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4월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태항산(太行山)과 불교⦁도교의 유적이 볼만한 해발 2,566미터의 공중도시 면산(綿山)을 다녀왔다. <금강경독송회>라는 모임의 단체여행이었다. 태항산의 行자는 ‘다닐 행’자가 아니라 ‘줄 항’자로 읽는다. 큰 산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뜻이다. 면산은 당태종이 산에 있는 양떼를 보고 면화 같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태항산대협곡(太行山大峽谷)은 중국의 중원(中原)이라고 부르던 하남성, 하북성, 산서성 3개 성(省)에 걸쳐있다. 남북으로 600km, 동서로 250km로 거대하게 뻗어 있는 대협곡이다. 산시성(山西省)은 산맥의 서쪽에 있다는 뜻이고 산맥의 동쪽으로는 산동성(山東省)이 있다. 우리가 인천공항에서 직항로를 따라 2시간을 비행해서 도착한 곳은 산시성의 성도(省都)인 인구 900만의 태원(太原) 국제공항이었다.
태원은 후일 당태종이 된 이세민이 수나라의 폭정에 맞서 거병한 지역이며 유일한 여황제인 무측천(武則天, 측천무후)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당태종의 궁녀 무미랑으로 시작해서 고종의 황후가 되고 황제에 올라 무(武)씨 천하를 열었다. 나는 중화TV에서 방영하는 그녀의 일대기《무미랑 전기》를 보고 있어 이곳이 낮 설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산시성 정치현의 한 호텔에서 첫 밤을 보내고 다음날 13.2km의 긴 터널을 지나 태항산의 아름다운 계곡, 도화곡에서 태항산 관광을 시작했다.
도화곡은 엄동설한에도 복숭아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협곡은 수억만 년 전 지질이 형성될 때 유수의 침식으로 홍암석이 씻겨 내려가면서 형성된 깊은 계곡이라고 한다. 동양에서 큰 것은 다 중국에 있다는 말이 있다. 태항산 역시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절벽과 기암괴석, 폭포 등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펼쳐지는 자연경관이 볼만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사람도 높은 곳까지 올라가 감상할 수 있도록 필요한 곳마다 케이불카와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태항산의 자연경관도 압권이지만 볼거리가 더 많은 곳은 5박4일 일정 중 세 번째 날 찾아간 면산이었다. 면산에는 높은 산 절벽에 만든 불교사찰과 도교사원, 그리고 개차추의 사당이 있다.
절벽에 세워진 운봉사에는 한(漢)족 중에서 처음으로 부처가 되었다는 진불공왕불을 모신 공왕불전이 있고 약사전, 미륵전, 관세움보살전, 미타전 등이 있다. 많은 전각 중에는 개자추를 모신 사당도 있다. 이 전각과 조각품들은 북위 때부터 시작하여 당, 송, 원, 명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1,700년의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운봉사와 정과사에는 도를 얻은 스님이 입적 후 그 유체에 진흙을 발라 그대로 보존한 16분의 포골진상이 모셔져 있어 이채로웠다.
해발 2,072m 면산 정상에는 중국의 절개(節槪)라고 숭앙되어온 진국(晉國)의 충신 개자추(介子推) 모자(母子)를 기리는 사당이 있다. 개자추는 우리민족도 오래전부터 매년 기념하는 한식날의 주인공이다. 열두 달을 노래한 농가월령가에 “이월이라 한식날은 개자추의 넋이로다~”라는 가사가 생각난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여기에 모셔져 있다.
한식날은 불을 사용하지 않아 찬밥 먹는 날이기도 하다. 개자추는 춘추시대 오패(五霸)의 하나였던 진나라의 문공을 어려울 때 도와준 충신인데 문공이 국군(國君)에 오른 후 그를 찾았다. 그가 면산에 숨은 것을 알고 그를 찾으려고 산에 불을 질렀는데 그만 개자추가 어머니와 함께 타죽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를 알고 나라에서 개자추가 죽은 날을 충신을 기리는 날로 정하고 그날부터 3일 동안 불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사당의 밖에는 <인의예지신염치(仁義禮智信廉恥> 등 유교의 덕목을 한 글자씩 기둥을 만들어 세워놓은 구조물이 있었다. 밑에 건조기록을 보니 후진타오 주석이 재임하던 시절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유교 불교 등 전통사상의 덕목을 통치기반으로 삼으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설에 의하면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에 들어와서 도교의 최고 경지인 <대라선경(大羅仙境)>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도교사원인 대라궁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당태종의 여동생이 이곳에서 수련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후 도교를 숭상한 현종이 이곳에 대대적인 도교사원들을 지었고 그 후 역대 황실이 증수해서 도교 최대의 사원이 되었다. 일제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현대에 재건하여 다시 최대 규모의 도교사원으로 복원시켰다. 이곳에는 도교의 성인들이 모셔져 있고 도가에서 우주의 시원이라고 보는 무형, 무명, 무상을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 신으로 모시는 혼원신전이 있어 이채로웠다.
더욱 나의 관심을 끌었던 곳은 한고조의 천하통일을 도운 장량(張良)과 삼국지에서 유비의 참모였던 제갈량이 도를 수련했다는 수행동굴이었다. 장량은 한고조 6년에 태상노군의 깨우침을 받아 면산 이곳에서 수련하고 후에 수렴동에서 진인이 되었다고 한다. 제갈공명은 유방의 천하통일 대업을 이룩하게 한 장량을 사모하여 건안 2년에 이곳에 와서 수련했다고 기록되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청나라 때 4대 명문가의 하나인 장승 왕씨 형제가 지었다는 왕가대원을 방문하였다. 총면적이 4만 5천 평방미터이고 1,118칸의 방과 113개 정원이 원형 그대로 보전되었다고 한다. “황실에 자금성이 있으면 민간에는 왕가대원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간 건축물을 대표하는 곳이다. 마침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대원을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평요고성의 객잔식 디너쇼를 관람하였다. 중국 전통무용⦁노래⦁극 들이 재미있게 펼쳐지는 디너쇼였다. 서양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이번 여행 코스의 마지막 밤은 중국 부호들의 전통가옥을 개조한 객잔에서 보냈다.
귀국하는 날 오전 우리는 몽산대불(일명 서산대불)을 예불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바로 눈앞에 산과 같이 우뚝 서 계시는 대불을 향해 걸어올라 가다가 나는 힘이 들어 중간 지점에서 예배하는 사람들과 합류하였다. 아내는 다른 일행과 함께 대불 앞에서 참배하고 왔다. 그런데 아내 일행을 기다리던 나는 그들이 이미 지름길로 내려간 것을 모르고 한참을 기다리다 가이드가 찾아와서 함께 내려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몽산대불은 몽산의 암벽을 통째로 깎아 24년에 걸려 만든 걸작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애석각대불이다. 높이가 63m, 넓이는 25m, 목둘레는 5m, 가슴과 목부분 높이는 17.5m라고 한다. 내가 가 본 적이 잇는 쓰촨성(泗川城) 러산에 있는 러산(樂山)대불보다 162년 앞서 지어졌으며 2001년 탈레반이 로켓탄으로 파괴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대불보다 10미터가 높다고 한다. 무측천이 자주 와서 예배한 그녀의 주불이었다고 전해진다.
무측천(측천무후)은 우리가 오늘날 읽고 있는 금강경 앞에 경을 찬미하는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 개경게(開經偈)를 지은 분으로 알려져 있다.
위없이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이여
백천만겁 지나도 만나기 어려워라.
내가 지금 듣고 보고 지니게 되오니
부처님의 참된 뜻 이해하게 하소서
(無上甚深微妙法/百千萬劫難遭遇
我今聞見得受持/願解如來眞實義)
이번 금강경독송회의 대항산⦁면산 여행은 공교롭게도 무측천이 태어난 태원의 공항에 내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녀의 주불이던 몽산대불을 참배하는 것으로 끝마쳤다. 그녀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월간 한맥문학 2016년 7월호, 필자 정천구 서울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