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는 출력을 높일 경우 야간에는 약 24km, 주간에는 10여km 떨어진 곳까지 음향을 송출할 수 있다. 한국의 발전상을 소개하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비판할 뿐 아니라 최신가요와 같이 가벼운 콘텐츠도 담고 있어 북한 신세대 장병의 마음을 파고드는 강력한 심리전 수단으로 꼽힌다. 군은 최신형 이동식 확성기 6대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형 확성기는 기존 고정식 확성기보다 10km 이상 더 먼 거리까지 음향을 보낼 수 있다. 차량에 탑재되어 기동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군 타격을 피해가며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방송 재개 배경
정부는 7일 청와대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 같이 결정했다고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이 전했다. 조 차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은 우리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4차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며 “4차 핵실험은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과 의무를 정면 위배한 것이고, ‘비정상적 사태’를 규정한 8·25 남북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밝혔다.
조 차장은 “이에 따라 정부는 1월 8일 정오를 기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하기로 결정했다”며 “우리 군은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만일 북한이 도발할 경우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북한의 목함지뢰 및 포격 도발로 촉발된 긴장 상황을 해소한 8·25 남북고위급 접촉 합의를 통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당시 남북 공동발표문은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우리 군의 대비태세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확성기 방송시설이 설치된 최전방 11곳의 지역에는 이미 최고경계태세(A급)가 발령되어 있다. 8일은 김정은의 생일(1984년생)로 북한은 이를 ‘최고존엄 모독’으로 간주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여 한반도 긴장 수위가 급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군은 북한군이 확성기 방송시설을 공격하면 북한군보다 3~4배의 화력을 쏟아부어 응징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확성기 설치지역에는 CCTV와 적외선 감시장비가 장착된 무인정찰기, 토우 대전차미사일, 대공방어무기 비호, 대포병탐지레이더 등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북한이 확성기 방송 시설에 조준사격을 가하면 유엔헌장에 따른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유엔헌장은 자위권을 유엔 회원국의 고유한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유엔헌장 51조는 “회원국에 대해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유엔의 어떠한 규정도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 내용
대북 확성기 방송에는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도 대북 확성기는 작년 8월과 같이 심리전 FM 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그대로 방송할 것”이라며 “내용도 당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방송 내용은 크게 ‘자유민주주의 우월성 홍보’, ‘대한민국 발전상 홍보’, ‘민족 동질성 회복’, ‘북한 사회 실상’ 등 4가지다. 이 가운데 핵심은 북한 사회 실상에 관한 것으로, 폭압적인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김정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작년 8월 대북 확성기 방송은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한 번도 외국 방문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북한 사회의 실상과 대조되는 한국의 발전상을 홍보하는 것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한국 사회의 자유와 개방성을 보여줌으로써 시대에 뒤처진 북한의 현실을 부각하는 것이다.
작년 8월에는 남북한 사회를 모두 경험한 탈북자들이 출연해 북한 사회의 실상과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비교함으로써 설득력을 더했다. 이번에도 탈북자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등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 프로그램에는 핵실험 등 현 상황의 책임이 북한에 있으며 이는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시켜 아무런 이익을 가져올 수 없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다.
이 또한 김정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정치·시사와 같은 딱딱한 주제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도 포함된다. 내용 구성 면에서는 국내 라디오 채널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라고 해서 북한 체제 비판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양한 연성 콘텐츠를 편성해 심리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반응
여야는 7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한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여야 모두 북한이 사태를 자초했다며 제재의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야당은 이번 조치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새누리당(여당) 김영우 대변인은 이날 구두 논평을 통해 “북한의 무모한 4차 핵실험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신뢰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며 “방송 재개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8·25 합의에서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이 누구도 원하지 않는 핵실험을 강행해 비정상적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야당) 김성수 대변인은 “북한이 비정상적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강력한 대응과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긴장이 다시 높아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재는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제재를 위한 제재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방송 재개가 과연 본질적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필요하다면 방송 재개는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은금홍 이장은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 대북방송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방송을 재개해 북한이 우리와 다른 나라들을 불안하게 하는 핵실험을 다시는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통선 마을인 횡산리는 지난해 8월 북한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문제 삼은 뒤 포격도발을 감행하고 우리 군도 대응 사격했던 지역 인근에 있다. 이후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을 놓고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렸고 확성기가 설치된 경기도 파주·연천·김포, 인천 강화 주민들은 남북 접촉기간을 포함해 길게는 5일 동안 대피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차제에 정부에 제안하는 것은 접경지역 ‘민간인 대피’ 조치를 가능한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8월같이 북한 주민은 대피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대피하면 대피생활의 불편 등으로 여론이 나빠져 결국 우리가 남북회담에서 양보를 많이 하게 된다. 이런 일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한미연합사 체제가 유지되는 한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억제될 것이다. 미국은 한미연합사 요구에 따라 전략자산(항모전단, 핵잠수함, 폭격기, 스텔스전투기)의 한국 파견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국방부는 대북5·24조치로 약속한대로 대북 전단 살포, 전광판 재설치·방송도 병행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김성만 (예 해군중장 / 재향군인회자문위원 / 안보칼럼니스트 / 前 해군작전사령관)