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숙(시인)
산사 나들이
모처럼 따사한 봄빛에 못이겨
벗을 졸라 나들이를 나섰더니
아래 저수지엔 인파가 몰리고
언덕 위 고찰은 적막하기 그지없네
우리네 늙은이들에겐 그것도 좋아
양편에 달아놓은 오색등을 따라
일주문 앞에 서니
아득하기만 하던 피안彼岸이
바로 눈 앞에 있네
두 손 모은 동승은 어디에 있는고
산사 가득한 신록이 손을 맞네
차방에 드니 아낙이 소리도 없이 나와
무엇을 드시겠냐 눈으로 묻네
작은 항아리에 가득 쌍화차를 올리고
물러가는 여인의 자태도 곱다
창밖 고목도 춘흥春興에 겨워 흐믓한데
사나이 하나가 비스듬히 앉고
벗들은 두 손을 가리고 웃네
속절없이 가는 봄날을 어이 잡으랴
함께 따라 물처럼 흘러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