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목 : 西山大師의 시 二題
과저사문금(過邸舍聞琴)>
백설난섬수(白雪亂纖手) 흰 눈으로 어지러이 날리는 섬섬옥수
곡종정미종(曲終情未終) 가락은 멈췄으나 정은 멈추지 않네
추강개경색(秋江開鏡色) 가을 강에는 거울 빛으로 열리더니
화출수청봉(畵出數靑峰) 푸른 두어 봉우리를 그리어냈네.
위 시를 읽어본 독자가 작자를 연상한다면 어떤 부류의 인사이리라고 상기할 것인가.
열에 일곱 여덟은 호방한 한량이리라고 상상할 것이다.
작자를 알아내기 위하여 우선 이 시의 제목을 밝혀 보자.
제목이 <과저사문금(過邸舍聞琴)>이다.
저택을 지나며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여행길에 큰 저택을 지나다 그 저택 안에서 울려나오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지은 것이다.
거문고 줄을 튕기는 그 아리따운 손은 흰 눈처럼 고운 섬섬옥수이리라.
이 희고 가녀린 손끝에서 흰 눈이 날리는 듯하다. 한참을 울리더니 곡이 끝났다.
그러나 거문고를 탄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정은 끝나지가 않았다.
곡의 여운도 길이 가겠지만 그것 보다도 이 곡을 들은 이의 정은 그저 상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이어지는 정으로 상상되는 가락을 그려 본다.
맑은 거울 같은 강물이 연상되는가 하면, 이어서 푸른 산봉우리가 나타난다.
섬섬옥수로 그려내는 산수화의 한 폭이다.
가을 강을 굽어 보다가 가을 산의 푸른 봉우리를 올려다본다.
오르내리는 시선이 거문고 줄을 타는 여인의 섬섬옥수 만큼이나 빠르다.
이러다 멈추었으니, 가을 강물에 비친 푸른 봉우리로 시선이 멈췄다 하자.
이 때 지나가던 과객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니 호탕한 한량이라야 맞지 않겠나.
독자인 나도 시선이 굳어 책을 덮었더니, 표지가 <청허집(淸虛集)>이다.
청허당 서산대사의 시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호가 말해주 듯이 맑고 텅 빈 선사의 참 모습이다.
세속을 떠났다 세속으로 되돌아온 출출세간(出出世間)의 해탈자세가 아닌가.
흔히 이심전심의 묘를 “아아양양(峨峨洋洋)”이라 하여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탈 때 종자기(鍾子期)가 듣고서 상상한 표현으로,
백아가 산을 연상한 곡을
종자기가 “높고 높음이 태산 같다(峨峨兮若泰山)”라 하고,
강물을 연상하면 “넓고 넓은 강물과 같다(洋洋兮若江河)”라 함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상황의 직설적인 표현으로 서산대사의 이 시의 은유적 상상은 따라갈 수가 없다.
역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에 막힘이 없음이 선사의 자세임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서산대사의 인정을 보여 주는 시 하나를 더 소개해 본다.
일별훤당후(一別萱堂後) 어머니를 한번 이별한 후로는
도도세월심(滔滔歲月深) 도도히 흐른 세월만 깊어지더니
노아여부면(老兒如父面) 늙은 아이의 아버지 닮은 얼굴에
담저홀경심(潭底忽驚心) 연못 물에서 갑자기 놀라는 마음.
<고영유감(顧影有感)>이라는 시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보고 지은 시이다.
오랜 세월 부모 곁을 떠나 있다 돌아와 물을 마시려 들여다본 우물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를 꼭 빼닮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지은 것이다.
출가가 아무리 속세의 인연을 끊는 것이라 하여도 인륜적 혈연은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필자도 근자에 내 사진을 선친의 사진으로 오해한 적이 있어 이 시가 더욱 공감이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