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태워 죽일지도 모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앨 거라는 생각은 나를 거의 도취시켰다.
똑같은 재앙, 똑같은 불의 불길한 운명 아래,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동일한 차원에 속했다.
나의 연약하고 보기 흉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불타기 쉬운 탄소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도둑이 보석을 삼켜서 숨기고 달아나듯, 내 몸속에 금각을 숨겨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중에서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사의 대웅전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함께 생활하던 스님들이 서운하게 해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불을 질렀다”고 한 수행자가 방화를 자백했다. 마음을 다스려 큰 지혜를 얻겠다며 머리 깎고 속세를 떠났을 텐데
남이 좀 서운하게 했다고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 수행처에 불까지 질렀다니,
아둔한 중생은 그 마음이 쉽게 헤아려지지 않는다.
1956년에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말더듬이 소년이다.
그는 금각사의 전각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믿는다.
전쟁 중 눈부신 금각도,
못생긴 자신도 함께 불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기뻐하지만 끝내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전각과 여전히 초라한 자신은 별개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실제 금각사 방화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방화범은 ‘인간 소외’와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때문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를 모델로 한 미조구치도 금각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다.
지고의 아름다움을 무너뜨리며 높이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던 그는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죽음과 탄생, 파괴와 창조의 순환 등, 다양한 문학적 해석이 가능한 결말이다.
현실은 다르다.
서운해서 술을 마셔야 한다면 바닷물이 술이라도 모자랄 것이다.
화날 때마다 불을 지른다면 남아날 건물도 없다.
덕 높은 수행자도 어딘가엔 있겠지만 술 마시고 패싸움하고 룸살롱 드나드는 승려들,
부와 권력을 바라고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종교 지도자들이 넘쳐난다.
제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면서 세상과 중생을 구하겠다니, 얼마나 맹랑한 꿈인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3/10/PKS42BVMC5GO3K3SNQBSTKGB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