유세프가 만든 것이었다. 그는 파키스탄 국적으로 위장하여 그 전해 미국에 들어왔었다. 유세프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북쪽 타워를 넘어뜨려 남쪽 타워를 밀어붙이면 두 타워가 같이 무너지도록 폭파를 설계하였으나 北타워는 기울지 않았다. 유세프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빌딩의 폭파 직후 파키스탄으로 달아났다가 국제적으로 수배를 당하고 있는 가운데 삼촌과 함께 위조여권으로 마닐라에 잠입하였다. 마닐라에서 공작세포를 만든 그는 KSM과 함께 아파트를 빌려 엄청난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공작에 돈을 댄 것은 알 카에다였다. 당시 빈 라덴은 수단에 있었다. 유세프는 아파트에서 폭탄을 만들어 실험을 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 12월1일 유세프는 자신이 만든 私製(사제) 時限(시한)폭탄을 마닐라의 그린벨트 극장 좌석 밑에 두어 터지게 하였다. 수 명이 부상당하였다. 12월11일엔 여객기를 상대로 실험을 하기로 하였다. 그는 마닐라에서 휴양지 체부로 가는 필리핀 항공 점보 여객기에 탔다. 숨겨 들여온 부품을 갖고 화장실에 들어가 폭탄을 조립한 다음 26K 좌석 밑에 두고 체부에서 내렸다. 폭탄이 네 시간 뒤에 터지도록 해놓았다. 이 여객기가 마닐라에서 일본의 나리타 공항으로 날아가던 중 오키나와 부근 상공을 지날 때 폭탄이 터졌다. 승객 한 명이 사망하였으나 여객기는 오키나와에 비상 착륙하였다. 이때 사용한 폭탄은 유세프가 완성하기로 한 폭탄의 10분의 1 정도 폭발력을 가진 것이었다. 유세프가 26K 자리 밑에 있는 구명대 속에 폭탄을 숨겨놓은 것은, 그 자리가 중앙연료탱크의 바로 위쪽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보통 점보기에선 그게 맞았으나 이 여객기에선 26K 자리가 정상위치보다 두 줄 앞이었다. 그래서 폭탄이 터졌지만 연료탱크는 손상되지 않았다. 26K 자리에 타고 있던 일본인 승객의 몸은 두 동강 났다. 그렇게 충격을 흡수해주었으므로 機體(기체)는 견딜 수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292명의 탑승자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유세프와 KSM 콤비는 이때 필리핀에서 20여명의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유세프는 알 카에다 요원으로부터 다른 지령도 받았다. 1994년 11월12일에 마닐라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암살계획이었다. 스팅어 미사일로 클린턴 전용기를 공격하는 등의 여러 수단을 강구하다가 포기하였다. 1995년 1월15일 마닐라를 방문하기로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암살하는 계획도 추진하였다. 이는 12대의 여객기 동시 폭파사건을 준비하기 편하게 경찰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신부로 위장한 암살자가 폭탄을 품고 교황에게 접근, 自爆(자폭)하기로 했다. (이하 全文은 발매중인 월간조선 5월호에 실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