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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된 정치. 사회활동을 해온 일부승려들에게 바란다.

대불총이 발간한 책자에 대한 서평에 갈음하여-

    

- 대불총이 발간한 책자에 대한 서평에 갈음하여-


2016. 1. 淨眼 合掌

 

<서언>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 총연합(대불총)>201512월 22불교계 일부승려들의 일탈된 정치.사회활동책자를 펴냈으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불총은 이 책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45년간 그 제자들에게 인생의 지침이나 교훈적인 가르침을 주신 '중일아함경(43)'에서

너희 비구들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칭찬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왕들에 대해 우열을 논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시었고.

금강명경 정론품에서 국사범(국가의 실정법위반자)에 대해서는 모든 간사와 나뿐 짓을 일으켜 국토를 파괴한 자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반드시 법대로 그 죄를 다시리라고 말씀하셨다고 소개하고 있다.

政敎분리는 불교경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헌법 20조 제2항에서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조계종 스님들은 이른바 198010.27일 법난이후 정치적 언행을 확대하여 왔으며, 마침내 조계종은 1994년 종법 46조에서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삭제하여 승려들의 정치참여를 정당화하고 있다.

대불총은 금 번 책자를 발간하면서 1985년부터 201512월까지 스님들의 정치활동 언행 관련  수천 여 건을 검토하여 핵심적인 사례와 그 활동의 지속성 등을 고려하여 공개대상 스님 50명을 선별하였다고 한다.


대불총은 앞으로 여하히 스님들이 정치활동 언행을 자제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 

 재가 불자들과 협의하고 토론과정을 거쳐 석가모니 부처님 생전,

인도 코삼비 지역에서 스님들 간에 마찰이 빚어졌고, 이들 당사자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에도 수긍하지 아니함으로 당시 신도들이 결심하여 3가지 거부운동< 공양제공안하기, 예배안하기, 인사안하기>을 통하여 마침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대상 스님들에 대해서는보시안하기, 법회참석안하기, 인사 안하기“3 No 코삼비 운동을 재현하자고 제안하였다.


요컨대, 대불총은 스님의 정치활동 금지는 경전과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니 신도들이 나서서 코삼비 3No’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무릇 유교문화권에서 남을 비방하는 것을 금기시해왔고, 특히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출가승은 그간 사부 대중의 스승이며, 존경의 대상이었지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해당스님의 일탈행위와 더불어 명단을 공개된 것은 불교계에 수치이며, 큰불행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 면면을 보면 큰스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스님들이 이러하니 불자의 한사람으로서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불총도 일부스님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아픔을 공감하면서 코삼비 운동을 채택하게 된바,

우선 그 까닭을 살펴보고 불자의 한사람으로서 불교종단과 해당 스님들께 몇 가지 진언 드리고자 한다.

 

1. 코삼비 운동 출범의 배경


1)국내환경의 변화

본 불자는 해당스님들이나 불교계에 대하여 우선 대불총이 이러한 결정을 하기 까지 어떤 고민을 하였을 가 그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한다.

북한 김일성은 6.25남침이 실패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남쪽 인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바있다. 그래서 박헌영은 그 책임으로 죽음을 면치 못하였고, 그 이후 북한의 대남전략은 정규전에 게릴라전을 가미한 배합전략을 채택하게 되었다.

 

김일성은 196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에 파병을 함으로써 군사력의 우위가 뒤바뀔 것을 우려하여 1968121일 청와대 습격사건과 동년 10월 울진삼척 공비침투사건을 감행하였으나

당시 강력한 반공정책이 어린애(공산당이 싫어요!)부터 어른까지 모든 국민에게 철두철미하게 인식되어 남한 내부에 침투하여 은거지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산악지대 은거하다 발각되어 거의 전멸되었다.

그 이후 침투사건은 재발되지 않고, 문세광 등을 통한 대통령 직접가격 이나 아웅산 테러, KAL기납치 등 요인의 집단공격방안이 감행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민주화이후 6.25행사도 하지 않고, 햇볕정책으로 인한 화해무드에 묻혀 반공이념이 약화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변해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우리사회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기술적 전쟁상태라는 인식이 희박한 상황이며,

한때 대통령까지도 국가보안법은 용도 폐기된 법이라고까지 언급하고 여의도 정치권에서 조차 국가보안법 폐기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일부스님의 편향된 역사관과 통일 지상주의는 북한집단에게 오판의 소지를 제공할 수 있으며, 군사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면 앞으로 북측은 비정규 게릴라를 사전에 침투시켜 전략적 목표에 접근하기 위한 접근로 확보 등 사전에 정규군이 공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게릴라를 침투시킬 때 어느 인물을 협조가능자로 선별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평소 주장한 언행이 북측의 이해와 공통점이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이 될 것이며, 특히 인적이 드믄 산사는 장기 은거지 확보의 거점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혹시 일부스님들은 언어도단이라고 펄쩍 뛰겠지만, 그러한 빌미를 주는 언행을 삼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바란다.

 

2) 베트남의 공산화과정 경험

본 불자는 1969~1970년 베트남 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당시 베트남 불교계는 앞장서서 이 땅에서 무조건 전쟁을 종식하고 미군은 철수 하라, 그래야 평화가 보장 된다고 외쳤다. 불교도들은 베트콩이 산악지대 은거하다 저녁에 민가로 내려오면 은신처와 식량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공산화 통일이 된 이후 통일의 일등공신이었던 불교지도자들과 베트남 내 친 월맹 정치지도자들은 숙청과 가혹한 운명에 처해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한번 배반한 자는 또 배반한다는 논리이었다.

우리나라의 6.25 전쟁 때 남로당이 북괴의 남침에 헌신하였건만, 박헌영을 비롯한 자진월북 인사 모두가 숙청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3) 남남갈등의 골 심화

무릇 전쟁에서 승패는 참전한 병사의 수나 병기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참전한 장병의 전의 (戰意)에 좌우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크고 작은 전쟁역사에 있어서 한결같은 교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작금의 현실을 살펴보면, 정치인은 나라보다 해당집단의 이익과 인기영합에 빠져있고, 유권자는 지역이기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 간 갈등, 역사인식에 차이, 노사갈등, 세대 갈등 등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고 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되고 있는 현실에서 대북 안보관의 분열은 경제력에 있어서 우리가 북한의 20배 이상 우위에 있고, 주한 미군이 상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보관이 분열되면 수적인 국력은 사상누각에 불과 할 수 있다.

특히 현재의 분열의 골은 치유되기 어려운 만성 중병인바, 우리의 시대적 소명인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하고 펑화통일을 달성하는 데 넘어야할 장애물이며 이를 넘지 못할 경우 대한민국은 위난에 직면할 것이며, 후세대는 오늘 우리의 처방 없는 분열상을 질책할 것이다.

요약하면, 아무리 북한이 핵을 개발하여 보유한다할 지라도 국민 모두가 대북안보관이 확고하다면, 일선 병사가 목숨을 내놓고 싸울 것이다.

 

2. 불교계에 대한 진언 

본 불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분열상은 치유하지 않으면 위기가 닥쳐 올 것이 불문가지이므로 현 분열상을 위기라고 진단하는 바이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대처 했는가 살펴보고 여기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고려조에 몽고족이 침입하였을 때 우리는 팔만대장경을 조각하면서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그들의 침략에 맞섰고,

조선조에 왜군이 침략하였을 때, 서산·사명대사가 승군을 조직하여 맞섰다. 불교계에서는 이와 같은 위난극복과정을 호국불교법통으로 계승하고 있다.

일제36년 침략시기에는 조선불교유신론과 각 부문에 사회개혁을 제창한 사회개혁가이며,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시인이며 문학가이었던 만해한용운선사를 우선 생각하게 된다,

 

특히 만해선사는 옥중 최후진술이나 옥중에서 작성한 조선독립이유서에서 일본의 패망을 피력하면서 여러 논단에서 일본패망 후 우리민족간의 분열을 우려하였다.

불행히도 그 예견대로 북괴의 6.25남침으로 500만 동족이 목숨을 잃고 말았으며, 북은 그이 후 한마디 사과도 없이 지속적으로 도발을 감행하고 있고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 시점은 상술한바와 같이 남남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추세인바, 만해 한용선사의 불교와 사회개혁, 정치 불 간여, 불굴의 실천의지 등 그의 뜨거운 나라사랑 정신으로 오늘에 되살려 해법을 찾고자 한다.

 

1) 진정한 참회의 목소리

이번 대불총이 펴낸 책자를 보고 새삼 놀란 것은 우리스님들은 매일 수차례 천수경의 십악참회(十惡懺悔)를 암송할 텐데, 편향된 시각을 10년 이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가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스님 들 중 운동권출신이 적지 않은 데 아직도 입산당시 운동권의식을 어느 사회주의자의 시구절과 같이 처음처럼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료에 제시된 사례를 들어보자, 20085월부터 10월까지 광우병 촛불시위에 불교계에서도 대거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광우병광란은 과다한 편견이었음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 시위를 기획하였던 총무원은 참회의 글을 직·간접으로 밝힌바 없다.

지율스님은 2003년 도롱뇽 서식지보호를 위해 120여일 단식하며 대구~부산 간 천정산 KTX 터널공사를 중단시켰다. 그 터널공사 완공이후 생태계환경조사 결과 도롱뇽 서식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지율스님은 공사지연으로 인한 사회적비용을 부담한 KTX당국, 해당 건설사나 국민에게 진정어린 사과한마디 없고 조계사 총무원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우리는 독일이 나치학살과 1·2차 대전으로 인한 전쟁피해국에 틈나는 대로 반복해서 사과하는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불교계는 일본의 태도에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한용운 선사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염불당 폐지를 논한바 있었다. 부처님이 내 마음속에 있는데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릇 깨달음과 실천은 뼈아픈 참회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아야 된다.

 

금 번 대불총의 책자발간이 불교계내의 새로운 분열이 아니라, 해당스님과 불교가 참회의 계기가 되어 영웅으로 대 변신하는 계기가 되어주기 바라는 바입니다.

 

2) 조계종 종법에 정치참여 금지

일제 강점기 한용운선사는 농민,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현실참여는 많이 하면서도 당시 총독의 주지인가를 받기위해 총독의 관사를 기웃거리던 31개 본산주지들을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존재로 비판함과 아울러 연해주와 만주의 독립군을 격려하였으나 상해임시정부는 방문하지 아니하였다

 아울러 많은 논문을 펴냈으나 정치체제에 대한 논문은 없었던 점도 그의 정치에 대한 중용의 도를 유지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만, 당시 그는 일제에 대항하기 위하여 국민통합이 최우선이었던 점에서 좌우통합을 위해 신간회를 발족시켰으나 사회주의 계열을 이탈로 해체된바 있었다.

 

그러나 우리 스님들은 대놓고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총선이나 대선 때 특정후보를 지지하는가 하면 대선캠프나 총선캠프에 참석하고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번에 대불총의 정치성 스님 명단 공개와 신도들의 코삼비 운동을 계기로 조계종이 주축이 되어, 아함경의 부처님 말씀과 우리헌법정신에 따라 조계종 종법에 스님의 정치참여를 금지하고, 정치성 언행을 일삼는 승려는 승적을 박탈하는 취지로 성문화하는 것을 건의하는 바입니다.

 

3) 불교계 혁신을 통해 사회통합의 발원지로 거듭나야

(1) 조계종은 사회의 대 스승을 배출하는 기관이라야

만해한용운 선사는 당시 시대소명인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스님에게는 불교유신을 설파하고 일반대중에게는 독립의식을 일깨우고자 민립대학설립과 여성해방의 필요성을 제창하는 한편, <임의침묵> 시집을 펴내고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등 다방면의 의식개혁을 추진하였다.

오늘 우리의 시급한 시대과제는 ‘분열의 골’을 치유하는 것으로서 그의 개혁정신을 되살려 분열의 골을 치우하여야 할 때이다.

대불총이 상기 책자에서 적시한 각 스님들의 언행록을 종합한다면, ‘사회분열의 골의 뿌리’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에 대한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판단된다.

아직도 낡은 사회주의 이념에 연연하여 북한체제가 세계유래가 없는 김씨 3대세습도 독재임을 알면서 사회주의 이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보고 북에 편향된 언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해선사는 좌우합작 신간회가 1927년 5월 출범하여 제대로 정착되지도 못한 채 1931년 5월 사회주의계열이 이탈하여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어느 기자가 “선생의 이념은 어디에 해당 됩니까”라는 질문에 구태에 말하자면 ‘불교사회주의자’ 라고 답하고, 기독교사회주의가 있듯이 불교사회주의가 있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리하여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이후 불교사회주의에 대해 논단을 발표하지 아니했다.

1930년 초 당시 유럽의 기독교사회주의는 소련 공산주의와 소통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나 1930년대 말 이후 기독교사회주의는 시장을 인정하고 비폭력 노선을 지향하면서 소련의 무산자 혁명노선과 결별하였다. 특히 1980년대 말 구소련의 해체과정을 경험하고부터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외개방과 시장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구태의 사회주의는 조종을 울린 지 30년이 흘렀다.

이러한 세기적인 대변혁 기를 거치고도 북한집단은 아직 문호를 걸어 잠그고 있다. 불교계가 진정동족애로서 북한을 대한다면 그들의 노선에 추종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대세에 따라 개혁과 개방을 권고하여야 할 것이다.

스님은 기존의 불자뿐만 아니라 무릇 일반대중의 스승이라야 한다. 그리하여야 자연히 포교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스님양성학교로서 동국대학교가 있으나 각 총림에서 운영하는 강원에도 우리역사관의 정립에 필요한 과정을 넣을 필요가 있다. 유태인에게 스승으로서 ‘납비’가 있듯이 우리사회에 대 스승을 배출하는 조계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스님은 모름지기 깨달음의 전도사가 되야

만해선사는 불교유신론에서 염불당의 폐지를 주창하면서, “불교가 깨닮음을 얻는 것이 목적일진대 어찌 구복에 함몰되어서 되겠는가” 라고 외쳤다.

대불총이 공개한 스님의 행태를 논하자면, “단간표월지지(但看標月之指)이고 미견당천지월(未見當天之月) 이라”고 평하지 아니할 수 없다. 큰스님의 지위에 오른 분의 발간저서를 보느라면 부처님의 진리를 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청치 지망생의 홍보책자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사찰의 권위와 문화는 구도의 수위와 득도에 이른 승려 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 불자는 중국 소림사의 수많은 부도(浮圖)가 숲을 이룬 듯한 ‘부도 숲’을 방문하여 몇몇 부도 앞에서 그의 생애 공적을 읽고 감명이 깊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사찰의 부도는 외형적인 불사얘기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 어찌 조선불교가 대승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겠는가?

조계종 총무원을 각 사찰별 구도 수준을 평가하는 평가시스템을 도입하기 바란다. 우수사찰은 공개하고 가능하다면 외국의 승려와 대화도 갖게 하면 어떨지 싶다. 총무원이 못한다면 재가 불자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3) 승려의 수도질서 확립

신문지상에 승려의 도박행위, 룸사롱 출입 등이 간간히 제기되곤 하였다. 여타종교와 달리 승복을 차림새로 누구나 쉽게 식별되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일반대중으로부터 스님의 신뢰도가 낮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

거기에다 조계사 주위 인사동 등 식당에 가노라면 스님들이 방문하여 여느 일반대중과 같은 메뉴로 식사한다는 얘기는 일찍이 들었다.

신도의 공양이라서 가리지 않고 드실지 모르지만 여하간 불범에서 금한 육식을 하는 것이요, 특히 스님들끼리 스스럼없이 음식점을 출입하는 것이야 스님들의 계율이 이완되었다는 표시이다.

항간에는 대처를 하고도 속가에 숨기고 있는 승려도 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탐진치(貪瞋痴)를 절연하기 위하여 대처를 금했을 진대 어찌 스스로를 속이면서 대중에게 깨달음을 설할 수 있겠는가?

조계종 총무원은 이번기회를 참회의 기회로 삼아 승려질서 확립운동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4) 만해 한용운 정신 선양사업 개선


㈎ 관리 주체 국가사업으로 승격

<만해사상실천선양사업>이 2002년 7월 문화관광부 산하 재단법인형태로 출범하였으나 재정난으로 2013년 3월 <동국대학교 만해연구소>로 이관되었으며,

그 이후 만해사상 월간지 발행 등 선양 상시선양활동은 대부분 중지되고, 만해축전 행사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으며,

2016년 2월 군·구 단위 6개 자치단체가 만해축전참여관련, 행정협의를 할 예정이다.

만해의 사상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북한까지 아우르는 민족의 문제이므로 선양사업주체가 국가로 승격시켜야 한다.

즉 문화관광부와 교육부산하에 <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사업회>를 설치하고 집행기관도 군·구 단위에서 서울시로 승격시키고, 관련 지방자치단체는 종래와 같이 지역의 문화행사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 만해기념관 조계사 <한국불교문화기념관>으로 이전

현재 민간전문가가 남한산성에 <만해기념관>을 건립운영하고 있으나 조계종이 총무원이 조계사경내에 불교문화기념관을 건립한 당초목적대로 만해를 비롯한 역대 큰스님들의 행정을 일괄 전시하여 국내외로 부터 한국불교문화 방문지로서 자리매김하여야 할 것이다.

(5) 북한 불교계와 진정한 민족화해 기틀마련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초는 상호신뢰에 있다. 신뢰를 다지려면 북한 측의 진정한 화해가 앞서야 한다. 부처님 말씀에 따라 동일민족으로서 화해하려면 북의 6.25남침, KAL납치, 천안함 폭침에 대해 진정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민간차원에서 이러한 사과를 받아내는 데 일조하지 못한다면 괜히 그네들에게 이용만 당할 것이니 불교계의 대북협력에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결어>

결론적으로 금번 대불총이 일부 승려의 편향된 정치참여와 관련, 해당스님의 실명을 발표하고 코삼비 운동을 전개하는 된데 대해 불제자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재가신도나 스님 모두 대불총의 결심을 호국불교법통의 용단으로 평가하고 참회의 길로 나선다면 우리불교가 동양의 모범 나아가 세계의 모범이 될 것이며, 더불어 우리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반대방향의 길을 선택한다면 불교계뿐만 아니라 우리대한민국은 승천하던 용이 지상으로 떨어져 이무기로 전락하듯이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다가 비웃음을 사는 신세가 될 것이 우려된다.

비록 다듬어지지 않았으나 미천한 식견으로 판단하여 상기와 같이 조계종과 해당스님들께 진언을 드리니 부디 십분 성찰하여 주시옵기를 부처님 전에 합장하는 바이다.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